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부소장.
[시사위크] 민속명절은 우리 전래의 고유한 전통으로, 하나의 민족임을 확인하는 계기가 돼왔다. 하지만 분단 70년 동안 남북한은 정치나 이념 뿐 아니라 사회문화가 이질화됐고 명절과 세시풍속도 예외가 아니다.

올해 설 명절을 계기로 한 이산가족 상봉 기대가 물거품이 된 것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우리 정부가 실향민들의 이산의 한을 풀기 위한 제안을 내놓았지만 북한은 대북전단과 한미 군사연습 같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거부해 끝내 상봉은 무산됐다.

북한은 정권수립 직후부터 매년 1월 1일을 민속명절 설날로 삼았다. 그러면서 전래의 설 명절(음력설)은 오랜 기간 배타시했다. 표면적으로는 민속명절이 ‘봉건주의적 잔재’라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김일성유일지배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주민통제에 부적합할 뿐 아니라 사회주의건설을 위한 노동력손실을 초래한다는 점 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음력설이 양력설을 제끼고 제자리를 찾은 건 10년 전인 2005년부터다. 북한 당국이 음력설을 ‘기본명절’로 정하고 설 당일부터 사흘간을 연휴로 주민들이 쉴 수 있게 조치를 취한 것이다. 재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당시 보도에서 “올해부터 조선에서는 양력설보다 음력설을 기본 설명절로 쇠게 됐다”며 “전통적인 민속명절을 크게 쇠기 위한 국가적 조치가 취해졌다”고 전했다.

북한의 방송과 신문들도 전례 없이 설 명절의 의미와 관련 소식을 대대적으로 전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장군님이 설 명절을 제대로 쇠기 위한 조치를 취해주었다”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은덕을 찬양하는 이야기들도 뒤따른 것이다. 북한이  주민들에게 설과 추석명절을 봉건시대의 유물이라며 제대로 쇨 수 없게 해왔던 점에 비춰보면 전향적인 조치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민족고유의 명절임에도 북녘의 설맞이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우리처럼 민족대이동을 연상케 하는 귀성행렬도 황금연휴를 만끽하는 기쁨도 찾아보기 어렵다. 멀리 헤어져 지내던 가족과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여앉아 조상께 제사를 올린 후 덕담을 주고받는 등의 미풍양속들이 북녘에서는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북한에서는 설과 추석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인 2월16일과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15일이 더 큰 ‘명절’로 치러져왔다는 점에서다. 특히 1994년7월 김일성 사망 이후 그의 생일은 ‘태양절’이라 불리며 우상화에 이용되고 있다.

북한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민속명절에 한해 명절로 부르고 있는 것과는 달리 국경일․민속명절․국제적 기념일․기념일 등을 총칭해 명절이라고 부른다. 이에 따라 북한의 명절은 종류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북한의 필요에 따라 공휴일(노동량이 부과되지 않아 노동으로 부터 자유로운 날), 휴무일(당일 노동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노동량은 부과되어 추후 공휴일 등을 기해 할당된 노동량을 벌충해야 하는 노동의 의무가 부가되어 있는 날), 그리고 단순히 기념행사만 하는 기념일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먼저 국경일은 ‘나라와 민족의 융성발전에 매우 의의 깊고 경사스러운 날’로 설명되며 김일성․김정일부자의 생일을 비롯해 국제노동자절(메이데이, 5.1), 해방기념일(8.15), 정권창건일(9.9), 노동당 창건일(10.10), 헌법절(12.27) 등이 이에 속한다. 그리고 국경일은 모두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으며 통상 ‘사회주의 7대 명절’로 불린다. 북한은 사회주의 7대 명절 중 김일성과 김정일 생일을 ‘민족 최대의 명절’로 가장 성대히 기념하고 있다.

북한이 김일성생일을 민족 최대의 명절로 제정한 것은 지난 74년 2월이며, 김정일 생일은 75년 임시휴무일로 제정됨으로써 민족적 명절로 기념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이어 다음해인 76년부터 김정일 생일은 정식휴무일로 삼았으며 82년부터는 다시 공휴일로 제정했다.

특히 북한은 김일성과 김정일 생일을 여타 사회주의 7대명절과 구별하기 위해 지난 86년부터 생일 다음날을 휴식일로 정해 이틀간 휴무토록 하는 한편 김정일 생일인 2월 16일부터 김일성생일인 4월 15일까지의 두 달여의 기간을 축제기간으로 설정해 갖가지 기념행사를 전개하고 있다.

북한의 명절은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가계 우상화를 위한 계기로 활용된다. 노동당과 내각의 간부, 북한군 장병, 노동자들이 이날 김일성의 조부모와 부모 등의 묘를 찾아 화환을 증정하는 풍경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모습이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당정군의 간부들을 모두 데리고 김일성, 김정일의 시신이 있는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을 찾는 것도 이채롭다. 이는 북한에서의 명절 개념이 우리와 다른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북한에서는 추석이 지난 88년 부활됐다. 부활이라는 표현은 북한에서 공산정권이 수립된 후 추석을 말살시켰기 때문이다. 즉 “착취계급들이 통치권을 강화하는데 악용하고 종교적 외피를 씌워 허례허식을 덧붙였다”는 이유로 규제해오다가 67년 5월에는 마침내 “봉건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아예 공식 명절에서 제외시켜 버린 것이다.

이처럼 말살된 추석이 88년 부활된 것은 크게 정치적인 목적에서 비롯됐다. 우선은 한국의 해외동포(조총련 동포)를 대상으로 한 추석 성묘사업에 대응키 위한 조치였다. 남북한 국력의 격차가 점차 커져 해외동포들, 특히 조총련 동포들 사이에서조차 북한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고 있는 점을 감안했다는 것이다.

지난 1월8일은 집권 4년 차를 맞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의 31회 생일이었다. 북한은 아직 김정은의 생일을 휴일로 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통치기반을 다지고 우상화 선전을 본격화 하는 과정에서 김정은의 출생일이 또 하나의 ‘민족 최대명절’로 자리 잡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은 민족 전통의 명절과 세시 풍속마저 통치를 위한 도구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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