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신구 기자 “앞으로 종종 만나기로 했다”는 약속은 지켜질 수 있을까.
지난 4월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은 멈춤 상태다. 22대 국회 개원과 여야 전당대회 등 정치적 이슈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궁극적으론 여야의 ‘극한 대립’이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잠시 ‘해빙기’에 접어드는 듯했으나, 야당의 ‘채상병 특검법’ 재발의 등으로 다시 경색된 분위기는 일말의 가능성조차 사라지게 했다. 여권은 야당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다며 영수회담에 선을 긋는 모습이다.
◇ ‘훈풍’은 잠시… 다시 정쟁의 늪 빠진 여야
9일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언급한 ‘선 영수회담 후 여야정 협의체’ 조건에 대해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 곽규택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민생 회복에 대한 의지와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국회를 정쟁과 방탄의 아수라장으로 전락시킨 데 대한 반성이 우선”이라며 “국회 정상화에 앞장서 협치의 신뢰를 쌓은 후 대통령을 만나 현안을 논의해도 늦지 않는다”고 했다.
앞서 이재명 민주당 당 대표 후보가 TV 토론회에서 운을 띄운 영수회담 제안은 박찬대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힘을 실으면서 본격화됐다. 박 직무대행은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경제 비상 상황 대처와 초당적 위기극복 협의를 위해 여야 영수회담을 조속히 개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5일 발생한 코스피 폭락 사태 등으로 경제 위기 우려가 고조된 만큼, 여야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취지다.
‘민생’이라는 고리에 여당도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같은 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책에 관해 협의하는 건 좋은 일”이라고 했다. 다만 한 대표는 “절차나 격식은 차후에 따져도 되지 않겠나”라고 했다. 여권 내에서는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여야 대표 간 회동이 우선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렇다고 영수회담 제안을 완전히 차단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대통령실은 일단 야당의 전당대회가 끝나고 판단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여야가 민생법안 처리에 한 목소리를 내고 여야정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하는 등 휴전 모드에 접어들면서 영수회담의 성사 가능성이 높아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러한 훈풍은 오래 가지 못했다. 민주당이 ‘여야정 협의체’ 구성을 위한 조건으로 영수회담을 내건 것이 여당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민주당은 ‘책임과 재량 부족’을 이유로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거쳐야 한다고 했지만, 여당은 야당의 태도가 다분히 정치적이라며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민주당이 전날(9일) 세 번째 ‘채상병 특검법’을 발의하자 분위기가 싹 가라앉았다. 야당은 새 법안에 김건희 여사와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를 수사 대상에 포함시키며 ‘불법 로비 의혹 사건’이라는 내용을 추가했다. 당장 곽 수석대변인은 “정부·여당이 수용하기 힘든 쟁점 법안과 탄핵안들을 밀어붙여 놓고 이제 와서 대통령부터 만나자는 것은 일방통행 생떼”라고 쏘아붙였다.
여권은 야당의 진정성이 없는 상황에서 회담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분위기다. 지난 4월 영수회담에서 이재명 전 대표가 미리 준비해 온 A4 용지 10장 분량의 원고를 읽어 내려갔던 장면이 여권에게는 썩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는 점도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김종혁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이날 JTBC 유튜브 라이브 ‘장르만 여의도’에 출연해 “그때 저는 국민의힘 소속이니까 굉장한 모멸감을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MBC ‘뉴스외전’에서 “(지난번처럼) ‘망신 주기’ 하는 것만 아니면, 대통령하고 야당 대표가 만나셔도 된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국회 정상화’가 우선이라며 영수회담에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경색된 여야 관계가 영수회담 성사에 구조적 어려움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창환 장안대 교수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필요성에 대해선 용산이나 민주당도 어느 정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국회가 대치 중에 (야당에) 줄 게 없는 상황이다 보니 마땅히 성사되기 쉽지 않은 구조”라고 했다. 이어 “(여권의) 대승적 결단이 필요하다”며 “갈등의 핵심인 채상병 특검에 대해 전향적 입장을 내놓거나, 그에 미치지는 못해도 들어줄 수 있는 야당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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