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신구 기자 지난 9월 4일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한국인 근로자 체포·구금사태로 인해 한미 간 비자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단기 비자를 통한 기업의 관행적 근로자 파견에 ‘제동’이 걸린 상황에서 궁극적으로 전문직 취업(H-1B) 비자의 쿼터 확보, 한국인 전용 전문직(E-4) 비자 신설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기업이 정당한 방법으로 근로자를 파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중요해졌다.
국회입법조사처가 9월 18일 발간한 ‘美 조지아주 한국인 이민 단속·구금 사건의 미국 비자제도 쟁점 및 향후 과제’ 보고서는 이번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미국 비자 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지목했다. 한국인이 미국에서 근로하기 위해서는 E-2(투자), L-1(주재원), H-1B(전문직), H-2B(단기·비농업) 등 취업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지만, 당시 체포·구금된 한국인 근로자의 상당수는 ESTA(전자여행허가)나 B-1(단기상용)·B-2(단기 관광·휴가) 비자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의 비자 발급의 ‘어려움’에 따른 것이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대부분의 취업 비자의 경우 미국 노동부의 인증과 이민국의 심사를 거쳐야 하는 상황에서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근로자를 빠르게 투입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부담으로 작용했다. H-1B 비자의 경우 연간 쿼터에 따라 추첨을 거쳐야 하는 만큼 더욱 발급이 어렵다. 단기 비자를 통한 근로자 파견을 기업들이 관행적으로 진행해 온 까닭이다.
하지만 미국이 이번 사태를 통해 이러한 관행에 ‘제동’을 건 만큼, 더는 같은 방식을 취하긴 어렵게 됐다.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에서, 한미 간 비자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도 이러한 인식에 공감하고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9월 12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입국 원활화를 위해 현행 제도를 보완하겠다”며 “비자 발급 기간 단축, 거부 이유 감소, 비자 카테고리 확대 등 다양한 방법을 유연하게 모색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우선적으로는 B-1 비자의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는 “미 국무부의 외교업무매뉴얼(FAM)은 B1 비자를 소지하고 현지 직원에게 장비사용법, 유지보수 방법 등을 교육하거나 장비설치·시운전 등을 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어, B1을 통한 기술인력 파견이 가능한 것으로 해석돼 왔다”며 허용범위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추첨으로 선발되는 H-1B 비자에 대해서도 추첨 과정에서 대미 투자기업 또는 특정 산업이나 직종에 대한 우선 추천·심사가 가능하도록 심사 절차 간소화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러한 내용의 패스스트랙 제도 시행을 미국 측에 제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한국인 대상 H-1B 비자의 쿼터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이 캐나다, 멕시코, 호주, 싱가포르 등을 대상으로 비자 쿼터를 우선 배분한 사례가 있는 만큼, 불가능하지 않다는 평가다.
‘한국동반자법(PWKA, Partner with Korea Act)’ 제정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세다. 전문직 대상 E-4 비자를 신설을 위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2013년부터 줄곧 이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간 미국 내에서 자국 고용 창출 등을 우려해 통과되지 못했다. 다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과 한국 모두 비자 문제 개선 여론이 형성된 만큼, 정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주장할 당위는 충분해졌다. 주한 미국상공회의소가 9월 29일 서울 여의도 IFC 더포럼에서 개최한 미국 비자 관련 세미나에서는 한국이 미국의 주요 투자자임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제도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비자 신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