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은 모이고 있다. 혼자가 편할 때도 있지만 혼자여야‘만’ 하는 건 아니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청년들은 모이고 있다. 혼자가 편할 때도 있지만 혼자여야‘만’ 하는 건 아니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시사위크=안혜림·임다영·홍서연 인턴기자  ‘낭만’이나 ‘연결’ 같은 단어보다 ‘경쟁’과 ‘차이’가 익숙한 요즘이다. 똘똘 뭉쳐 연대 의식을 고취하는 조직에 속하는 것보다 ‘혼자’가 익숙한 청년들.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들은 늘 각자 고군분투하며 치열한 매일을 살아간다. 얼어붙은 취업 시장 속에서 오늘의 동료는 내일의 경쟁자가 되기도 하니 말이다. 우리 사회는 이런 20대 청년을 향해 개인주의가 심화한 세대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청년들은 모이고 있다. 혼자가 편할 때도 있지만 혼자여야‘만’ 하는 건 아니다. 청년들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듯한 현실 속에서 시사위크는 그들이 생각하는 ‘모임’의 의미와 그들이 모이기 위해 택한 방법에 주목했다.

◇ 청년 141명 중 120명, “소속돼 있어야 불안하지 않아요” 

시사위크는 청년들이 ‘모임’과 ‘소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4월 11일부터 27일까지 20대 청년 141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85.1%가 소속감이 삶에 필요하다고 답했다.

“소속돼 있는 모임이 없을 땐 막연한 불안이 밀려와요.”

많은 응답자가 ‘소속의 부재는 단순한 외로움을 넘어 정체성의 혼란과 심리적 고립으로 이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야 삶의 의미가 생긴다고 생각한다는 청년도 있었고, 청년들이 소속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나 모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한 이도 있었다. 또 다른 응답자는 “소속된 집단 안에서 위로받고 의지하며 성장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시사위크는 청년들의 변화된 모임 양상을 포착하기 위해 20대 청년 141명을 대상으로 '시사위크 20대 청년 소속감 인식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85%의 응답자가 인생에서 소속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시사위크는 청년들의 변화된 모임 양상을 포착하기 위해 20대 청년 141명을 대상으로 '시사위크 20대 청년 소속감 인식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85%의 응답자가 인생에서 소속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하지만 실제로 소속감을 느끼는 청년의 비율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취업 준비생의 76%가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는 다른 집단에 비해 현저히 높은 수치다. 응답자들은 그 이유로 △공식적으로 속한 조직의 부재(63.2%) △지속적인 경쟁과 단절된 생활(26.3%) 등을 꼽았다. 이는 학교나 직장이라는 전통적 공동체에서 벗어난 청년들이 속할 모임을 찾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학’에 소속된 대학생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종대학교에 재학 중인 강준모(26) 씨는 “1·2학년 때 진행된 비대면 수업의 여파로 학내 행사나 활동을 경험하지 못했던 친구들이 많다”며 “대면 수업이 재개됐음에도 학생회 행사 참여는 여전히 저조하다”고 말했다. 건국대학교 재학생 이재현(가명·25) 씨는 “요즘은 다들 소셜미디어로 소통하지만, 대면 모임만의 가치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대면 모임의 부재가 사회성 부족 등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직장인의 27%는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들 중 절반은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직장이 만족스럽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겉으론 소속돼 있어도 정작 마음은 불안정한 셈이다.

◇ 인간에게 ‘소속감 욕구’는 기본적인 것, 청년도 예외 아냐

청년들이 입 모아 말했듯, 이들에게도 ‘모임’은 필요했다. 그렇다면 ‘모이는 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또 청년들은 변화한 사회 속에서 어떤 형태의 모임을 형성하고 있을까. 

어떤 집단에 속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개인 정체성에 따라 관계를 맺고 소속감을 고취하는 경향을 보이는 20대 청년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어떤 집단에 속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개인 정체성에 따라 관계를 맺고 소속감을 고취하는 경향을 보이는 20대 청년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부산대학교 심리학과 설선혜 교수는 “인간은 누구나 타인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를 맺고자 하고, 이런 관계를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동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설 교수는 이런 동기를 ‘소속감 욕구’라 칭했다. 소속감 욕구는 생존이나 안전의 욕구만큼이나 기본적이기 때문에 충족되지 않으면 불행해지고 장기적으로는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설 교수에 따르면 소속감 욕구는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전통 사회에서는 물리적 제약이나 사회 관습의 영향이 컸어요. 따라서 대가족이나 마을 공동체 안에서의 역할 수행이나 국가나 종교를 통해 주어지는 가치관에 따른 ‘사회적 정체성’에 의해 소속감을 경험할 수 있었죠. 반면 오늘날 청년 세대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는 데 물리적 제약이 줄어들었고, 관습도 느슨해져 관계 양상도 달라졌습니다. 이에 청년 세대는 각자 추구하는 가치와 선호가 중심이 되는 ‘개인 정체성’에 따라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어요. 어떤 집단에 속한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취향의 공유와 같은 관계 속에서 소속감 욕구를 충족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거죠”

또 설 교수에 따르면 과거에는 삶의 방식이나 취향이 획일화돼 있었고, 민주화와 경제발전 등 사회적으로 시급히 이뤄야 하는 공통 목표가 있었다. 그 밖의 여러 개인적 선호나 사회적 이슈들은 상대적으로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지곤 했다.

설 교수는 “공통된 목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초연결 사회가 도래한 뒤부터 청년들은 외부적으로 주어진 정체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개인의 관심사를 기반으로 관계를 선택하기 시작했다”며 “자신의 삶이 방해받지 않는 선에서 느슨하게 관계를 유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 모이지 못한 사람들, 모이기 위해 움직인 사람들

이처럼 달라진 상황 속에서도 청년은 각자의 방식으로 모이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누군가는 취미를 공유하는 소모임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찾기도 하고, 누군가는 야구장이나 페스티벌 같은 대중적 공간에서 낯선 이들과의 순간적인 연결을 경험한다. 

시사위크가 만난 청년들은 변화한 시대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모임과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기 계발이나 취미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연결될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청년 커뮤니티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과 홍보가 필요하다”는 등의 의견이 다수였다. 또 대학 졸업 후에도 진로를 위해 긴 시간을 투자하는 ‘OO 준비생’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위한 공동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는 모임은 청년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버팀목이다. 전통적 모임은 줄어드는 추세지만, 이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여전히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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