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소멸’ 담론에서 한발 벗어나 지역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 / 게티이미지뱅크
‘지역소멸’ 담론에서 한발 벗어나 지역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 / 게티이미지뱅크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지방소멸 담론이 지역을 구할 수 있을까. 이번 기획은 이러한 의문에서 출발했다. 지역소멸론은 고령화와 저출산, 인구 이탈이 이어진다면 지역 곳곳이 사라질 수 있다는 위협적인 가정을 담고 있다. 이러한 위협론은 지역 위기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역기능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과도한 공포감을 조장하고 지역 쇠퇴에 대한 비관적인 인식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바로 그것이다.

◇ 로컬은 ‘블루오션’… 기회의 땅으로 인식돼야  

‘소멸위험지역’이라는 단어는 매우 위협적이다. 혹시 이 용어에 시선이 집중되면서 각 지역의 가치와 잠재력, 지역 활성화 노력이 가려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사위크>는 이러한 문제 인식 아래, ‘지역소멸’ 담론에서 한발 벗어나 지역의 관점에서 로컬의 가치와 주민의 삶을 들여다보고자 이번 기획의 첫발을 내딛었다. 

이를 위해 △인천 강화군 △충남 청양군 △경북 의성군 △강원 인제군 등 4개 지역을 중점적으로 탐방해봤다. 각 지역의 인구 변화와 자원, 인프라, 지역 활성화 정책 등을 살펴보는 한편, 여러 거주민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방식을 취했다. 

이들 지역 내에선 다양한 지역 활성화 노력이 이어지고 있었다. ‘인구 숫자’라는 통계수치로는 찾아볼 수 있는 변화의 흐름이 존재했다. 여기엔 지자체의 행정 노력이 뒷받침이 된 경우도 있었고,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파생된 사례도 있었다. 

아울러 도시를 떠나 로컬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고 있는 청년들의 다양한 움직임도 확인됐다. 지역 탐방 과정에서 여러 청년들을 만나 그들이 왜 ‘로컬’을 선택했는지를 들어봤다. 이유는 조금씩 달랐지만 대다수 청년들이 공통적으로 대도시 생활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했다. 한정된 자원을 놓고 치열하게 싸우면서 높은 생존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구조에 대한 회의감이 적지 않았다.

‘수도권 집중화’는 지역 위기를 발생시킨 가장 근원적인 문제다.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살고 있다. 기업, 교육, 자본, 문화 자원이 집중된 수도권에 많은 인구가 쏠리면서 발생한 결과다. 인구 과밀화는 주거비 상승, 교통난, 환경오염, 취업난, 저출산 등 다양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러한 구조에 적잖은 회의감을 느꼈다는 청년들은 대도시라는 ‘레드오션’ 대신, 로컬이라는 ‘블루오션’을 택했다. 블루오션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아 경쟁자가 없는 유망한 시장을 뜻하는 개념이다. 블루오션에서 시장 수요는 경쟁이 아니라 ‘창조’에 의해 만들어진다.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시장인 만큼 초기엔 힘들지만 그 만큼 많은 기회가 존재하는 게 블루오션이다. 

각 지역을 탐방하면서 만난 청년들은 로컬에서 숨은 자원을 발굴해 그들만의 블루오션을 개척하고 있다. 강화도 지역에 정착해 책방을 연 청년 안병일 씨는 지역의 매력을 놓고 “발굴하거나 스토리화 할 것이 많은데, 완성된 것보다 아직 무언가 만들어갈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고 얘기했다. 경북 의성군에서 만난 여행 콘텐츠 기획자인 노아란 의성문화사 팀장은 지역이 갖고 있는 ‘블로오션’으로서 매력에 매료됐다고 전했다. 

서울에서 살다 강화도에 정착한 청년인 김선아 협동조합 청풍 이사는 ‘서울의 삶’과 ‘로컬의 삶’을 스케치북에 비유해서 이렇게 설명하기도 했다. 

“서울과 지역을 하나의 스케치북이라고 생각해보자. 서울은 그 도화지 안에 그릴 도구가 많다. 문제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그림을 그려서 내가 그릴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지역은 새하얀 도화지와 같다. 그런데 도구가 없어서 그림을 그리려고 하면 연필을 만드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

‘로컬’에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작업은 녹록지 않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만난 청년들은 이러한 개척 작업을 혼자가 아닌,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지역 주민, 상인, 예술가, 지자체와 손잡고 지역에 새로운 자원과 콘텐츠를 만드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엔 로컬이 가진 근원적인 힘이 동력이 되고 있다. 바로 ‘사람 간의 관계성’과 ‘공동체’, ‘협업’을 중시하는 문화다.

◇ 지속가능성을 위한 해법… 다양한 세대층 유입책 필요해 

의성군에서 만난 장명석 메이드인피플 대표는 로컬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봤다. 장 대표는 “청년이 로컬의 미래인 것처럼 알려지고 있는데 저는 그 반대로 본다. 오히려 청년에게 로컬이 기회의 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로컬에서 가치를 찾고 있는 청년들이 조금씩 늘면서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지만 지역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위기론은 지속되고 있다. 청년인구 유입 속도보다 인구이탈과 고령화 속도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는 까닭이다. 지방소멸론이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는 배경이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지역 재생을 위한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가다보면 희망의 불씨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다. / 게티이미지뱅크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지역 재생을 위한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가다보면 희망의 불씨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다. / 게티이미지뱅크

사실 지역 정착은 단기간 이뤄질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지역에 정착한 이들 대부분이 나름의 탐색 기간을 거쳐 지역에 정착했다. ‘수도권 집중화’ 현상이라는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단기간에 인구를 대거 유입시키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작은 단위 마을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인구가 필요하다. 그래야 각 마을의 인프라와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지자체의 인구 정책 및 지역 활성화에 있어 다소 아쉬운 지점도 발견했다. 나이를 기준으로 한 청년(18~45세) 인구 유치 정책에 정책적 지원이 집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컬 이주 수요를 갖고 있는 중장년 계층이나 노년 계층은 지원 정책에 있어서 다소 소외돼 있었다. 

인구는 출산에 따른 인구 증대와 외부 인구 유입에 영향을 받는다. 인구 자연증가를 위해선 청년층 인구가 중요하지만 단기간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지역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다양한 세대층을 지역이 품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 계층에서 큰 비중을 갖고 있는 베이비부머 세대층(1955년생~1974년생)의 지역 귀향도 해법이 될 수 있다. 로컬에 대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이주 수요가 있는 인구 계층을 유입시켜 지역 활력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특히 50대~60대 세대층의 경우 경제 활동을 활발히 이어갈 수 있는 계층이다. 출산에 따른 인구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지역 사회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계층으로서 충분히 활동할 수 있다. 인제군에서 만난 50대 귀촌인 부부는 마을 재생 사업에 적극적인 참여 의사를 보였다.

이러한 50대 이상 부모 세대층 유입은 자녀 세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20~30대 청년층 상당수는 로컬에 대한 경험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청년층들은 부모 세대의 귀촌으로 로컬에 대한 탐색 경험을 늘리고 지역과의 관계성을 늘려갈 수 있다.

실제로 의성군에서 만난 청년 창업가인 김진우 씨는 부모님이 귀향한 뒤 지역에 자연스럽게 자주 방문하다가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지역에 정착했다. 

이렇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지역 재생을 위한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가다 보면 지역에 희망의 불씨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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