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집무실에서 걸프협력회의 대사들을 접견하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집무실에서 걸프협력회의 대사들을 접견하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시사위크=이선민 기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가 권력 이양 과정에서 현 정권과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다. 대통령 집무실을 당장 이전해야 한다는 문제로 처음 부딪힌 이후 대우조선해양 신임대표 문제, 영부인 옷값 논란 등 문재인 정부의 도덕성 문제를 자극하고 있다. 여기다 기존 정책 재검토까지 강조하면서 전 정부 흔적지우기에 나섰다.

△ 산업은행 부행장∙간부, 통의동 직접 소환

정치권과 금융업계 등에 따르면, 인수위는 지난 달 30일 KDB산업은행 부행장을 서울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로 부른데 이어 31일에는 간부를 불러 최근 진행한 대우조선 신임 대표 선임 과정 등을 질문하고 강하게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KDB산업은행은 대우조선 지분 55.7%를 보유하고 있다.

대우조선은 지난 달 28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박두선 대우조선해양 대표를 선임했다. 박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 동생의 대학동창으로 알려졌다. 인수위는 이를 두고 ‘정권 말 알박기 인사’로 규정하고 ‘비정상적이고 몰염치한 처사’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는 이에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신혜현 청와대 부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인수위가 대우조선 사장 자리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역공했고,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1일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모욕을 당하는 느낌이었다”며 “청와대가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을 드렸으니 (인수위 측이) 정중하게 사과해야 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인수위는 “청와대가 감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며 “감사원에서 상황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조사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감사원에서 알아서 판단해주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감사를 예고했다.

뿐만 아니라 인수위 측에서 현 정권 임기 말에 해외 출장을 가는 장차관급 인사들에 대해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사실도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 하반기에는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대부분의 해외 출장 일정이 중단됐으나, 최근 다시 재개됐다.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은 6.25전쟁 UN참전용사에게 정부 차원의 감사와 예우를 전하기 위해 태국∙터키∙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방문 일정을 소화하고 있고, 행전안전부 전해철 장관은 지난달 27일부터 29일까지 북아프리카 튀니지를 방문해 디지털정부 협력 등을 논의했다.

원일희 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은 1일 이에 대해 “인수위 차원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하겠다는 게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는 없다”면서도 “새 정부 출범 전 공직기강 확립 차원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할지 들여다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 법무부∙공수처도 기선제압

아울러 인수위는 지난 달 3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간담회에서 김진욱 공수처장에게 “거취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국민여론이 있다고 얘기했다”고 밝혔다. 이에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을 지적한 인수위에서 오히려 공수처의 중립성을 해치는 모순된 행태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독립성과 중립성이 중요한 공수처의 수장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점령군처럼 물러나라 압박하다니 개탄스럽다”며 “윤석열 당선인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공공연하게 밝혀왔던 ‘검찰공화국’을 위한 시동을 걸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인수위 측에서는 국민들의 의사를 그냥 전달한 것뿐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또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 폐지 문제와 같은 윤 당선인의 공약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인 후 법무부를 상대로도 업무보고를 사실상 거부하면서 군기잡기에 나선 바 있다. 인수위 정무사법분과는 한차례 업무보고를 거부했고, 박 장관이 한 발 물러서자 업무보고를 받은 후에도 법무부와 박 장관의 의견에 선을 긋는 내용을 브리핑 했다.

이와 함께 정책적으로도 전 정권 지우기에 나섰다. 김기흥 부대변인은 “법무부가 업무보고에서 임대차시장 왜곡을 바로잡고 임차인 주거 안정 등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임대차법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인수위에 보고했다”며 임대차 3법(계약갱신청구권제·전월세 상한제·전월세 신고제)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예고했다.

임대차 3법은 2020년 7월 더불어민주당이 세입자 보호를 명목으로 추진해 국회에서 통과시킨 법안으로, 지난 달 28일 인수위에서 폐지·축소 등을 검토하겠다는 의견을 밝힌 후 민주당 측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법무부가 업무보고에서 이를 검토한 내용을 보고 했지만, ‘전면 재검토’가 아닌 ‘제도 개선 방안 도출’이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관련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이 31일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김정숙 여사의 의상 논란 및 특수활동비 사용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박 수석은 특활비·김정숙 여사 옷값 관련 무분별한 의혹제기에 유감을 표하며 '감사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 관련해 단 한 건의 지적사항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뉴시스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이 31일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김정숙 여사의 의상 논란 및 특수활동비 사용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박 수석은 특활비·김정숙 여사 옷값 관련 무분별한 의혹제기에 유감을 표하며 '감사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 관련해 단 한 건의 지적사항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뉴시스

△ 문 대통령, 잊혀진 삶 가능할까

여러 논란 중에서도 현재 문재인 정부의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한 문제는 김정숙 여사의 옷값을 둘러싼 논쟁이다. 한국납세자연맹이 ‘김 여사의 의상·액세서리·구두 등 품위유지를 위한 의전비용과 관련된 정부의 예산편성 금액 및 지출 실적’ 등을 요구하는 정보공개청구를 한 이후 국민의힘에서 특활비 내역을 공개하라고 나서자 청와대 측에서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특활비는 법령에 따라 집행 내역이 비공개라고 맞서는 상황이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청와대의 설명에도 관심을 기울여 달라”며 “특활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국정수행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다. 청와대 뿐만 아니라 법무부, 국정원, 검찰 등 주요 정부기관에 다 편성되고 집행되며, 현재는 관련 법령에 따라 집행 내역은 비공개 하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청와대 특활비 문제가 하도 국민 눈높이에 안 맞는 부분이 있으니, 투명성과 책임성을 체계적으로 개선해 왔다”며 “특활비에 대해 감사원 결산 검사를 받도록 제도를 만들어서 특수활동비 운영 실태에 대해 스스로 점검을 받고 있고, 다행히 감사원으로부터 지난 5년간 단 한 건의 지적도 받은 바 없다”고 결백을 강조했다.

이어 “개인 의상 등을 사비로 구입했고, 특수활동비와 전혀 관계없다고 했더니 일부에서 ‘옷값이 사비라면 왜 특활비를 공개하지 않느냐’는 주장을 한다”며 “특활비의 경우 법으로 비공개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왜 공개하지 않냐고 하면 저희보고 위법을 하라는 이야기다.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하는 하소연을 드려보고 싶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대한불교 조계종 제15대 종정 성파 대종사 추대 법회에 참석해 성파 스님과의 차담 자리에서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서 잊혀진 삶, 자유로운 삶을 살겠다”는 계획을 전했다. 2020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임기 후 계획에 대해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1일 법원이 정보공개를 결정한 경우 대통령기록물의 비공개 지정을 제한해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은 ‘대통령기록물 관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법원이 정보공개를 결정한 경우나 정보공개 청구에 대한 법원의 재판이 진행 중인 경우에는 대통령기록물을 비공개로 분류하거나 보호기간을 정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연일 각종 논란의 중심에 있는 문 대통령이 잊혀힌 삶을 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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