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증권이 배당금 대신 주식을 발행하는 초대형 금융사고를 일으키면서 투자자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사진은 삼성증권 지점에 게시된 구성훈 대표이사의 사과문. <뉴시스>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삼성증권이 배당금 대신 주식을 지급하는 최악의 금융사고를 일으켰다. 6일 아침 삼성증권이 우리사주 조합원에게 지급한 주식은 모두 28억3,162만주, 그 값어치는 약 112조원에 달한다(5일 종가 기준). 삼성증권 시가총액의 33배에 해당하는 액수다. 주식을 배당받은 삼성증권 직원들이 30분간 501만주를 매도하면서 5일(종가 기준) 3만9,800원이었던 삼성증권 주가는 6일 한때 3,000원 이상 떨어졌다.

이번 삼성증권 사태는 국내 금융계의 도덕적 해이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손해를 본 투자자들이 집단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남아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금융시스템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신뢰성이 크게 떨어졌다는 점이다. 이들은 그동안 주식시장에서 개미를 울리는 주범으로 지목받아온 공매도 제도의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 삼성증권의 ‘유사 공매도’ 사태, 개인투자자 공분 불러

엄밀히 말해 삼성증권 사태를 공매도라고 부를 수는 없다. 공매도는 향후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소유권이 없는 주식을 팔았다가 차후 구매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삼성증권의 경우 처음부터 발행한도(1억2,000만주)를 넘어서는 증권이 발행됐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유령주식’을 발행·판매한 사례에 해당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사태로 드러난 주식발행‧거래 규제시스템의 허술함이다. 유령주식이 아무런 제약 없이 발행 및 판매됐다는 것은 곧 증권사가 자의적으로 공매도에 나서는 것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벌어지지 않아야 할 일이 생겼다”고 발언한 것도 이와 같은 취지다. 허술한 시스템과 도덕적 해이 문제는 물론, 유령주식을 배당하고 그것을 재판매한 행위는 결론만 놓고 보면 ‘무차입 공매도’와 다를 바가 없다. 일반적인 공매도가 주식을 빌려와서 판매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반면 무차입 공매도는 차입조차 건너뛰고 거래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한국은 이 무차입 공매도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삼성증권 사태가 터진 4월 6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국내 증권사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제목은 ‘삼성증권 시스템 규제와 공매도 금지’다. 청원자는 이번 사태를 야기한 삼성증권의 주식발행시스템을 가리켜 “회사에서 없는 주식을 배당하고, 그 ‘없는 주식’이 유통될 수 있는 시스템이다”며 “대차 없이, 주식도 없이 그냥 (주식을) 팔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고 지적했다. 해당 청원에 동참한 인원은 9일 오후 5시 현재 19만명을 넘어섰다.

◇ 공매도 폐지, 가능성 높지 않아… 규제수위 강화 가능성 있어

공매도 자체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인정받고 있는 주식투자기법이다. 주식시장의 거품을 걷어내고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다는 순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공매도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것은 공매도가 투자자들 간의 정보격차를 부풀릴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이자비용 등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개인투자자가 참여할 자리는 사실상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공매도가 자본력을 갖춘 외국인과 기관투자자의 전유물이라는 지적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세계 주요국이 공매도를 본격적으로 규제하기 시작한 계기는 2008년 금융위기다. 금융안전성의 중요성이 금융효율성을 뛰어넘었던 시기인 만큼 주가의 급등락을 유발할 수 있는 공매도를 규제해야 한다는 의식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주식시장을 보유한 미국·영국은 물론 오스트레일리아·대만·네덜란드 등도 2008년 9월을 중심으로 공매도 규제 조치를 잇달아 발표했다. 규제 대상은 시가총액 상위 종목이나 주가가 일정 기간 동안 종가를 하회할 경우, 또는 금융권 종목 등 제각기 다양했다.

한국 또한 2008년 10월 전 종목의 차입공매도를 일시 금지하는 조치를 발동했지만 이후 규제 수위는 등락을 반복했다. 금융위기의 여파가 가라앉으면서 공매도 허용범위를 넓일 때도, 일반투자자의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규제 수위를 높일 때도 있었다. 다만 ‘무차입 공매도’는 2000년 이후 언제나 금지 대상이었다.

증권사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와 공매도 폐지를 요구한 청와대국민청원은 곧 20만명 이상의 지지를 얻어낼 것이 확실시되며, 이 경우 청와대는 공식 답변을 내놓아야한다. 이미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집중 점검’을 약속한 만큼 증권사를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는 실현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그러나 공매도 폐지는 또 다른 문제다. 금융당국이 주식시장의 위축을 초래할 수 있는 공매도 폐지를 결정할 확률은 매우 낮지만, 조사 결과에 따라 허용 기준을 강화하거나 처벌 수위를 높이는 방식으로 조치할 가능성은 있다. 한편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경우 공매도 금지와 관련해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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