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필주 기자  부동산 PF대출 만기도래로 워크아웃을 신청한 태영건설 지원을 두고 여러 말이 오가고 있다. 태영건설이 수분양자·협력업체·채권자의 피해 최소화를 위해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다.  

지난 3일 열린 채권단 설명회에서 태영건설이 오너일가 사재출연, SBS 지분 매각 등이 빠진 자구 방안을 내놓자 일각에서는 ‘국민 혈세 및 채권단 자금 등으로 과연 태영건설 살리기에 나서야 하나’라는 의문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 태영건설 사태는 그간 시장 내에서 경고돼왔던 부동산 PF 리스크가 현실화된 첫 사례다. 따라서 이를 매듭짓는 정부의 결정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다.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냐에 따라 이후 현실화되는 제2·3의 부동산 PF 리스크에 대한 대응 기조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아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앞서 지난해 12월 금융당국이 부동산 PF 리스크를 겪는 건설사에 대해 ‘옥석가리기’에 나설 것을 시사했다는 점이다. 이어 최근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과 관련해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금융당국 등은 태영건설이 뼈를 깎는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워크아웃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또 지난 4일 정부는 ‘2024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선제적 유동성 지원 확대 △부실우려·부실사업장 재구조화 촉진 △부동산 개발사업 추진방식 근본적 개선 등을 통해 부동산 PF 연착륙을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불안하다. 정부가 그간 부실기업을 무차별 지원하면서 남긴 ‘대마불사(大馬不死)’ 사례가 워낙 많아서다. 

특히 지난 1997년 터진 한보철강 사태가 대표적이다. 고(故)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은 당시 정관계 유력인사들에게 뇌물을 준 뒤 이를 통해 은행권 등으로부터 5조7,000억원 가량의 불법대출을 받게 됐다. 이 자금으로 한보그룹은 무차별 인수합병 및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에 나섰고 부실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 결과 한보철강 당진제철소가 부도처리됐고 이는 곧 100여개 거래기업 도산으로까지 이어졌다. 더 나아가 한보철강 사태는 IMF사태의 시발점이 됐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문제는 한보철강 사태 처리 과정에서 정부가 무분별한 추가지원을 이어갔다는 점이다. 오죽했으면 당시 조흥은행·외환은행 등 채권단은 정부의 추가자금 지원이 채권은행을 비롯한 은행권의 공동부실화를 자초할 수 있다고 경고까지 했다.

여기에 오는 4·10 총선도 정부의 ‘옥석가리기’ 의지를 믿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앞서 지난 3일 채권단 설명회에서 태영건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태영건설의 협력업체 수는 외주 581개사, 자재 494개사 등 총 1,075개사에 달한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이 수용되지 못할 경우 협력업체에게 피해가 확산될테고 이는 총선을 마주한 정부·여당 입장에서 막대한 부담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정부는 부동산 PF 리스크 관리 과정에서 일체의 정무적‧정치적 개입 없이 재무자료 등 객관적 수치, 분석결과 등을 토대로 철저히 ‘옥석가리기’에 나서야 한다.

이미 다수의 전문가들 또한 철저한 ‘옥석가리기’를 주문하고 있다.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으나 사업성이 높은 우량사업장 등은 살리고 지원 대비 손실 규모가 크거나 일어설 기미가 없는 부실사업장은 과감히 정리하는 등 시장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덤으로 지원에 앞서 건설사의 자구 방안 검증 및 실행 여부 감시 등은 필수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만기연장 등으로 막아왔던 PF발 위기가 현재는 곪아버린 상황”이라며 “정부의 무조건적인 건설사 살리기가 능사는 아니다. ‘옥석가리기’를 통해 고름을 도려내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PF 리스크 관리의 첫 사례가 남게 될 태영건설 사태, 정부의 신중하고 철저한 ‘옥석가리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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