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홍원식 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 교수
[시사위크]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결국 탈당하지 않았다. 지난 며칠간 수많은 언론이 마치 내일이라도 탈당을 발표 할 것처럼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나아가 야권의 정계개편을 들먹이며 떠들썩했지만 결국 탈당은 없었다. 물론, 세월호특별법 협상과 비대위원장 임명을 둘러싸고 야당 내의 계파간 갈등이 나타났고, 박영선 원내대표가 탈당을 고려할 정도까지 심각한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탈당과 정계개편을 예상한 언론 보도들은 결국 현실화되지 않았다. 각종 언론에서 거론했던 내용은 무리한 단정이었고 부풀려진 해석일 뿐이었다.

세월호법 협상과 비대위원장 임명을 둘러싼 내홍이 새정치연합 내부에서 불거지자, 우리 언론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신문 1면과 방송 톱뉴스를 통해 야당 내의 계파갈등에 대한 소식을 요란스럽게 전달했다. 야당의 내분이 법안처리를 아직까지 하나도 못하고 있는 19대 국회의 근본적 원인이며 나아가 우리 정치권의 모든 악의 뿌리라도 되는 양 매일 대서특필 했다. 무기력한 국회의 모습에 대해서 다수당의 역할과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웠고, 야당의 내분에 의해 무기력해진 국회를 비난하는 기사만 가득했다.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의 책임에는 눈감고 야당의 내분에만 주목하는 기사를 과연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사라고 할 수 있을까?

정작 더 큰 문제는 우리 언론이 국회 내의 모든 대립과 갈등을 부정적으로만 보도한다는 것이다. 여당과 야당간의 대립 또는 여당과 야당내의 정치적 갈등, 이 모두가 부정적인 것으로만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국회는 정치적 타협과 협상을 위한 공간이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면 굳이 타협과 협상을 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국회와 같은 정치적 영역이 필요한 것이다. 사실 민주주의에서 의회의 역할은 근본적으로는 해결되기 힘든 사회적 갈등을 정치적 영역에서 대행해주고 이를 조정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현실의 본질적 대립을 정치적 협상의 영역으로 옮겨오는 것이 의회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국회 내에서의 여야 대립과 계파간 갈등은 필연적인 것이고, 이를 통해 현실 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해당사자들의 직접적인 대립과 갈등을 완화시켜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언론이 국회 내의 정치적 대립과 갈등을 부정적으로만 보도하는 것은 자칫하면 정치적 타협과 협상의 필요성 자체를 아예 부정하는 것으로 간주하게 만들 수 있다. 모든 갈등을 소모적인 것으로 보는 언론의 보도 태도는 타협과 협상을 통한 정치적 영역은 줄어들게 만들고, 결국 우리 사회에서 자주 나타나는 물리적 대결 또는 힘에 의한 일방적 밀어붙이기를 정당화시켜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우리 국회가 점차 이런 결론으로 가깝게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세월호 국면에서 나타나는 우리 국회의 문제점은 해결의 책임을 국회가 담당하지 못하고 유가족과 청와대의 직접 대결로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정치적 협상과 조정의 영역은 점점 줄어들고, 직접적인 대립과 갈등은 증폭되어 점점 해결되기 어려운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지난 15일 박근혜 대통령의 강경한 발언이후, 여당은 언론에서 더욱 자취를 감춰버리고 말았다. 좀 과장을 덧붙이자면, 그나마 어느 회의에선가 농민단체가 찾아와 고춧가루라도 뿌렸으니 잠시 언급이 된 것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여당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게 될 지경이다.

물론, 때로는 국회 내의 대립과 갈등이 소모적인 모습을 보일 때도 있지만, 이들 대부분은 우리 사회에 다양한 이해 대립과 갈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것이 국회를 통해 표면화된다고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국회 내에서 싸우지 않는 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물리적이지 않은 방법의 싸움을 통해서 정치적 타협을 이뤄가는 모습을 비춰주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정치란 언론과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언론이 어떠한 보도 태도를 보이는 가가 실제 정치를 그렇게 만들어가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정치란 타협될 수 없을 것 같은 본질적 갈등을 정치적 합의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것이 그 역할이다. 마찬가지로, 언론 역시 우리 사회의 피하기 어려운 갈등과 대립이 실제 물리적 갈등이 되지 않게 만드는 책임을 함께 지니고 있는 것이다. 정치를 비난하는 언론이 되기보다는 책임 있는 정치를 만들어가는 언론의 모습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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