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범찬희 기자  2019년 기해년 새해를 알리는 보신각 타종 소리를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사무실 책상 위 달력이 5월을 가리키고 있다. 5월의 첫 날, 많은 직장인들이 잠시나마 일 걱정에서 벗어나 꿀맛 같은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고해성사를 하자면 기자 역시 근로자의 날을 그저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쉬는 날’ 정도로 여겨왔다. 그래도 ‘사회의 목탁’이라는 언론계에 종사하고 있으면서 이날의 참 뜻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그리 많은 거 같지 않다. 하지만 올해는 좀 달랐다.

근로자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4월의 마지막 날. 이날 기자는 올해 초 한 대기업 식품공장에서 발생한 산재 사고에 대해 취재하는 과정에서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게 됐다. CJ씨푸드 성남공장에서 일하다 기계에 끼여 중태에 빠졌던 40대 근로자 A씨가 결국 숨을 거두게 됐다는 비보였다.

순간 기자의 머릿속에선 두 가지 생각이 번뜩 스쳤다. 우선 ‘왜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는가’다. 당시 사고 소식을 보도한 매체가 여러 곳이었지만, 이에 대한 후속 취재를 한 곳이 없다는 게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아마 취재는 이뤄졌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최종 보도까지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두 번째는 얼마 전 인터넷을 통해 본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다. ‘고용부 성남지청-CJ씨푸드 워라밸 파트너 체결’. 정보 출처가 보도자료로 추정되는 해당 기사는 경기 지역신문 일부와 경제지를 통해 보도가 이뤄졌다. 근로자 권익 증진을 위해 사업장과 감독 기관이 뜻을 함께 한다는 건 분명 박수 받을 일이지만, A씨의 죽음을 알게 된 기자의 맘은 결코 편치 않았다.

얼마 전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이 워라밸 운운하는 건 낯간지러운 구석이 있다. 더군다나 A씨의 죽음이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서, 근로환경 개선 홍보에만 열을 올리는 건 인간된 도리를 벗어났다는 생각까지 든다.

비난의 화살은 CJ씨푸드 뿐만 아니라 고용노동부에도 돌리고 싶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해 조사 중인 피감독기관과 파트너십을 맺는 건 모종의 결탁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걸 염려했어야 한다. 만약 기업의 위법행위를 조사 중인 수사기관이 해당 기업과 업무 협약을 맺는다면 납득이 되겠는가. 아직 고용부 성남지청은 CJ씨푸드에 대한 사법조치를 완전히 마무리하지 않은 단계에 있다.

세상 일에는 ‘정도’라는 게 있다. 홍보(PR)라는 게 아무리 ‘피할 건 피하고 알릴 건 알리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의 목숨에 관해서는 좀더 인도주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CJ씨푸드가 A씨에 대해 조금이나마 추도하는 마음이 들었다면 업무협약은 차후로 미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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