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칼럼니스트
하도겸 칼럼니스트

위대한 충무궁의 영정이 요즘 문제가 되고 있다. 현충사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 친일인명사전에 새롭게 이름을 올린 동양화가 월전 장우성 화백(1912~2005)이 그렸기 때문이다. 1950년대 그린 이 영정이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표준영정 제1호로 지정된 것은 1973년의 일이다. 즉 친일 화가가 항일의 상징인 충무공의 표준영정을 그렸기 때문에 교체해야 된다고 한다.

월전은 일제 강점기 관제 성격이 짙은 ‘조선미술전람회’ 등에 4회 연속 출품해서 특선을 받았다. 출품을 안하면 이상적이겠지만 독립운동가가 아닌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화가에게 ‘입문의 통로’까지 거부했어야 한다는 것은 21세기의 잣대에 의한 강요일 수밖에 없다.

일제 강점기에 성장했지만, ‘신(新)문인화’를 구축하며 일본화풍의 극복을 이끌었던 월전 장우성 화백의 업적이,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공모전에 출품했지만 입선하지 못한 이름 모를 수많은 화가들’ 보다 정말 못한 것일까?

무엇보다도 표준영정에서 느껴지는 이순신 장군의 느낌은 왜군을 물리친 성웅의 모습을 잘 전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즉 표준영정 여부를 떠나서 이순신 장군의 이미지를 잘 전하는 훌륭한 그림이라고 여겨진다.

이 문제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영정동상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하겠다고 한다. 역사, 미술, 복식, 무구, 조각, 동양화 등 권위자로 구성된 위원들은 이전에 과거 형무소 복역 과정에서 고문을 받아 얼굴이 부은 사진을 참조해 월전이 그린 유관순의 표준영정을 해제한 바 있다. 그러나, 고증에 대한 커다란 오류 이외에 그림 외적인 문제로 표준영정을 해제하지는 못할 것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월전 장우성 화백(1912~2005)이  그린 충무궁 이순신 영정 / 하도겸 제공
월전 장우성 화백(1912~2005)이 그린 충무궁 이순신 영정 

다만, 해제시 새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이권’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새 작품을 그리는 비용뿐만 아니라 그리는 화가의 명예, 나아가 백원 동전에도 사용되는 충무공이기에 저작권 수입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표준영정은 자유 저작권이 아니라 화가들이나 화가들의 가족, 재단에게 저작권이 있다. 따라서 표준영정 자체가 돈과 무관하지 않다.

아울러, 오늘날 사진이나 그림 등이 남아있지 않은 인물의 경우에도 표준영정을 굳이 억지로 제작해야 하는 이유가 특별히 있을지도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표준영정 자체가 어쩌면 박정희가 직접 지시한 것으로 이미 시대착오적인 산물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21세기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울림이 있는 필요불가결한 제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까닭에 충무공의 표준영정이 아닌 표준영정 제도 자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황희 정승의 경우는 당대에 그려진 원본이 상주 옥동서원에 소장되어 있지만, 다른 그림이 표준 영정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오는 8월 30일 이번 영정동상심의위원들의 임기가 끝난다. 이에 맞춰, 아니 가능하면 이에 앞서 표준영정 제도 자체의 폐지에 대한 심의가 이뤄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지방자치시대, 국민의 협치 거버넌스가 중요한 이때 더 이상 표준영정이 설자리는 없을 듯 싶다. 정부는 물론 국회에서도 이런 문제를 심도있게 다뤄야 할 것이다.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국민의 집단 (무)의식은 지속적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 의식의 흐름을 들여다보고 바라 봐야 이 시대의 리더, 이 시대의 충무공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성웅 이순신의 신화마저도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그 의미가 퇴색해가야 진정한 의미의 민주시민사회가 될 것 같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