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마침내 코로나19에 대한 '팬데믹'을 선언했다. 팬데믹은 전염병의 세계적인 대유행을 의미한다./ AP,뉴시스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중국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퍼진 코로나19는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이탈리아, 이란, 미국 등으로 빠른 확산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보건기구(WHO)가 현지시간 11일 ‘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 사태를 선언했다. 

전염병의 세계적인 대유행을 의미하는 팬데믹은 그리스어 ‘판데모스(Pandemos)’에서 유래됐다. 17세기 영국에서 영어식 어휘로 변형되면서 지금의 팬데믹이라는 표현이 통용되고 있다. 보통 여러 대륙을 걸쳐 인류 전체에게 치명적인 위협을 가했거나 막대한 피해가 예상될 시 선언된다. 

1948년 설립된 이래 WHO가 공식적으로 팬데믹을 선언한 것은 1968년 ‘홍콩독감(H2N2)’ 사태와 지난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A(신종플루)’ 사태, 단 두 번 뿐이다. 이번 선언으로 코로나19는 WHO가 선언한 3번째 팬데믹 사례가 됐다. 신종플루 이후 11년 만이다.

◇ 흑사병부터 신종플루까지… 세계를 바꾼 ‘팬데믹’

팬데믹 사태가 발생하면 세계 경제 및 사회 전반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 WHO의 공식 기록은 아니지만 질병 학계에서 팬데믹 중 하나로 분류하고 있는 ‘흑사병’의 창궐이 대표적인 예다. 

흑사병은 페스트균을 보유한 쥐나 벼룩에 의해 전염되는 질병을 일컫는 명칭이다. 병이 진행되면서 신체부위에 광범위한 괴사가 일어나는데 이때 검은색으로 살갗이 변해 흑사병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흑사병의 발생으로 14세기에 약 7,500만명이 죽었고 19세기까지 지속적으로 유행하며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희생당했다. 

이 같은 흑사병의 팬데믹은 유럽 전체의 역사를 뒤바꿨다. 크게 줄어든 인구 때문에 흑사병이 진정된 후 다중 유산을 상속받으며 부유해진 사람들이 급속도로 증가했다. 또한 당시 농업을 책임지던 농민·노동자들의 숫자가 매우 부족해지면서 살아남은 노동자들의 임금이 크게 늘었다. 이로 인해 당시 사회를 지배하던 대영주들의 권력은 크게 줄어들었고 이후 봉건시대의 몰락이 일어났다. 반면 막대한 현금을 보유한 상인들과 농민들의 영향력이 증대하며 현대 자본주의사회의 시발점이 됐다.

14세기 전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은 유럽경제 전체를 붕괴시켰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흑사병으로 대영주들이 몰락하고 상인들과 노동자들의 힘이 강해지면서 현대 자본주의의 기초가 마련됐다. /Getty Images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팬데믹 사태인 홍콩독감과 신종플루도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쳤다. 두 질병 모두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독감)에 의해 발생했으며 전염력이 매우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1968년 발생한 홍콩독감은 6개월 만에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며 100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특히 미국은 월남전 참전자들을 매개로 빠르게 전파되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 당시 미국 경제성장률은 1969년 기준 3.1%였으나 다음해인 1970년 0.2%로 하락했다. 

지난 2009년 발생한 신종플루도 세계경제성장률을 저하시킨 바 있다. 당시 세계은행(WB)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신종플루는 세계경제성장률을 0.7%p~4.8%p가량 감소시킨 요인 중 하나라고 밝혔다. 세계준비감시위원회(GPMB)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신종플루 팬데믹으로 손실된 비용은 450억~550억달러, 한화 약 54조원에서 66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특히 신종플루의 발원지인 멕시코는 2009년 2분기 경제성장률을 2.2%p 하락했으며 항공 이용도 80% 가량 감소했다. 당시 우리나라 경제도 적잖은 타격을 입혔다. 당시 신종플루로 인해 팬데믹이 선언되자 국내 수출액은 3,635억달러로 2008년대비 13.9% 감소한 수치다. 또한 항공, 여행, 관광 업계에도 불황을 가져왔었다. 

반면 신종플루 팬데믹 사태는 제약사에는 엄청난 기회로 작용했다. 신종플루의 치료제로 잘 알려진 ‘타미플루’의 개발사인 미국 제약회사 ‘길리어드 사이언시스’가 그 예다. 길리어드 사이언시스는 2002년 당시 시가총액이 2억달러(2,000억원)에 불과해 세계 상위 제약사엔 전혀 못미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신종플루 사태 이후 시가총액이 1,220억달러, 한화 약 126조원에 육박하는 글로벌 제약사로 급성장했다.

WHO의 코로나19 팬데믹 선언 이후 글로벌 증시가 출렁이고 있다. 11일 다우존스지수는 1,464.94포인트(5.86%) 하락한 2만3,553.22에 거래를 마쳤다./ 뉴시스

◇ 코로나19로 세계 경제 불안감 ‘증폭’… WHO, “통제 가능할 것”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도 앞서 소개한 전염병들처럼 세계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코로나19의 글로벌 거시경제 영향’보고서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세계 GDP가 적게는 2조3,300억달러, 많게는 9조1,700억달러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세계 GDP 추정치가 약 88조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약 10%가량 세계 GDP가 감소하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WHO의 코로나19 팬데믹 선언 이후 글로벌 증시가 출렁이고 있다. 11일 다우존스지수는 1,464.94포인트(5.86%) 하락한 2만3,553.22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달 12일 고점 2만9,551과 비교하면 한달 만에 약 6,000포인트(20.3%)가량 하락한 셈이다. 이에 따라 다우존스지수는 ‘약세장(Bear market: 시세가 하락하고 있는 주식 시장)’에 진입하게 됐다. 또한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지수는 140.85포인트(4.89%) 하락한 2,741.38에 마감했으며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도 392.20포인트(4.70%)하락한 7,952.05에 마감됐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이 팬데믹을 선언하는 모습. 다만 WHO 측은 이전의 팬데믹 사례와는 달리 이번 코로나19는 통제가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뉴시스

다만 WHO 측은 이전의 팬데믹 사례와는 달리 이번 코로나19는 통제가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언론 브리핑을 통해 “한국과 중국 등 여러나라에서 코로나19가 통제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집단 감염이나 지역 전염이 벌어진 많은 국가 앞에 놓인 도전은 그들이 (이런 나라들이 한 대처와) 같은 것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할 의지가 있는가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WHO의 임무는 공중보건이며 코로나19 팬데믹의 사회적·경제적 결과를 완화하기 위해 모든 분야의 많은 파트너와 협력하고 있다”며 “모든 국가는 보건, 경제·사회 혼란 최소화, 인권 존중 가운데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은 팬데믹 용어가 불러일으킬 수 있는 혼란에 대해서는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도 전했다. 그는 “팬데믹은 가볍게 혹은 무심하게 쓰는 단어가 아니다”라며 “그것은 잘못 사용하면 비이성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키거나 전쟁이 끝났다는 정당하지 못한 인정을 통해 불필요한 고통과 죽음을 초래할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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