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의 경쟁 제한 지적에 아시아나항공 화물부문을 별도로 매각하고,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유럽 주요 노선 슬롯도 내놓는 것을 합병시정서 초안에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일각에서는 반쪽짜리 합병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 뉴시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의 경쟁 제한 지적에 아시아나항공 화물부문을 별도로 매각하고,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유럽 주요 노선 슬롯도 내놓는 것을 합병시정서 초안에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일각에서는 반쪽짜리 합병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제갈민 기자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합병을 위해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를 별도로 매각하고, 현재 아시아나항공이 보유 중인 유럽 노선의 일부 슬롯(특정 공항 이착륙 배정 시간·횟수)도 포기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양사 합병에 대해 유럽연합(EU)에서 경쟁 제한(시장 독과점)을 지적하며 제시한 추가 요구사항을 모두 수용한 조치라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차(車)·포(包) 다 뗀 반쪽짜리 합병’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오는 27일 EU 집행위원회(EC)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합병시정서 초안을 제출한다. 여기에는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전체 매각 △자사 14개 유럽 노선 중 4개 노선 여객 슬롯 반납 조정안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슬롯 반납 대상 유럽 노선은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함께 취항 중인 △인천∼파리 △인천∼프랑크푸르트 △인천∼로마 △인천∼바르셀로나 4개가 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대한항공의 이러한 결정은 지난 5월 EC에서 문제점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당시 EC는 중간 심사보고서(SO)를 통해 “양사 합병으로 유럽∼한국의 모든 화물 운송 서비스 경쟁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인천∼파리·프랑크푸르트·로마·바르셀로나 4개 노선에서 여객 운송 서비스 경쟁이 제한될 우려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대한항공의 한국∼미주, 한국∼유럽 노선의 항공화물 시장 점유율은 각각 51.6%, 40.6%로 알려졌다. 여기에 아시아나항공의 점유율을 더하면 한국∼미주 73.4%, 한국∼유럽 59.6%로 늘어난다.

유럽 주요 4개 노선에서도 독과점 논란이 적지 않다. 인천∼파리는 △대한항공 주 8회(화요일 2회, 그 외 하루 1회) △아시아나항공 주 6회(수∼월 하루 1회) △에어프랑스가 주 7회(하루 1회) 각각 운항한다. 인천∼프랑크푸르트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루프트한자 독일항공 3개 항공사가 각각 주 7회(하루 1회), 에어프레미아가 주 4회(일·화·수·금요일) 운항하고 있다. 인천∼로마·바르셀로나 노선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만 취항해 운항하는 상황이다.

이 상황 그대로 합병을 승인하면 통합 항공사가 인천∼로마·바르셀로나 노선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게 되며, 인천∼파리·프랑크푸르트 노선에서도 외항사 대비 2배 수준의 운항을 하며 과점을 하게 된다.

이 때문에 현재 상태 그대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이 성사되면 시장 독과점 및 운임 상승으로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돼 합병을 승인할 수 없다는 얘기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 6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례 총회에서 블룸버그TV와 인터뷰를 통해 “무엇을 포기하든 합병을 성사시킬 것”이라고 말하며 아시아나항공 합병에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사진은 지난 2019년 6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된 IATA 제75차 연차 총회. / 뉴시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 6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례 총회에서 블룸버그TV와 인터뷰를 통해 “무엇을 포기하든 합병을 성사시킬 것”이라고 말하며 아시아나항공 합병에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사진은 지난 2019년 6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된 IATA 제75차 연차 총회. / 뉴시스

이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을 위해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조 회장은 지난 6월 5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린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례 총회 중 블룸버그TV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여기에 100%를 걸었다”며 “경쟁당국과 논의·협상을 할 것이며, 무엇을 포기하든 합병을 성사시킬 것”이라고 말하며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그러나 업계에선 EC 측의 요구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할 경우 통합 항공사의 핵심 경쟁력이 훼손될 수 있을 것이란 견해가 적지 않다. 앞서 영국 경쟁당국의 심사 과정에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영국 런던 히스로공항 주 7회 슬롯을 영국의 버진애틀랜틱항공에 반납하기로 했다. 또 중국 경쟁당국 심사에서도 46개 슬롯을 내놓았다.

여기에 아시아나항공이 가진 유럽 주요 노선 슬롯까지 고스란히 포기하는 모양새다. 뿐만 아니라 미국 경쟁 당국인 미국 법무부(DOJ)에서도 양 항공사가 동시에 취항하는 뉴욕·로스앤젤레스(LA)·샌프란시스코 등에 대해 독과점을 꼬집고 있어 대한항공 측이 해당 공항의 슬롯을 일부 반납하는 방안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2년간 연매출 3조원 규모의 아시아나항공 화물부문을 별도로 매각하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업계를 비롯해 일각에서는 이번 합병을 두고 ‘아시아나항공 공중분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합병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크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대한항공 측은 아직 협의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 현재로써는 명확한 내용 설명이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대한항공 측은 “EC와 현재 경쟁제한성 완화를 위한 시정조치안을 면밀히 협의하고 있다”며 “늦어도 10월말까지는 시정조치안을 확정해 제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현재 협의 중인 시정조치안 세부 내용은 경쟁당국의 지침으로 인해 밝히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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