햅쌀로 만든 신도주는 송편과 함께 추석에 빠져서는 안 될 전통음식이었다. 사진은 전통주를 빚고 있는 해월도가 임해월(63) 대표. / 뉴시스
햅쌀로 만든 신도주는 송편과 함께 추석에 빠져서는 안 될 전통음식이었다. 사진은 전통주를 빚고 있는 해월도가 임해월(63) 대표. / 뉴시스

시사위크=김지영 기자 “북어쾌와 젓조기를 사다가 추석 명절을 쇠어 보세. ‘햅쌀로 만든 술’과 송편, 박나물과 토란국으로 조상께 제사를 지내고 이웃집이 서로 나누어 먹세.”

조선 헌종 때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에는 송편과 북어, 조기 그리고 ‘햅쌀로 만든 술’이 등장한다. 이 술은 새로울 신(新), 벼 도(稻) 자를 써 ‘신도주’, 또는 새로운 곡식으로 빚은 술이라해서 ‘신곡주(新穀酒)’라 불리는데 송편과 함께 추석에 빠져서는 안 될 전통음식이었다.

◇ 생소한 추석 전통, ‘신도주’란

1837년 전라도에서 만든 술 비법서 ‘양주방’을 보면 “햅쌀 한 말을 가루내 흰무리떡을 찌고 끓인 물 두 말과 섞은 뒤, 다음 날 햇누룩가루 서 되와 밀가루 세 홉을 넣어 버무린다. 사흘 후 햅쌀 두 말을 다시 쪄서 식히고 끓인 물 한 말과 밑술과 합한 뒤 열흘 후 맑게 익으면 마신다”고 나와있다.

이렇게 쌀과 누룩으로 빚어 거른 술의 맑은 부분은 차례상에 올리고, 나머지 탁한 부분은 물을 섞어 동네 사람들과 나눠 먹었는데 이를 ‘백주’라고 불렀다. 차례상에 올리는 신도주는 한국 고유의 청주라고 볼 수 있고, 백주는 탁주라 볼 수 있다. 조상들은 풍족한 수확기인 만큼 술을 양껏 빚어서 이를 동네 잔치술 등으로 즐겼다고 한다.

◇ 한국 전통 청주, 신도주는 왜 자취를 감췄을까

집에서 햅쌀로 빚는 맑은 차례주 ‘신도주’와 이웃과 함께 나누는 ‘백주’는 일제강점기부터 그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일본이 1916년 ‘주세령’ 시행으로 면허 없이 만드는 밀주를 엄격히 단속하면서 집에서 손수 술을 빚는 가양주 문화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후 1965년에는 정부가 쌀을 아끼기 위해 양곡관리법으로 쌀로 술을 빚는 것을 제한하면서, 신도주 대신 일본식 청주가 보편적인 차례주로 자리매김한다. 이를 흔히 ‘정종’이라 부르며 한국 전통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지만, 이는 일반 명사화된 일본 사케 브랜드명이다.

오늘날 집에서 직접 술을 빚는 문화는 사라졌지만 국순당, 금복주, 배상면주가 등의 브랜드가 전통 누룩과 쌀로 만든 약주류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신도주는 한국 고유의 청주인데, 이들 상품이 ‘약주’류인 이유는 1909년 제정된 주세법에서 일본식 사케를 청주라 불렀고, 조선의 술은 탁주 또는 약주에 포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도 주세법은 청주를 ‘누룩이 1% 미만으로 사용된 술’이라 정하고 있어, 누룩을 주발효제로 하는 전통 방식 청주는 청주로 인정받기 어렵다.

◇ 이번 추석엔 우리 지역 농산물로 빚은 전통주를

국세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지역 특산주를 생산하는 사업체 수는 1,766개로, 이 전통주들은 온라인으로도 구입이 가능하다. 사진은 명절 차례를 위한 제기 그릇 세트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 뉴시스
국세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지역 특산주를 생산하는 사업체 수는 1,766개로, 이 전통주들은 온라인으로도 구입이 가능하다. 사진은 명절 차례를 위한 제기 그릇 세트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 뉴시스

대부분의 전통 주류 브랜드가 국내산 쌀을 원료로 청주를 만들긴 하지만, 전통을 되새기는 의미에서 한국 고유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약주’를 차례주로 올리는 것도 뜻깊을 것이다. 또 차례상이 간소화되거나 사라지고 있는 만큼 주변 사람들과 ‘백주’를 나누던 전통을 챙길 수도 있다.

농경 사회에서 추석 명절의 의미는 단순히 수확이 아니라, 일에 바친 노고를 스스로 치하하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특히 가족, 이웃, 지역 간의 연결이 느슨해진 시대에 ‘백주’를 나누는 것은 공동체의 소중함을 돌아보는 의미도 지닌다. 술 중에서도 지역 농산물로 술을 빚는 지역 특산주가 백주로 즐기기 알맞을 것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지역 특산주를 생산하는 사업체 수는 1,766개로, 이 전통주들은 온라인으로도 구입이 가능하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운영하는 사이트 ‘더술닷컴’에서 전통주 판매처, 양조장 지도, 관련 축제 등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이번 추석엔 가족, 이웃, 친구와 우리 지역 농산물로 빚은 전통주를 즐겨보는 것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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