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비롯한 30여 개 교원·학부모단체들이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만 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 기자회견에서 정부에 전달할 '만 5세 초등학교 취학 학제 개편안' 철회 요구 서한을 들고 있다. 이들은 "만 5세 초등취학은 유아들의 인지·정서발달 특성상 부적절하며, 입시경쟁을 앞당기는 부작용을 초래한다"며 학제개편안을 당장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뉴시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비롯한 30여 개 교원·학부모단체들이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만 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 기자회견에서 정부에 전달할 '만 5세 초등학교 취학 학제 개편안' 철회 요구 서한을 들고 있다. 이들은 "만 5세 초등취학은 유아들의 인지·정서발달 특성상 부적절하며, 입시경쟁을 앞당기는 부작용을 초래한다"며 학제개편안을 당장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뉴시스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1일에도 하락세인 가운데 교육부가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추진을 발표하면서 지지율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교원·학부모 단체는 이날 오후 2시 폭염에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을 저지하기 위해 집회를 할 정도로 반발이 크기 때문이다. 해당 이슈가 국민에게 체감도가 높고 민감한 교육 정책인 만큼 여론의 흐름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 학부모·교육계 거센 반발

해당 이슈가 촉발된 것은 지난달 29일 윤 대통령이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초중고 12학년제를 유지하되 취학 연령을 1년 앞당기는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지시하면서다. 

박 부총리는 같은날 업무보고 이후 브리핑에서 “(의무교육을) 조금이라도 앞당겨 공교육 체계에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조기교육 얘기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당초에는 2년을 앞당길 것을 생각했지만 여러 제약이 있어 1년을 앞당기고, 2025년부터 시작해 분기별로 나눠 4년에 거쳐 입학연령 하향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교육부의 입학연령 하향 정책이 발표되면서 교육계와 학부모는 크게 반발했다. 교육 현장의 한 관계자는 본지 기자에게 “현재 1학년인 8살(한국나이)도 학교 체제 정착이 어려운데 여기서 더 낮추면 적응이 어려울 것”이라며 “교육과 보육의 본질적 차이를 무시하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31일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 교사의 메일을 소개했다. 이 교사는 의원실에 전자우편(e-메일)을 보내 해당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교사는 “7살이라도 스스로 밥먹기, 배변 뒤처리하기, 자기 물건 챙기기 등 학교에서 혼자서 해야 하는 자조들이 완전히 발달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만 5세에 입학하는 것은 무리”라고 설명했다. 

강 의원이 소개한 다른 시민의 메일에서는 돌봄 문제와 여성의 경력 단절도 지적됐다. 이 시민은 “만 5세 아이의 이른 등교는 더 어린 나이부터 사교육을 하게 만들고 기존에도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퇴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들이 더 이르게 퇴사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만든다”고 비판했다. 

1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 모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시민단체, 학부모·교사들도 교육부의 입학 연령 하향을 철회하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만 5세 유아 초등취학은 대통령 공약에도, 인수위 논의도, 교육계 내부의 논의도 없었다”며 이번 학제 개편안의 절차적 문제를 지적했다. 입학 연령 하향은 사회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사전 논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정치권, ‘졸속’ ‘군사작전식’ 비난

정치권 역시 비판에 가세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취학 연령 하향 논의는 아동의 적응과 경쟁 심화 등 부작용도 우려되는 만큼, 용산 대통령실 이전처럼 민심을 무시하고 졸속으로 처리할 일이 결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같은당 서영교 의원은 “1년 단축으로 입시경쟁과 사교육 시기가 앞당겨지고, 연령별 발달과정에 맞지 않는 교육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이 속출할 것이며 이는 생애 전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며 “이런 중요한 문제를 학부모와 교사를 비롯한 전문가들과 충분한 논의나 검토없이 군사작전식으로 발표한 것이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박순애 사회부총리겸 교육부 장관이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국교육시설안전원 앞에서 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향과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박순애 사회부총리겸 교육부 장관이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국교육시설안전원 앞에서 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향과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국회 교육위 소속인 강득구 의원도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전 세계적으로도, 영국 정도는 제외하고는 만 6세 진학이 대세이고 유치원 의무교육을 늘려가는 추세”라며 “독일이나 미국 연구자들도 조기교육에 노출되거나 앞당긴 아동들은 학창시절에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보고했다. 인지교육을 조금 늦게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좋다는 의견이 많다”고 주장했다. 

이동영 정의당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76년 된 학제를 변경하면서 학부모, 교사, 교육청 등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여론 수렴 과정조차 없었다. 대단히 위험하다. 멈춰야 한다”며 “초등 학제 개편안은 역대 정부에서도 여러 차례 검토했지만 만 5, 6세 아동 동시 입학 시 12년간 특정 학년 숫자만 최대 두 배가 되는 부작용 때문에 이미 부정적 결론을 내린 사안”이라고 언급했다. 

◇ 정부, 부랴부랴 수습 나서… 여론 흐름 악화 위기감

여론의 반발을 의식했는지 정부에서는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 밑으로 떨어지면서 국정운영 동력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여론 민감도가 높은 교육 정책을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여론의 흐름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우선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박 부총리에게 직접 전화를 해 “국민들이 불안해하시는 일이 없도록 학부모 등 교육 수요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해 관련 정책에 충실히 반영하라”고 지시했다. 총리실에 따르면, 한 총리는 “교육 공급자와 수요자의 찬반 의견과 고충을 빠짐없이 듣고,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보완책을 마련하고, 정책 결정과 실행의 모든 과정을 교육 주체들과 언론에 투명하고 소상하게 설명하고 소통하라”고 주문했다. 

박 부총리도 이날 오전 언론 인터뷰에 나선 데 이어 오후에는 ‘도어스테핑’(약식 회견)을 자청해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치겠다고 강조하고, ‘입학 연령을 1개월씩 12년에 걸쳐 줄이는 방안도 가능하다’, ‘초등학교 1~2학년에 대해서는 전일제 돌봄을 저녁 8시까지 할 수 있다’는 해명을 내놨다.

하지만 총리실과 박 부총리 모두 학제개편안을 원점에서 검토하겠다고 한 것은 아니다. 정책의 필요성은 이전부터 제기됐고, 2025년까지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한 것이라 논란은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논란이 지속될 경우 윤 대통령의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