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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인터뷰] “정직하게”… 정욱 감독의 각오
2021. 09. 13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신예 정욱 감독이 영화 ‘좋은 사람’으로 관객과 만난다. /싸이더스
신예 정욱 감독이 영화 ‘좋은 사람’으로 관객과 만난다. /싸이더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좋은 사람’(감독 정욱)은 교실 도난 사건과 딸의 교통사고 가해자로 의심받고 있는 한 명의 학생 세익(이효제 분) 그리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교사 경석(김태훈 분)이 의심과 믿음 속에 갇혀 딜레마에 빠지고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단편 ‘Family’(2012)로 제11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정욱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으로,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CGV아트하우스상 △한국영화감독조합상-메가박스상 등 2관왕을 수상하며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촘촘한 짜임새와 탄탄한 내러티브로 호평을 얻고 있다. 

신예 정욱 감독의 힘이다. 이번 작품으로 첫 장편 연출작을 선보이게 된 정욱 감독은 ‘좋은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다소 철학적인 메시지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쉽게 풀어낸 것은 물론, 영화적 재미까지 놓치지 않았다. 정욱 감독이 앞으로 들려줄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대되는 이유다. 

정욱 감독은 최근 <시사위크>와 만나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관객과의 만남에 설렘을 내비치던 그는 “멋 부리지 않고 사기 치지 않고, 정직하게 인물을 찍어나가고 싶다”는 각오를 전하기도 했다. (*해당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돼있습니다.)  

-영화제에서 좋은 성과를 얻었지만, 일반 관객과 만나는 건 또 다른 기분이 들 것 같은데. 개봉 소감은.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데 한편으론 속 시원하다는 느낌도 있다. 영화를 만든 지 1년이 됐다. 드디어 개봉을 하는구나 싶더라. 일주일 전만 해도 사람들이 좋아할까 두렵고 그랬는데 지금은 설레는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걱정보다 설렘이 더 크다는 건 시사회 이후 호평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반응을 찾아보기도 했나.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하. 리뷰 하나하나 다 찾아보게 되더라. 절대 검색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한 번만 볼까 이러면서 다 찾아보게 되더라. 관객들이 평 올린 것도 보고 리뷰도 봤는데, 안도감이 느껴지고 잘 전달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안 좋게 보신 분들의 평을 보면서는 ‘아 이렇게 보실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호평이든 혹평이든 다 좋았다.”  

좋은 사람은 누구인가 질문을 던지는 영화 ‘좋은 사람’. /싸이더스
좋은 사람은 누구인가 질문을 던지는 영화 ‘좋은 사람’. /싸이더스

-이야기의 구상을 어떻게 하게 됐나. 
“나쁜 뉴스들을 접하게 됐다. 그런 뉴스를 처음 들었을 때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라고 생각을 했는데, 과연 나라고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나도 저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일상에서 수없이 들려오는 ‘좋은 사람’은 도대체 무엇인지 그 말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예전부터 내가 갖고 있던 ‘한 학생이 선생님의 아이를 납치한다’는 한 줄짜리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 문장 속 선생님이라는 인물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 인물을 생각하며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다.”

-자칫하면 어렵거나 지루해질 수 있는데, ‘좋은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친절한 영화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평소 선호하는 스타일일까.  
“질문을 던졌으면 완벽한 답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답은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수께끼처럼 던져만 좋고 뭔가를 하기보다 관객들에게 어느 정도 답을 드리는 게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도리 아닌가 하는 생각은 한다.” 

-경석은 어떤 인물이었고, 인간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나. 
“결국에는 내 안에서 나온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내 스스로 정말 나쁘다고 생각한 모습들, 나는 왜 저럴까 나는 왜 이럴까 생각한 모습에서 시작했다. 끊임없이 자기변명을 하고, 회피하려고도 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거리를 두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모습들이 비겁하다고 느껴졌다. 경석은 영화 초반 계속해서 ‘생각해 보자, 생각해 보자’ 하며 사건을 대처한다. 그러다 결국 어떤 순간에 터지고 만다. 그런 모습들이 과거 가족 안에서 경석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결국엔 또 누군가를 탓하는 모습? 이해가 가긴 하지만 어른으로서 하지 않아야 할 선택을 하기도 하는 그런 모습을 담고자 했다.” 

‘좋은 사람’에서 경석을 연기한 김태훈 스틸컷. /싸이더스
‘좋은 사람’에서 경석을 연기한 김태훈 스틸컷. /싸이더스

-선하고 좋은 선생님이던 경석이 딸을 잃어버리면서 또 다른 면을 보이게 된다. 초반과 후반, 경석의 다른 얼굴을 통해 어떤 의미를 담고 싶었나. 
“가족 안에서와 밖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경석도 차이가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초반의 경석은 선하고 편안한 사람의 모습처럼 보였으면 했다. 잘 웃어주고 분위기를 맞춰주는 유형의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사실은 진지하지 않은 거다. 매사에 적당히 하는 그런 인물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경석의 마지막 선택을 통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경석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다른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석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지만 모든 걸 받아들이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되돌리려는 최소한의 행동을 하길 바랐다. 새로운 사람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김태훈의 웃는 모습을 보고 경석 역에 확신을 했다고.
“웃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고 무조건 이 배우가 경석이어야 하고, 바로 경석이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믿음이 있었다. 촬영에 들어간 후 카메라가 돌아간 순간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경석이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경석이 한 학생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정말 넋을 잃고 봤던 기억이 난다. 매 테이크 조금씩 다른 연기를 보여주는데, 더 보고 싶어서 테이크를 더 가기도 했다. 이 영화를 정말 잘 완성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김태훈 선배 덕분에 단번에 들었다.” 

‘좋은 사람’에서 세익을 연기한 이효제. /싸이더스
‘좋은 사람’에서 세익을 연기한 이효제. /싸이더스

-세익이라는 인물을 통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세익은 거짓말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알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거짓으로 물들어있는 한 아이가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녹여낸 인물이다. 세익은 모든 게 자기 잘못이라고 받아들이고 큰 죄책감을 느낀다. 정말 작은 잘못이었더라도 본인으로부터 시작된 일이라면 돌아봐야 한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경석과 대비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효제가 어딘가 불안하고 의심스러운 세익의 모습을 굉장히 잘 표현해냈더라.
“천재다 천재. 현장에서 모든 배우들에게 디렉션을 많이 주지는 않았다. 촬영 전에 했던 이야기들이 중요했다. 이효제와는 세익이 어떻게 행동을 하고 반 아이들 사이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현장에서 나도 정말 놀랐다. 말을 안 해도 스스로 정말 잘 하더라. 큰 디렉션을 주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가는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경석의 얼굴을 비추고 화면이 페이드아웃 돼서 끝난 줄 알았는데, 결말이 더 있더라. 이렇게 편집한 감독의 의도는 무엇이었나. 또 이어진 결말에서 경석이 아닌 세익의 모습으로 영화의 마지막을 담은 이유가 있다면.  
“엔딩을 고민할 때 응급실에서 경석이 나오는 그 장면도 하나의 선택지였다. 그 결말이 굉장히 힘이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남겨진 사람들의 모습도 한 번씩은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나의 과정을 끝내고 다시 시작하는 느낌으로, 시간을 점프해서 담아냈다. 이들이 있는 세계라고 해야 할까 다시 질서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경석의 딸은 무사히 있고, 경석은 학교를 떠났지만 떠난 빈자리를 세익이 채워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익의 모습으로 영화를 끝낸 것은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경석의 시선으로 세익의 빈자리를 보게 된다. 빈자리만 바라보던 경석이 돌아온 세익이 앉아 있는 모습을 반드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석이 서 있던 위치에서 카메라가 서서 경석 대신 세익을 바라봐 주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세익에게 학교는 끔찍한 곳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돌아가야 하는 나름의 일상이라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출발해서 어떤 선택을 하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돌아온 세익의 모습으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꾸몄다.”

정직하게, 인물을 담고 싶다는 정욱 감독. /싸이더스
정직하게, 인물을 담고 싶다는 정욱 감독. /싸이더스

-경석과 세익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정말 잘 살았으면 좋겠다. 자기 자신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해야 할까. 정말 좋은 사람이 됐으면 하는데, 그 좋은 사람이라는 게 누군가 규정해 놓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 그냥 경석이라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고 세익이라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남들을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엔딩 크레디트에 홍지영 감독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했는데, 어떤 인연인가.  
“시나리오 단계에서 멘토링을 해주셨다. 용기를 많이 주신 분이다. 어느 날부터 시나리오 작업이 너무 안 풀리고 엉망으로 만들기도 하고 그랬는데, 홍지영 감독님이 처음 생각했던 것 그대로 찍으라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말에 나 자신을 믿고 자신 있게 밀어붙여볼 수 있었다. 정말 많은 용기를 주셨다.” 

-영화를 시작하고 만드는 데 있어 영향을 준 인물이나 무언가가 있다면. 
“친누나다. 누나가 연극영화과에 가서 따라간 케이스다. 지금은 그만두긴 했지만 누나가 연극연출을 했는데, 창작극이라고 올린 연극을 보면서 나도 저런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가족에게 영화를 보여주는 게 부끄러워서 이번 영화도 안 봤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데, 그래도 누나가 뿌듯해할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또 앞으로 영화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꼭 지키고 싶은 다짐이 있다면. 
“정직하게 만들고 싶다. 멋 부리지 말고, 사기 치지 말자. 영화는 결국 사람을 찍는 거잖나. 그 사람을 정직하게 찍어나가고 싶다. 재미를 위해 자극을 주거나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을 지양하고, 어떤 소용돌이 속에 놓인 인물들을 정직하게 찍어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 

-차기작 계획은. 
“아직 꽂히는 인물 유형을 찾지 못했다. 어떤 인물을 떠올리고 그 감정을 내가 느낄 수 있는지에서부터 시작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인물이 떠올라야 다음 작품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