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한 달 전에 극장정치의 폐단을 걱정했던 편지 생각나지?  그때 “지금 다시 세차게 불고 있는 규제 완화의 광풍이 어떤 비극의 씨앗을 이 땅에 뿌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만 하네. 규제 완화나 철폐로 인한 위기가 발생하면 고통을 받는 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지금 그 광풍에 박수를 보내고 있는 힘없는 사람들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무겁고 아프다네. 영화가 끝난 다음에 속았다고 외쳐본들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말하면서 편지를 마무리했었는데… 그 걱정이 너무 일찍 현실로 나타난 것 같아서 당황스럽기도 하네.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순간에도 아직 물속에 잠겨있는 어린 학생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네. 왜 어린 학생들이 어른들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희생이 되어야만 하는지 미안하고 참담할 뿐이네.
 
“시장은 좋은 것이고, 국가의 개입은 나쁘다”로 요약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는 복지, 안전, 교육, 환경 등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사용하는 공공지출의 삭감을 통해 건전재정을 달성하고, 민간부분에 대한 탈규제를 통해 정부가 민간 활동에 부당하게 간섭하는 것을 막으려고 애쓰지. 또 신자유주의는 기업들이 자신들의 판단과 필요에 따라 노동자들을 채용하거나 해고시킬 수 있도록 노동시장이 유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정부가 각종 법률을 통해 기업의 고유 권한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거야. 이른바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면 모든 국민들이 다 행복해질 것처럼 떠들지. 

경제민주화와 복지, 안전 등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대통령이 그런 공약들을 파기하면서 갑자기 규제를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의 원수”, “우리 몸을 자꾸 죽여 가는 암 덩어리”라고 규정하고, 규제개혁을 하지 않는 행위는 “자나 깨나 일자리를 갖고 싶어 하는 국민 소망을 짓밟는 죄악”이라고 몰아붙이는 이유가 뭘까? 지난 이명박 정부와 현재의 박근혜 정부에서 규제개혁을 외치는 이유는, 선의로 해석하면, 자본의 활동을 자유롭게 해주면 기업들이 일자리를 많이 창출해줄 거라는 소박한 믿음 때문이겠지.

그런데 정말 규제를 완화하고 철폐하면 많은 일자리가 생길까? 하지만 난 세계 어느 곳에서도 기업들이 규제완화나 철폐 덕분에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네. 주주의 이익을 중시하는 미국식 주주자본주의가 이미 표준이 되어버린 우리나라에서도 수출이 늘고 경제가 성장을 해도 일자리는 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이 대세라는 건 자네도 알고 있지? 실제로 우리나라 고용 상황을 보면, 1970년대에 연평균 3~4% 정도 늘어나던 고용이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1%대로 하락했다가, 2000년대 후반에는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네. 경제 규모가 커지고 성장을 해도 고용이 늘어나지 않는 정체 현상이 이미 뿌리를 내린 거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초국적기업인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가 해년마다 천문학적인 숫자의 이익을 내고 있다는 뉴스는 자주 보고 들었지만, 그들이 해년마다 많은 사람들을 새로 고용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네. 내가 과문한 탓일까?  

게다가 규제완화나 철폐를 통해 새로 생기는 일자리는 대부분 비정규직이라네.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위해 정리해고 제한 완화와 파견근로제 등을 도입함으로써  비정규직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했다는 건 자네도 알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의한 노동의 유연화, 기술발전, 세계적 경쟁 압력에 의한 내부노동시장의 붕괴 등으로 지난 10여 년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가 엄청나게 늘어났네. 정리해고와 파견근로를 가능하게 만든 노동 관련 법률들을 통해 노동자를 쉽게 고용하고 해고할 수 있는 길이 열림으로써 비정규직 고용이 급격하게 증가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을 거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말하더군.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끔찍하지 않은가? 

이번에 침몰된 세월호를 버리고 달아났다고 많은 비난을 받고 구속된 선장은 월 270만원을 받는 계약직 비정규직이었네. 전체 선원 29명 가운데 15명이 비정규직이었으며, 월급은 월 170만~200만원 수준이었네. 이런 상황에서 사고가 났을 때 목숨을 바칠 각오로 자기 책임을 다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런 대형사고가 발생할 경우엔 선원들의 팀워크가 중요한데,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많은 조직에서 그런 협력체제가 가능하겠는가? 상황이 이러한데도 대통령과 언론들은 그들만 비판만 하고 있으니… 우리들 모두 솔직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자신들이 그런 상황에서 일한다면, 이번에 많은 학생들을 구하고 자신은 빠져나오지 못한 박지영 씨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물론 승객을 버리고 먼저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은 자신들의 무책임한 행동에 상응하는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겠지. 하지만 이번 대형 참사의 가장 큰 원인이 그들에게 있는 것처럼 처벌하고 끝나면 이런 사고는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 국민 모두가 알아야 하네.  

우리 정부의 대처방식이 답답했던지 외국 언론들이 나섰네. 우리나라 언론들은 뭐 하고 있냐고? 나도 몰라. 영국 신문 <가디언>은 지난 21일자 기사에서 대통령이 절차나 제도상의 허점을 지적하고 개선하기보다는 선장이나 선원들만 비난하는 모습이 기이해 보인다고 썼더군. 사고에 대처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내 눈에도 이상하게 보이는데,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모습이 신기할 수밖에 없겠지. 그러면서 적어도 "서구사회였다면, 국가적 재앙에 그처럼 늑장대응을 한 지도자가 무사하기 어려웠으리라"고 말했더군. 프랑스의 유력일간지 <르몽드>도 지난 4월 23일에 이번 사건에 대해 “세월호 침몰 사고는 단순히 6825톤짜리의 페리호가 물에 잠긴 것이거나, 선주와 선장을 비롯한 직원들의 부족한 능력에서 온 것이 아니다”며 “시민을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행정부와 부주의한 관리 능력이 침몰한 것”이라고 비판했더군. 우리 사회의 구조와 시스템이 문제라는 지적이네. 맞는 말 아닌가? 바보야, 문제는 구조야.

이번에 일어난 세월호의 침몰은 대한민국의 침몰이나 다름없네.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화하겠다는 사람들이, 그리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분들이, 지금처럼 일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한국일보>의 서화숙 선임기자는 자신의 칼럼 마지막 부분을 다음과 같이 끝내고 있더군. “어떤 사회도 적으로 인해 무너지지 않는다.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다. 사회기강을 흔들어놓아서 국민을 보호할 기본시스템조차 무너뜨릴 정도라면 차라리 이쯤에서 대한민국을 책임질 능력이 없다고 물러서는 게 더 큰 희생은 막는 길이 아닐까.”동감하는 말일세. 남 탓만 하는 뻔뻔한 지도자와 그 지도자의 ‘정치 쇼’에 환호하는 사람들만 활개 치는 나라에서 얼마나 더 살다가 갈지… 한숨만 나오네. 김훈의 <공무도하가>에 나오는 말일세.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시급한 현안문제다.”정말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러운 인간들이 없는 세상은 없을까?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