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코로나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잔인한 달’ 4월일세. 14일 현재,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가 200만 명을 넘었고, 사망자 수도 12만 명을 넘어 점점 늘어나고 있네. 누적 사망자가 2만 명이 넘은 미국에서는 감염병으로 죽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시신을 보관할 장소가 없어 난리라는군. 병원의 빈 방 바닥과 선반 위에 쌓여 있는 시신보관용가방들을 찍은 사진을 보고 있으니 참 착잡하고 마음 아프네. 세계에서 가장 잘 산다는 나라가 어쩌다가 죽은 국민들 시신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는지…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도 경제적으로 부유한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에서, 짧은 기간 동안에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끔찍한 광경을 보면서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네. 어떻게 해야 남은 세월 사람답게 살다 갈 수 있을까? 먼저 전동균 시인의의 <예(禮)>를 읽어 보세.

한밤에 일어나 세수를 한다/ 손톱을 깎고/ 떨어진 머리카락을 화장지에 곱게 싸 불사른다/ 엉킨 숨을 풀며/ 씻은 발을 다시 씻고/ 손바닥을 펼쳐/ 손금들이 어디를 가고 있나, 살펴본다/ 아직은 부름이 없구나/ 더 기다려야겠구나, 고립을 신처럼 모시면서/ 침묵도 아껴야겠구나/ 흰 그릇을 머리맡에 올려둔다/ 찌륵 찌르륵 물이 우는 소리 들리면/ 문을 조금 열어두고 흩어진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불을 끄고 앉아/ 나는 나를 망자처럼 바라본다// 초록이 오시는 동안은

일찍 죽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지만, 죽음과 친숙한 삶이 꼭 나쁜 것은 아닐세. 어쩌면 참삶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게 죽음인지도 몰라.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되거든. 매 순간이 다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열심히 살 수밖에 없어. 그래서 죽음과 친숙해지기 위해서는 저 시의 화자처럼 일 년에 한 번쯤 자기 자신을 망자로 바라보면서 예(禮)를 올리는 의식도 필요한 걸세. 이것 또한 장자가 말한 심재(心齋)의 한 방법이야. 마음을 비우고 죽음과 친숙해져야 경쾌하고 즐겁게 살 수 있어.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죽음을 무서워하거나 오래 살기를 바라네. 심지어 불사(不死)를 꿈꾸기도 해. 하지만 사람들이 죽지 않는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될까? 지구 자체가 인간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폭삭 가라앉고 말 걸세. 게다가 설사 불로초 같은 불사의 비결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건 권력과 돈을 가진 일부 사람만 누리는 특권이 될 거야. 일정한 규모 이상의 인구를 지구가 수용할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부자나 권력자들이 인구 증가로 인한 공멸을 바보처럼 받아들일 리도 없지. 사실 지금 세계는 ‘불사’는커녕 ‘장수(長壽)’ 때문에 생긴 사회문제들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네.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는 정현종 시인의 시구처럼, 나도 젊었을 때는 운명 같은 건 없다고 믿었네. 혹여 운명 같은 게 있을지라도 누구나 노력하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 같은 비극들을 보면서도 운명에 관해 심각하게 숙고해 본 적이 없었지. 하지만 이제 아네. 모든 생명들에게는 운명이란 게 있다는 것을. 어떤 생명체도 주어진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그 운명을 인위적으로 바꾸려고 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이제는 어느 정도 ‘운명’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는 사람들보다, 마치 죽음을 인정하고 죽음과 친숙한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훨씬 더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믿어.

운명이나 죽음과 친숙한 사람들은 겸손하게 살 수밖에 없어. 이승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인지 잘 모르거나 천 년 만 년 영원히 살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다른 생명체들 앞에서 낮은 자세를 취할 가능성은 거의 없네. 왜 우리가 지금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고 있겠나. 우리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잊고 자연을 정복하고 파괴했기 때문이야.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화자찬하는 인간들이 스스로 죽음을 앞당기는 행동들을 하면서도 그게 왜 자멸로 가는 길임을 모르는지 안타까워. 만약 지금처럼 생명 있는 것들은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는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불사(不死)를 꿈꾼다면 머지않아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자연의 복수가 계속 있을 거야. MEMENTO MORI! 죽음을 생각하고 기억할 때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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