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칼럼니스트
하도겸 칼럼니스트

불교에서는 함께 도를 닦는 벗을 도반(道伴)이라고 한다. 인생이라는 험난한 길을 함께 가는 친구가 진정한 도반이 아닐까 싶다. 다음날이 주말이라 출근하지 않고 밤새 놀 수 있다는 불타는 금요일, ‘불금’에 혼자서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혼차’를 한다. 한 동네에 사는 도반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미안하지만, 내일 새벽 6시경에 잠시 차를 태워줄 수 있어요?” 이유도 묻지 않고 바로 흔쾌히 오케이라고 즉답을 한다. 얼른 마시던 차도구(茶具)들을 정리하고 귀가한다. 

잠자리에서 꿈 수행(잠명상)에 들어가려는 순간 초인종이 울린다. 골목 안에 바로 차를 세워뒀는데 뒷 차 주인이 내일 7시에 출근하니 자리를 바꾸자고 한다. 먼저 나가니 괜찮다고 전하고 다시 이부자리로 돌아온다. 왠지 잠이 안 온다. 초인종소리에 잠을 설치게 된 건지 뭔가 말하기 어려운 애매한 느낌이 떠나지 않는다. 불현듯 회사에서 있었던 일도 생각나고, 다른 일도 생각나다가 결국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날이 샜다. 

동창이 밝아오자 얼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차로 픽업한다.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괜히 무뚝뚝하게 대하고 다른 운전자 탓을 하며 짜증을 낸 것 같다. 양심이 찔렸지만 어제 제대로 잠 못 자서 그렇다는 변명으로 대신하며 도리어 도반을 미안하게 만들었다. 

집에 돌아와 쏟아지는 잠을 뒤로 미루고 참회명상에 들어간다. 왠지 못되고 큰 얼굴이 거울에 비춰 지기 시작했다. 도반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식으로 생색을 낸 것으로 원인이 모여졌다. 그러고 보니 어제 밤에 잠은 정말 절실하게 자고 싶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무의식적으로 불금의 여유를 부리며 처음부터 핑계를 대며 생색낼 요량으로 상념에 빠지는 것을 즐긴 건 아닌지..... 

‘오래된 미래’인 북인도 라닥의 승려가 산보하는 모습 / 하도겸 칼럼니스트
‘오래된 미래’인 북인도 라닥의 승려가 산보하는 모습 / 하도겸 칼럼니스트

계주생면(契酒生面)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평소에 남에게 술 한 잔 대접 안 하던 사람이 모임에서 준비한 술을 마치 자기 술 인양 생색을 내며 권하는 모양을 비유한 말이다. 이야기는 좀 다르지만, 평소에 그렇게 은혜를 입고도 조금 도와준 것으로 온갖 생색을 다 낸 샘이다. 양심이 다시 회복되어 그런 뻔뻔함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참회를 하자마자 왠지 잘 잘 수 있을 거 같다는 안도감이 불현 듯 찾아든다. 참회를 했으니 이젠 자도 된다는 셀프 면죄부를 발행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윽고 긴장이 풀려 그냥 잠에 푹 빠진다. 남들이 봤다면 “이부자리에 들자마자 바로 코 곯고 자던데”라고 했을 것 같다. 자기 전에 명상을 한 것인지 아니면 꿈속에서 그런 사색의 단편들을 주어 담았는지 여부는 화두와 같은 수수께끼로 또 다시 오늘의 숙제가 된다.

Have a good dream! 오늘은 잘 잘 수 있을 거에요!

이 글은 생색으로 불편하게 했던 도반과 혹시라도 어젯밤 제대로 잠 못 이뤘던 분들께 드린다. 사진은 ‘오래된 미래’인 북인도 라닥의 승려가 산보하는 모습이다. 도반이 한 두분 함께 했다면 참 좋은 사진이 되었을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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