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침체 문제가 대두되면서 낙후된 마을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지역 재생 사업들이 추진돼왔다. 사진은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전경./ 뉴시스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다. 일자리, 기업, 교육, 자본, 문화 등이 집중된 수도권에 많은 인구가 쏠리면서 만들어진 기형적인 구조다. ‘기울어진 운동장’ 안에서 많은 지역 중소 도시들이 인구 유출과 침체 위기를 겪어왔다. 정부와 지자체, 지역사회는 균형발전 정책 변화 흐름 속에서 지역 활성화와 재생 방안을 모색해왔다.

◇ 수도권 쏠림 현상이 만든 ‘기울어진 운동장’

“제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한 반 학생이 70명이 넘었죠.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오전과 오후반으로 나눠 수업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충남 한 소도시에서 만난 60대 후반의 택시기사는 자신의 학창시절 경험을 이렇게 떠올렸다. 

우리나라는 1·2차 베이비부머 세대(1955년생~1974년생)를 거치면서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경험했다. 그 당시엔 지역을 가릴 것 없이 인구가 폭증했다. 당시만 해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인구 비율은 나름의 균형을 갖추고 있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70년 비수도권 인구는 2,312만명으로 수도권 인구(913만명)에 비해 훨씬 많았다. 

반세기 가량 세월이 흐른 지금은 어떠한가. 수도권 인구는 2019년 비수도권 인구를 넘어선 후 갈수록 격차가 커지고 있다. 통계청이 2020년 발표한 ‘최근 20년간 수도권 인구이동과 향후 인구전망’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총 인구는 앞으로 수십 년간 감소세를 보이는 가운데,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인구 격차가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통계청이 2020년 발표한 ‘최근 20년간 수도권 인구이동과 향후 인구전망’에 따르면 수도권과 비수도권 인구는 2020년 이후 갈수록 격차가 벌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그래팩=이주희 기자

이러한 수도권 과밀화 현상은 수도권과 지방의 경제적 편차를 증가시키고 지역의 불균형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많은 중소 지역들은 수십 년간 인구감소 흐름 속에서 경기 침체, 공동체 활력 저하, 인프라 저하 등의 위기를 겪어왔다. 

국가는 헌법상 국토를 균형 있게 발전시킬 의무가 있다.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은 2000년대 전까진 성장 및 개발 정책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이러한 지역 간 불균형 해소 문제가 주요 국정 현안으로 자리 잡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다 2003년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한 차례 패러다임 전환을 맞았다.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국가 균형발전 정책이 최우선 국정과제로 승격됐고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 등 균형발전정책의 제도적 기반이 확충된 것이다. 

참여정부는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국가균형발전 5개년계획의 수립·추진 근거를 마련하고 핵심 사업으로 △지역전략산업 선정·육성 △공공기관 지방이전 △혁신도시 조성 등 시책을 제시했다. 이후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각각의 국정 철학 아래 십수 년간 다양한 균형발전 및 지역 활성화 정책이 추진돼왔다. 

◇ ‘중앙주도’에서 ‘진정한 지역 주도’로… 균형발전 패러다임 전환  

지난해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균형발전 전략은 다시 전환기를 맞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국정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진정한 지역 주도의 균형발전 시대 마련 △혁신성장 기반 강화로 지역의 좋은 일자리 창출 △지역 스스로 고유한 특성화 발전 지원 등으로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또한 국정 과제 실현의 법적 토대가 되는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지난 7월 10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참여정부 이후 20년간 균형발전 정책 흐름. / 그래픽=이주희 기자
참여정부 이후 20년간 균형발전 정책 흐름. / 그래픽=이주희 기자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은 ‘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과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을 통합한 법이다. 자치분권위원회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기능을 분산적으로 수행하면서 상호연계가 미흡한 점을 보완하고자 제정됐다. 이러한 통합법 시행을 계기로 자치분권위원회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통합한 대통령 소속 지방시대위원회가 지난 7월 10일 닻을 올렸다. 

해당 통합법은 지역 간 불균형 해소, 지역의 특성에 맞는 자립적 발전 및 지방자치분권을 통해 지역이 주도하는 지역균형발전을 추진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간 균형발전 정책을 둘러싸고 중앙정부 주도의 지역 균형발전 전략으론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지속돼왔다. 이에 균형발전 정책은 ‘지방이 주도하는 분권형 균형발전’으로 전환이 모색되고 있다. 이번 통합법 역시 정책 패러다임 전환 기조를 반영하고 있다.

송우경 산업연구원 지역정책실장은 지난달 특별법 제정 의미와 관련한 보고서를 통해 “지난 20년 동안 별개로 추진된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을 하나로 연계하고, 지역 주도의 분권형 균형발전을 추진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특별법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선 국민적 공감대 속에 지지 기반의 확대와 더불어 기회발전특구 등 분권형 균형발전사업의 성공모델을 조기에 창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대통령자문기구인 지방시대위원회와 시도에 구성되는 지방시대위원회의 적극적 역할 수행, 시도 지방시대 계획, 부문별 계획, 초광역권 발전계획으로 구성되는 지방시대 종합계획의 내실 있는 수립 및 차질 없는 추진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역 주도 균형발전 전략으로 패러다임 전환은 이전 정부 시절부터 대두돼왔던 사안이다. 이에 다양한 지역 주도형 사업들이 적극적으로 추진돼왔다. 지역 재생 전략의 핵심사업 중 하나인 ‘도시재생 사업’도 이러한 정책 기조가 반영되면서 과도기를 겪어왔다. 

도시재생은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개념이 정립되고 본격적인 사업이 시행돼왔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도시재생은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개념이 정립되고 본격적인 사업이 시행돼왔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도시재생은 인구의 감소, 산업구조의 변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주거환경의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지역역량의 강화, 새로운 기능의 도입·창출 및 지역자원의 활용을 통해 경제적·사회적·물리적·환경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을 뜻한다. 2014년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이러한 도시재생의 개념이 성립됐다. 

도시재생 사업은 2014년 정부가 전국 13곳을 도시재생선도지역(경제기반형 2곳, 근린재생형 11곳) 지정하면서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문재인 정부 시절, 도시재생 뉴딜사업으로 전환을 꾀하면서 변화를 맞은 바 있다. 

도시재생 뉴딜 사업은 재건축·재개발의 도시 정비사업과 달리 기존 모습을 유지하며 노후 주거지와 쇠퇴한 구도심을 지역 주도로 활성화해 도시 경쟁력을 높이고 일자리를 만드는 것으로 목표로 한다. 관 주도의 재개발 프로젝트와 달리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지역 주민들의 의견 반영이 매우 중요하다. 지역민 주도로 사업을 발굴하고 지역 가치와 특성에 맞은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볼 수 있다. 

◇ 도시재생 사업으로 주민 참여·지역 자원 발굴 활발 

정부는 2017년 전국 68곳의 도시재생뉴딜 시범사업을 선정한 것을 시작으로 대상 지역을 확대해 다양한 사업을 지원해왔다. 도시재생은 △일자리 창출 및 도시경쟁력 강화 △삶의 질 향상 및 생활복지 구현 △쾌적하고 안전한 정주환경 조성 △지역 정체성 기반 문화 가치, 경관 회복 △주민역량 강화 및 공동체 활성화 등을 목표로 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도시재생사업은 △쇠퇴지역 경제거점 조성을 통한 도시공간 혁신 도모 △지역별 맞춤형 재생사업을 통한 도시경쟁력 강화 △지역과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지역균형발전 선도 등 세 가지 기본방향 아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기존 5개 사업 유형(경제기반형, 중심시가지형, 일반근린형, 주거지지원형, 혁신지구)을 △경제재생 △지역특화재생 두 가지 유형으로 통·폐합하고 사업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정책 기조를 세웠다.

도시재생 사업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어느덧 시행 10년째를 맞고 있다. 일각에서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대비, 사업 효과 측면에선 회의적인 의견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지역 공동체 스스로 지역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고 민관 협력을 통한 다양한 지역 활성화 시도를 통해 지역 재생 방향성을 찾아가고 있는 발판이 된다는 점에서 여전히 의미가 깊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지역 곳곳에선 다양한 도시재생 실험을 통해 지역 가치를 새롭게 발굴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공주시는 도시재생 소규모 주민공모사업을 통해 지역공동체 발굴, 공동체 활성화 촉진, 창의적 사업 발굴 및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공주시

충남 공주시도 이러한 사례 지역 중 하나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충남 공주시는 원도심을 중심으로 10여 년째 다양한 주민 의견이 반영된 도시재생사업이 펼치고 있다. 공주시는 2014년 도시재생선도지역에 선정되며 도시재생 사업에 본격적인 첫발을 내딛은 후 △공주문화예술촌 조성사업 △청년창업 활성화 사업 △주민참여 중심가로 개선사업 △테마가로 골목길 조성사업 △지역공동체 활성화 거점 조성 및 역량강화 사업 등을 다양한 사업을 통해 지역 재생을 꾀해왔다. 

또한 몇 년간 제민천 일대를 중심으로 생태하천 조성사업, 고도이미지찾기사업, 하숙마을 내 여행자쉼터 조성 사업을 통해 도시의 경관을 정비하고 지역에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옥룡동과 중학동을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 뉴딜사업 또한 활발히 추진돼왔다.

공주시에 따르면 시는 도시재생 선도사업을 뿐 아니라, 주민자치 조직이 도시재생사업에 직접 참여하는 주민공모사업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운영해왔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원도심 지역에서 총 135개 사업이 이뤄졌고 누적 참여자 1,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재생 사업과 공동체 활성화 시도는 지역에 변화의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지역 청년들과 민간 청년기업이 원도심에 터를 잡고 마을호텔 브랜드 육성 등 다양한 로컬 실험을 하는 발판을 만들기도 했다. 기자는 지난해 말 이러한 도시재생과 로컬 실험이 이뤄지고 있는 공주시 제민천변 일대 지역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당시 취재에서 만났던 한 지역 활동가 A씨는 “다양한 도시재생 프로젝트와 청년 프로젝트를 계기로 타지인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며 “인적이 드물던 거리엔 다시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 지역 자원 활용한 로컬 실험… 작은 시골 마을서 새로운 가치 찾는다

이 외에도 지역 곳곳에선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주민과 사회적 기업, 지자체가 손을 잡고 지역 살리기에 나선 마을들도 적지 않다. 충남 서천군의 작은 면단위 마을인 한산면도 그러한 사례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충남 서천군 한산면은 천연섬유인 모시와 전통주인 소곡주로 유명한 지역이다. 오랜 역사와 장인정신이 깃든 이 지역조차 지역 쇠퇴의 여파를 피해가진 못했다. 한때 주민들로 들썩이던 마을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면서 활력을 잃어갔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이 지역엔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IT 기반 청년문화기획 사회적 기업인 ‘자이엔트’가 지역 주민과 지자체와 협력해 지역 자원을 활용한 공간 혁신, 공동체 활성화, 청년 정착을 지원하는 사업에 나선 것이 계기가 됐다. 

청년 사회적기업인 ‘자이엔트’는 한산 소곡주와 함께 지역 전통을 체험하며 워케이션을 즐길 수 있는 ‘술케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삶기술학교 인스타그램

‘자이엔트’는 지역 문화 자원을 도시 청년과 연계하는 청년마을 사업인 ‘삶기술학교’를 통해 청년 인구 및 관계인구 유입을 이끄는 한편, 최근까지도 다양한 지역 콘텐츠 발굴과 지역 활성화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서천군도 이러한 지역 공동체 활성화 사업을 계기로 한산면을 중심으로 한 문화유산 활성화, 정주여건 개선, 모시와 소곡주 특화개발 사업 추진 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혜진 삶기술학교 한산캠퍼스 공동체장은 “2016년 한산모시문화제 청년기획단으로 참여하면서 한산면 주민들과 인연을 맺게 돼 지금까지 지역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며 “정착 청년들, 지역 명인 분과 협력해 한산곡주를 리브랜딩한 브랜드를 런칭하고 농업법인도 창업했다. 또 현재는 한산 디지털노마드 센터와 마을 호텔 등 공간을 활용해 ‘술케이션’이란 워케이션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삶기술학교 운영은 끝났지만 이를 발판으로 지역과 상생할 수 있는 다양한 비즈니스를 발굴하고 있다”며 “지속가능성을 확보해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자이엔트는 서천군의 메타버스 노마드 지원사업 등과 연계해 ‘술케이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술케이션은 한산 소곡주와 함께 지역 전통을 체험하며 워케이션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지역 곳곳에선 다양한 공동체 활성화와 지역 자원 개발, 인프라 개선, 혁신적 로컬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시도가 당장의 빠른 인구 증가를 이끌어내지 못할 수 있으나 지역이 스스로 가치를 발굴하고, 이를 통해서 지역의 새로운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균형발전 정책 패러다임 전환에 따라 지역 주도 발전이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지역 살리기 프로젝트가 더욱 활발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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