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와 나라 사이를 가르는 경계 ‘국경(國境, Border)’은 한 국가의 주권과 영토·국민의 존립을 보전하는 역할을 해왔다. 때문에 인류 문명은 국경의 존재로 지리적,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이는 오직 인간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다. 생물들, 특히 쉼 없이 이동하는 동물들에게 국경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들에겐 그저 인간이 그어놓은 보이지 않는 선일뿐이다. 오히려 멸종위기종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에서 국경은 ‘장애물’일뿐이다. [편집자 주]
시사위크|송도=박설민 기자 기원전 300년, 고대 이집트에는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이 있었다. 이 전설 속 도서관은 인류의 모든 지식을 담기 위해 지어진 것이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도서관에 담긴 정보는 르네상스 시대 전체 지식과 비견될 수준이었다. 이를 통해 이집트는 고도 문명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그로부터 약 2,300여년이 지난 현재, 인류에겐 다시금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이 필요해졌다. 과거 국가 단위에 머물렀던 기술, 학문, 문화 등의 발전이 이제 세계 수준에서 이르면서다. 글로벌 지식 관리 플랫폼 산업 규모가 7,736억달러(약 1,032조원)에 이르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특히 기후위기, 자연 생태계와 생물 다양성 보존, 기후위기 등 글로벌 ‘환경 문제’ 해결 방안 모색을 위해 올바른 지식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자연 생태계와 생물 다양성을 보전할 수 있는 ‘제2의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 글로벌 생물다양성 회복, 열쇠는 ‘지식 공유’
지난달 28일 인천 송도에서 개최된 ‘초국경 협력을 위한 자연보전·생물다양성 워크숍’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지식 공유(Knowledge sharing)’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NEASPEC 프로젝트의 유지를 위해선 각 서식지별로 다른 특성을 보이는 생물종들의 생활 습성, 행동패턴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 하얼빈동북임업대학 고양잇과 동물 연구센터 연구팀이 2015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아무르 표범의 경우 환경에 따라 개체군 분포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 영향을 미친 요인은 먹이 분포, 지리적 요인 등 다양했다. 즉, 아무르 표범 등 멸종위기종 보존을 위해선 각 국가 연구기관이 수집한 데이터를 한데 모아 공유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임정은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복원연구팀 선임연구원은 “지식의 공유는 서로를 통해 배우고 정보의 중복을 피함으로써 생산성과 연구 효율을 높인다”며 “다양한 관점과 경험을 모아 혁신과 창의성을 촉진하고 광범위한 정보와 전문 지식에 대한 접근성을 제공해 효과적인 의사 결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세계 각국 연구자들의 정보 공유가 가능한 ‘지식 공유 플랫폼(knowledge sharing plattform)’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이 플랫폼 형태는 다양하다.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출판물, 데이터 클라우드 등이다. 정보 업로드, 검색, 연결이 가능한 국제 웹사이트 개설도 필요하다. 지식 교환 및 네트워킹을 위한 국제 포럼도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다.
임정은 선임연구원은 “각 국가별 연구자들이 가진 서로 다른 관점과 경험은 새로운 지식을 생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우리는 멸종위기종과 생물 다양성 회복을 위한 과학 연구에 더욱 깊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데이터의 공유에 대해 일부 문화권에서는 일반적이지 않을 수 있고 언어·정치·문화적 장벽은 여전히 존재한다”며 “이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글로벌 연구자들은 서로 의견을 주고받아 해결책 마련에 힘을 써야할 것”이라고 전했다.
◇ ‘ADB’부터 ‘CEPA’까지… 지식 공유로 잇는 생태 사슬
생물 다양성 확보 및 생태계 보전 연구에 있어 지식 공유 플랫폼의 역할이 중요해짐에 따라 세계 각국의 연구기관 및 단체에서도 행동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 사례로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운영하는 ‘데이터룸(DATA ROOM)’이 있다. 동아시아 10개국이 참여하는 이 프로젝트는 동아시아-대양주에 이르는 철새의 이동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2002년 시작됐다. 참여 국가는 중국,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몽골, 필리핀, 태국, 배트남 등 동아시아 10개국이다.
프로젝트 참여 국가들은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파트너십(EAAFP)’ 회원 국가로 활동 중이다. 이들은 철새 이동경로를 이용하는 개체군의 숫자, 활동 습성, 습지 환경 등을 파악한다. 현재 정보요청(RFI) 프로세스에 포함되는 곳은 총 147개의 습지다. 이중 우선 파악 습지로 선정된 91곳 중 56곳은 내륙(대부분 담수)에 위치한다.
ADB-데이터룸 구축을 위해 10개 참여 국가에서는 400개 이상의 후보 지역에서 대규모의 철새 개체 수 데이터베이스를 수집했다. 데이터는 국가별 철새 모니터링 사업 계획, 연구 논문, 설문조사, 연구기관 보고서 등이 사용됐다. 또한 공간정보시스템 매핑 기술(GIS)를 이용한 철새 이동경로 지도 데이터도 수집했다. 이를 통해 완성된 ADB-데이터룸은 전 세계 철새·생물 연구자들이라면 누구나 접근·활용할 수 있다.
카렌 그레이스 ADB 아시아 지역 철새 이동경로 이니셔티브 환경 담당관은 “ADB 프로젝트는 글로벌 연구자들의 데이터 수집을 통한 자연 생태계 보전을 주요 목표로 2002년 시작됐다”며 “올해는 이 프로젝트를 통한 적극적인 지식 공유 및 학습 유도와 국가정책과의 연계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연구자들 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인식 증진을 위한 활동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몽고, 베트남 등 동아시아 17개 국가가 참여하는 ‘동아시아 람사르 지역센터(RRC-EA)’는 2009년부터 ‘CPEA’ 프로젝트를 이행 중이다.
CEPA는 △커뮤니케이션, 역량 강화(Communication, capacity building) △교육(Education) △참여(Participation) △의식(Awareness)의 4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의 철새 이동과 보호, 습지 조성 및 환경 보전을 위한 대중 교육, 소통, 협력 활동을 목표로 설립시작 됐다. RRC-EA 측에 따르면 현재 300개 이상의 람사르 습지에 대한 연구 지식 공유 및 교육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비비안 푸 세계자연기금(WWF) 홍콩 CEPA 프로젝트 관리자는 “생물 다양성 확보에 있어 CEPA 프로젝트가 갖는 가장 큰 의미는 대중들의 행동 변화를 사랑으로 이끌어내는 것”이라며 “RRC-EA의 CEPA 프로젝트는 향후 동아시아 지역 철새와 물새 서식지를 보전을 위한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