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일 확대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일 확대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시사위크=권신구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퇴임을 앞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고별 회담’을 가졌다. 양국은 방문객을 대상으로 ‘사전 입국심사제도’를 도입하기로 하는 등 실질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다만, 과거사 문제에 대해선 기존의 입장을 재차 확인하는 수준에 그치며 아쉬움을 남겼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회담에서 양 정상은 함께 이뤄낸 한일협력 성과들을 돌아보고 실질 협력 증진 방안, 한반도 정세, 한미일 협력, 인도·태평양 지역을 포함한 역내 및 글로벌 협력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양국이 내년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이하게 된 가운데 한일관계 개선 흐름을 이어가자는데도 뜻을 같이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번 회담은 일본 측의 요청에 의해 추진됐다. 그간 20%대 지지율을 유지했던 기시다 총리는 오는 27일 자민당 총재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며 퇴임을 앞두고 있다. 임기가 끝나는 정상과의 회담을 두고 정치권 안팎에선 의아하다는 기류가 나왔다. 다소 이례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등으로 국내의 반일 여론이 높아진 상황이라는 점도 의문을 더했다. 대통령실은 ‘셔틀 외교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기시다 총리에게는 이번 회담이 나름의 의미가 있다. 연임을 포기하긴 했지만, 정계 은퇴를 한 것은 아닌 만큼 자국 내 정치적 영향력 확보라는 과제가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일관계’는 그에게 실효있는 카드로 꼽힌다. 총재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에서 ‘한일관계 개선’을 주요 성과로 꼽았던 만큼 이를 부각함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기시다 총리가 일본 정가에서 영향력을 가지는 것이 우리 정부로서도 나쁜 선택지가 아니다. 당장 이번 회담이 성사된 배경에도 이러한 부분이 고려됐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조해진 국민의힘 전 의원은 지난 4일 YTN 라디오 ‘이슈앤피플’에서 “아베 총리처럼 다시 또 총리로 컴백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며 “우리로서는 일본 정계의 유력한 지도자를 흔히 하는 말로 친한파로서 계속 관계를 맺는 것이 우리 국익에 굉장히 도움이 된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3년 8월 18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회의에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만나 기념촬영하고 있다. /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3년 8월 18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회의에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만나 기념촬영하고 있다. / 뉴시스

◇ 아쉬움 남긴 과거사 문제

‘캠프 데이비드 선언’을 기반으로 ‘한미일 삼각협력’에 힘을 실어 온 만큼, 안보적 차원도 염두에 뒀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날 회담에서 양 정상은 북핵 문제 대응을 위한 한일, 한미일간 협력이 중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김 차장은 “북한이 러시아를 뒷배삼아 도발하지 못하도록 냉정한 대비태세를 유지하자고 공감했다”고 전했다.

실질적 협력도 강화됐다. 한일 양국은 이번 정상회담 계기에 ‘재외국민 보호협력 각서’를 체결하기로 했다. 지난해 4월·10월 수단과 이스라엘 등에서 양국 국민 철수에 협력한 사례를 기반으로 제3국에서 위험 상황이 발생 시 공조를 제도화 하기로 한 것이다. 또한 사전입국심사 등 인적 교류 증진 방안을 적극 모색해 나가기로 했다.

다만 과거사 문제에 대해선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회담에서 “저는 1998년 한일 공동선언을 포함하여 역사 인식 관련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말씀드렸다”며 “이곳 서울에서 저 자신이 당시 어려운 환경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대단히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것에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도 말씀드렸다”고 했다. 지난해 5월 한일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 당시의 ‘사견’을 전제로 한 발언을 사실상 되풀이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문제는 이날 회담에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을 만나 “사도광산 등재는 치열한 협의와 합의를 통해 이미 7월에 일단락됐기 때문에 정상 간에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나마 의미 있는 성과는 조선인 강제징용 문제와 연관있는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 19권’을 일본 정부로부터 전달받았다는 점이다.

이렇다 보니 야당은 득보다 실이 많은 회담이라고 비판했다. 노종면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에서 “기시다 총리는 두리뭉실한 입장 표명으로 과거사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뭉갰고 윤 대통령으로부터 굴욕적 외교를 확약받았다”며 “이런 굴욕외교로 우리 국민께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윤석열 정부가 수많은 것을 내주고 얻은 것은 일본의 칭찬과 기시다 총리와의 브로맨스뿐”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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