영화 ‘잠’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신예 유재선 감독.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잠’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신예 유재선 감독. / 롯데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잠’(감독 유재선)은 행복한 신혼부부 현수(이선균 분)와 수진(정유미 분)을 악몽처럼 덮친 남편 현수의 수면 중 이상행동,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 연출부 출신 신예 유재선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으로, 올해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돼 월드 프리미어를 진행, 뜨거운 관심을 받은 데 이어 제56회 시체스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제48회 토론토 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영화는 ‘잠’이라는 일상적 소재를 비틀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로 불길한 상상력을 자극,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공포를 안긴다. 특히 공포의 대상이 가장 가까운, 누구보다 사랑하고 지키고 싶은 존재라는 설정으로 기존 호러 영화와 차별화를 꾀하며 예측할 수 없는 전개를 이어간다.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매력으로 호평을 얻고 있다. 

앞서 봉준호 감독이 “최근 10년간 본 영화 중 가장 유니크한 공포 영화이자 스마트한 데뷔 영화”라며 “가장 평범한 일상의 공간에서 예측 불가능한 커플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나는 관객들이 아무런 정보 없이 스크린 앞에서 이 영화와 마주하기를 바란다”고 극찬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유재선 감독은 군 제대 후 영화 동아리에 들어가 단편 영화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만든 8편의 단편영화 중 ‘영상편지’가 처음으로 서울 독립영화제와 인디포럼 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상영됐고, ‘부탁’은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판타스틱 단편 작품상을 수상했다. 이후 ‘은밀하게 위대하게’ ‘옥자’ 연출부, ‘버닝’ 영문 자막 번역 등 다양한 이력을 쌓았다. 

유재선 감독은 최근 <시사위크>와 만나 ‘잠’의 출발부터 캐스팅 과정, 촬영 비하인드 등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얻은 뒤 한국 관객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는 그는 “당연히 국내 관객을 마음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떨린다”고 소감을 전했다.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매력의 ‘잠’. / 롯데엔터테인먼트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매력의 ‘잠’. / 롯데엔터테인먼트

-개봉을 앞둔 소감은. 

“차원이 다른 기분이다. 영화 시나리오 썼을 당시부터 촬영하고 편집할 때까지 마음속에 두고 있던 관객은 당연히 한국 관객이라서 굉장히 떨리고 기대가 된다. 영화를 어떻게 봐줄지 기대되고 걱정도 되고 그렇다.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이 굉장히 커서 그런 것 같다.” 

-시사회 후 반응이 좋다. 찾아봤나. 

“처음에 찾아보다가 호평은 당연히 감사하지만 혹평에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는 걸 아내가 옆에서 지켜보면서 리뷰 찾아보기 금지령을 내렸다. 간혹 형이나 가족들이 보내주는 굉장한 호평들만 보면서 좋아하고 있는 상황이다.(웃음)”

-영화의 출발이 궁금하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감독으로서 데뷔하고 싶은 시나리오를 쓰자는 계획이 있었다. 재밌는 장르를 가진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1순위적인 생각이 있었다.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현재 아내가 된 여자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제 개인적인 삶과 화두를 이야기에 녹여내게 됐다. 그래서 주인공도 결혼한 부부이고, 이들의 결혼생활을 다뤘다. 보통 결혼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은 주된 갈등이 서로에게 있잖나. 누군가 만회를 못할 실수를 한다든지, 사랑이 식는다든지. 그런데 나는 아무래도 결혼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결혼에 대해 조금 더 낭만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는지, 정말 서로를 사랑하고 응원하고 베스트 프렌드 같은 부부를 설정해 놓고 누구의 탓도 아닌 외부에서 온 장애물을 던져본 다음에 이 둘이 부부라는 단위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보고 싶었다.”

-그렇다면 현수와 수진 캐릭터에 실제 감독과 아내의 모습이 반영되기도 했나.

“시나리오를 쓸 때 항상 아내가 곁에 있었고 부부를 다룬 이야기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너라면 여기서 어땠을 것 같아?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런 부분이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여진 것 같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두 캐릭터 속에 나와 나의 아내 모습이 조금 많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영화를 본 아내의 반응도 궁금하다.

“시나리오도 읽었고 촬영 전부터 과정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 후반작업도 그렇고 미완성 편집본도 보고 했는데, 실제로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된 영화를 본 것은 칸에서였다. 일단 재밌게 봤다고 했다. 예의상인지 아닌지 모르겠다.(웃음) 그런데 아무래도 나와 함께 동행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영화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신마다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생각에 울컥했다고 하더라. 내가 고생했다는 것을 느끼면서 울컥하면서 봤다고 했다.”

유재선 감독이 영화의 시작을 떠올렸다. 사진은 두 주연배우 정유미(왼쪽)와 이선균. / 롯데엔터테인먼트
유재선 감독이 영화의 시작을 떠올렸다. 사진은 두 주연배우 정유미(왼쪽)와 이선균. / 롯데엔터테인먼트

-외부 장애물을 던지고 싶었다고 했다. 그 장애물로 ‘수면장애’를 택한 이유가 궁금한데.

“몽유병에 대해 극단적 괴담을 많이 듣잖나. 잠결에 베란다에서 떨어졌다든지, 수면 중에 차를 운전한다든지 배우자를 해하려고 한다든지 등 그런 것들이 일차적으로 관심을 끌었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몽유병 환자의 일상이 궁금해졌고, 또 이들의 곁을 지키는 배우자나 가족의 일상은 어떤 모양일까 궁금증이 생겼다. 또 하나 몽유병이라는 소재가 흥미롭다고 생각한 이유는 이런 장르 영화의 경우 보통 주인공이 공포의 대상 혹은 위협의 대상으로부터 도망가거나 이야기에서부터 멀어지는 구조인데, 그 공포의 대상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 지켜주고 싶은 대상이기 때문에 도망가는 것이 옵션이 아니라는 게 흥미로웠다. 공포를 정면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영화가 끝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는 거였다. 감독의 지향점이었을까. 3장으로 나눠 구성한 이유도 궁금한데.

“목적은 없었고,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그렇게 됐다. 어떤 관객들은 너무 간결한 것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좋게 봐주셨다니 감사하다. (3장 구성은) 수진과 현수의 관계가 가장 극단적으로 변하는 세 가지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을 각각 보여주면 효율적이고 효과적이겠다고 생각했다. 또 장 사이 시간이 조금씩 지나는데, 장마다 지나는 시간도 다르고 유의미한 일들이 벌어지지만 영화 자체는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런 점프 덕분에 장 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추론하는 재미도 생겼던 것 같다. 연출적으로 본다면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관객이 따분함을 느낄 수 있는데, 장마다 집의 미술이라든지 촬영이라든지 모든 것을 수진과 현수의 상황과 심리에 맞게 변주를 주면서 시각적으로도 다채로운 재미를 주지 않았나 싶다.” 

-플래시백(과거 회상 장면)을 사용하지 않아 더 깔끔게 느껴진 것도 같다. 이유가 있나.   

“워낙 내용이 간결하고 다시 되새길 수 필요가 없을 정도로 짧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신인 감독이라 그런지 이야기가 계속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플래시백은 뒤로 가면서 사연을 채워 넣는 역할을 하잖나. 이야기의 추진력을 잃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짧은 시간 동안 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앞으로 뻗어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플래시백을 제한했다.”

유재선 감독이 정유미(왼쪽)와 이선균을 캐스팅한 이유를 전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유재선 감독이 정유미(왼쪽)와 이선균을 캐스팅한 이유를 전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정유미와 이선균을 캐스팅한 이유는. 

“연기력에 대해서는 누구든 인정할 것 같고, 정말 둘을 좋아했던 이유는 필모그래피를 보면 장르연기를 굉장히 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다큐멘터리 같은 현실 연기도 굉장히 능하다는 거였다. 장르연기를 할 때도 현실적인 연기 톤이 있다는 걸 느꼈다. ‘잠’에 꼭 필요한 연기톤이었고, 두 배우가 해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현장에서는 어땠나. 

“보통 데뷔하는 감독은 현장에서 가장 경험이 없다고 하잖나.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배우들이 나를 감독으로 대해줄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그 걱정이 무색할 만큼 협업에 적극적이고 아이디어도 많이 내줬다. 보통 배우와 스태프를 두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한 부류는 연료를 계속해서 채워 넣어줘야 하고 다른 부류는 아이디어가 너무 많아서 물을 부어 식혀줘야 하는. 나는 후자를 원했는데, ‘잠’의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이 이 프로젝트를 사랑하고 아이디어가 넘쳐났다. 각자 본인의 영역에서 어떻게 더 좋은 작품을 만들까 아이디어를 내줬다. 정유미와 이선균의 연기 스타일이 분명히 다르다. 그래서 더 재밌었다.

예를 들어 이선균은 캐릭터에 대한 연구를 공부하듯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매일 아침 시나리오에 노트한 내용을 의논했다. 현수라면 이 대사를 이렇게 하지 않을까, 이 동선 말고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반응하지 않았을까 등 아이디어를 많이 줬다. 촬영장에서는 배우가 자신의 캐릭터를 더 잘 알게 되는 상태까지 오기 때문에 그런 아이디어가 일리가 있고 맞을 때가 많다. 이선균도 이미 현수라는 캐릭터로 완벽히 빙의돼서 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유미는 본인도 캐릭터 연구를 굉장히 열심히 해서 자신이 구축한 캐릭터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내가 생각하는 수진과 배우가 생각하는 수진을 함께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었다.”

유재선 감독이 봉준호 제자로 주목받고 있는 것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유재선 감독이 봉준호 제자로 주목받고 있는 것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들은 감독이 현장에서 디렉션을 정확하게 줬다고 하더라.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과를 다니지 않았지만 어깨 너머로, 특히 ‘옥자’ 프로젝트를 하면서 봉준호 감독님에게 배운 게 많았다. 감독님은 콘티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타일이다. 나는 다른 스승님을 둔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영화는 봉준호 감독님처럼 이렇게 만드는구나 싶었고 나 역시 ‘콘티 절대주의자’가 됐다. 하지만 이 방식이 모든 배우에게 맞는 것은 아니다. 봉준호 감독님은 천재라 가능했지만, 나는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현장성에 많이 의존하고 그것에 맞춰 바꿔야 했는데, 두 배우가 함께 만들어 가줘서 정말 감사했다.”

-‘봉준호 제자’로 주목받고 있다. 이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 

“두 가지 이유로 부담된다. 하나는 그만큼 기대치가 올라가기 때문에 기대에 부응하는 결과물을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감이 있긴 했다. 그럼에도 한편으론 좋은 자극이 되기도 했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한다, 잘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어중간하면 본전도 못찾는다는 생각에 혼을 갈아서 만들었다.(웃음) 두 번째는 봉준호 감독님의 이름에 누가 될까봐. 이 영화가 형편없으면 ‘별 거 없네’라는 이야기가 나올까봐 걱정이 됐다. 아직도 그 부분은 걱정이 되긴 하다. 그럼에도 많은 기대와 관심에 대해서는 굉장히 감사하다. 기대에 부응하는 영화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 

-봉준호 감독이 처음 ‘잠’ 시나리오를 보고 어떤 조언을 해줬나. 

“감독님에게 피드백을 받기 위해 시나리오를 드렸다. 잘 썼는지 봐달라기보다 고칠 점이 있을까 리뷰 요청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감독님이 ‘된 것 같다, 당장 만들어도 손색없다, 이것에 집중해라’고 응원해 주셔서 오히려 놀랐다. 어안이 벙벙했다. 시나리오를 쓰긴 했지만, 감독으로 데뷔한다는 게 얼마나 막연한 일인지 알기에 한편으로는 스스로 의심도 많았는데. 감독님이 그렇게 말해준 순간 ‘할 수 있겠다’는 확신과 자신감이 생겼다. 그때부터 영화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생각들로 마음가짐이 바뀌었다.” 

-‘옥자’ 프로젝트를 통해 배운 경험이 앞으로 영화를 만들어 나가는 데 있어 큰 자양분이 될 것도 같다. 어떤 것을 얻고 배웠나.  

“봉준호 감독님의 팀은 정말 실력이 있어야 들어간다. 그것에 대한 예외는 나였다. 나는 막내였기 때문에 경험이 없어도 됐고 가서 배우는 입장이라 부담이 없었다. 영화 관련 전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운 게 ‘옥자’가 전부인데 감독님뿐 아니라 정말 실력 좋은 스태프, 연출팀과 함께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흡수했다. 당시에는 실수하면 안 된다, 나 때문에 지체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무엇을 배운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는데, ‘잠’을 막상 시작하고 보니 알게 모르게 봉준호 감독님에게 많은 것을 배웠고 감독님의 모습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모든 단계에서 적용되는 것 같다.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됐다.”

-차기작 계획은. 

“아직 확정된 이야기는 없고 여러 아이디어로만 존재하고 있다. 한 가지 만들고 싶은 이야기는 미스터리 범죄 영화다. 시나리오를 구성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관객으로서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 로맨틱코미디인데, 그런 이야기도 해보고 싶어 고민하고 있다.”

-‘잠’이 관객에게 어떤 작품으로 다가가길 바라나.

“무엇보다 재밌는 장르영화를 만드는 게 1순위였다. ‘잠’은 철저한 대중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재밌길 바랐다. 이 영화가 상영하는 극장에 앉아있는 1분 1초가 다 재밌게 여겨졌으면 한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정말 재밌는 영화를 봤다’고 느낀다면 만족스러울 거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코미디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각종 영화제나 한국에서의 반응도 그렇고 감사하게도 많이 웃어주시더라. 그것은 정말 큰 보너스인 것 같다. 현실도 아무리 무서워도 가끔씩 웃길 때가 있고, 웃긴 상황에서도 공포가 찾아오는 순간이 있잖나. 그렇게 즐겨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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