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9 21:54
[김재필 '에세이'] H에게- 칠레의 시위와 부의 양극화
[김재필 '에세이'] H에게- 칠레의 시위와 부의 양극화
  • 김재필 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 승인 2019.11.1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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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지금 지구의 반대쪽에 있는 남미 칠레에서는 지하철 요금 인상에 반대해서 시작된 시위가 거의 한 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네. 수도 산티아고에 비상상태가 선포되고 야간 통행금지 조치가 내려졌지만 시위는 오히려 더 격렬해졌다는군. 그래서 정부는 산티아고에서 열릴 예정이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COP25)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네. 정부가 지하철 요금 인상을 철회하고, 노동시간을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등 서민들의 민생고를 완화하는 정책 변화를 발표했지만 시위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어. 급기야 칠레 정부는 지난 10일에 반정부 시위대의 핵심 요구 사항인 헌법 개정을 수용하겠다고 발표했네. 하지만 개헌 방식에 대한 정부와 시위대의 생각이 크게 달라서 혼란이 계속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외신들의 전망일세.

칠레는 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네. 1970년대 말부터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크가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여 공공부문과 구리광산 등을 민영화함으로써 경제가 성장했지. 그래서 한때는 ‘라틴 아메리카의 경제기적’,‘남미의 경제우등생’등으로 칭송이 자자했네. 1900만 인구에 국내총생산 규모가 세계 40위권이고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5,000달러가 넘으니 꽤 부자인 나라인 것은 사실이야. 중남미국가로는 멕시코와 함께 선진국 클럽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이기도 하지.

하지만 칠레는 OECD 국가들 중 가장 불평등이 심한 나라일세. 유엔 중남미·카리브해경제위원회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소득 1%가 전체 국민소득의 26.5%를 차지하는 반면, 하위 50%에게 돌아가는 소득은 전체의 2.1%였네. 그래서 지니계수도 0.5에 가까워. 왜 그럴까?

칠레 시민들은 독재자 피노체트가 1980년에 국민투표를 거쳐 제정한 헌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네. 국가의 역할을 제한하고 시장을 중시한 헌법이 신자유주의 정책들의 토대가 되었다는 거지. 실제로 칠레는 지난 몇 십 년 동안 국민연금, 건강보험, 전기, 가스, 수도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거의 모든 것들을 민영화한 나라로 유명하네. 그래서 칠레 국민 10명 중 9명은 기본권을 강화하는 헌법 개정을 원한다는 여론조사도 있네. 결국 이번 시위는 지하철 요금 30페소(한화 약 50원) 인상 때문에 촉발되었지만, 그 분노의 밑바닥에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으로 인해 심화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시민들의 오랜 불만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거지.

개인들의 경제적 자유와 무한 경쟁을 통한 적자생존의 원칙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는 어느 나라에서든 필연적으로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밖에 없네. 1등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승자 독식(Winners take all)을 공정하다고 생각하니 당연하지. 공공부문 기업의 민영화, 농업 등 비효율적 생산자에 대한 보조금 삭감, 복지나 교육 등에 필요한 공공지출의 삭감, 민간부분에 대한 탈규제화, 노동의 유연화, 자본이동과 무역의 자유화 등 신자유주의자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주장들도 거의 모두 가진 자들을 위한 것들이야. 게다가 국경이 사라진 세계화된 시장에서 싸워 이길 경쟁력 향상까지 강조하니 어디에서든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중산층은 줄어들 수밖에 없어. 이번 칠레 시위도 지난 40여 년 동안 격렬하게 진행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생각하면 되네.

미국도 OECD국가들 중 칠레 못지않게 부의 양극화가 심한 나라일세. 그래서 요즘 미국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들도 빈부격차를 완화시킬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네. 유력 주자 가운데 한 사람인 엘리자베스 워런은 미국의 빈부격차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그 처방전으로 부유세(Wealth Tax)를 제시하고 있네. 부자들에게 세금을 걷어서 많은 젊은이들이 무료로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게 만들고, 무상 보육, 도로 확장 등 대규모 사회 인프라 구축에 사용하겠다는 거야. 민주당의 젊은 대선주자인 앤드루 양(44)은 18살 이상 모든 미국인에게 월 1000달러의 자유배당금을 주겠다는 파격적인 공약을 제시했네. 그에 필요한 돈은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 인공지능(AI)과 자동화 기술로 많은 돈을 벌고 있는 기업들에게 세금을 걷어 충당하겠다는 거지. 개인주의적 자유주의가 팽배한 미국에서 이런 주장들이 나오는 걸 보면 미국도 부의 양극화가 얼마나 큰 사회문제가 되어가고 있는지 알 것 같네.

그럼 우리는? 우리나라도 미국이나 칠레 못지않게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나라임이 각종 통계로 확인되고 있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는 정치인이나 시민들이 많지 않으니 걱정도 되네. 세계적인 기준에서는 꽤 보수적인 문재인 정부가 힘겹게 시도하고 있는 소득주도성장이나 최저임금 인상마저 사회주의 정책으로 매도되는 나라이니 더 안으로 곪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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