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곤혹스런 처지에 몰렸다. 사법농단 사태에 대해 사실상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키웠다는 비판을 샀다. 진영을 떠나 모든 정치권과 사법부 안팎에서 그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사법부 수장 김명수 대법원장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전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에 벌어진 재판거래 의혹으로 불똥을 맞았다. 사건 관련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 기각률이 89%에 이른다는 점에서 ‘제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샀고, 급기야 법원이 증거인멸을 도왔다는 의심을 받았다.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출신 유해용 변호사가 영장 기각을 틈타 대법원에서 무단 반출한 기밀자료 수 만 건을 파기한 것이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를 두고 검찰은 ‘신(新) 사법농단’이라고 불렀다.

◇ “리더십 발휘 못하고 사태 키웠다”

모든 화살은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향했다. 여·야와 진보·보수 모든 진영에서 책임을 추궁 당했다. 진보진영에선 개혁 의지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여당에서 국정조사를 꺼내든 이유기도 하다. 더불어민주당 법사위원들은 “국회 차원에서 사법농단의 실체를 파악하고, 사법농단 수사에 비협조적인 사법부의 구조적인 문제까지 살펴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보수진영의 시선도 곱지 않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데 대한 책임론이다. 법사위원장인 여상규 자유한국당 의원은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상당히 실망했다”고 말했다. 

결론은 리더십 부족이다. 당장 법원 내부에서도 불만이 나오고 있다. 사법부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데도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온적인 대처로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만 깊어진 게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 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 13일 대법원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야 침묵을 깼다.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대국민 담화 이후 3개월여 만이다. 그는 “사법부 대표로서 통렬히 반성한다”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검찰 수사에 대한 협조 방침은 여전했다. “대법원장으로서 일선 법관의 재판에는 관여할 수 없으나, 사법행정 영역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수사 협조를 하겠다”는 것. 김명수 대법원장은 “헌법이 사법부에 부여한 사명과 사법 권위를 스스로 훼손했다는 점에서 매우 참담한 사건”이라면서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들에 대한 엄정한 문책이 필요한다는 것이 저의 확고한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박병대·고영한·차한성 전 법원행정처장 등이 불참했다. 

김명수 사법부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반발도 거세지는 형국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다시 한 번 사과했다. <뉴시스>

김명수 대법원장의 의지 표명에도 우려의 목소리는 계속됐다. 이미 3개월여 전부터 약속했던 검찰 수사 협조는 사실상 지켜지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은데다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즉 원론적 발언에 그쳤다는 얘기다. 실제 그는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다. 대신 “사법부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여러 현안들”이라고 달리 표현했다. 법조계 안팎에선 김명수 대법원장의 발언이 기대에 못 미쳤다는데 답답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도 복잡한 표정이다. 오는 25일 취임 1년을 앞두고 쏟아지는 부정적 평가가 반가울리 없다. 인사청문회에서 방패가 돼줬던 여당에서조차도 “모든 책임은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취임 당시만 해도 사법 개혁의 적임자로 불렸던 그는 1년 새 공공의 적이 됐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부에 쌓여온 폐단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고 다시는 이런 폐단이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 개혁을 이루는 것이 지금 저에게 주어진 소명임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며 볼멘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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