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 원장.
-우석대학교 초빙교수
-민주평통 자문위원
-前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시사위크]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13일 국회 정보위원회를 통해 “북한 인민무력부장 현영철이 4월 30일쯤 국가반역죄를 저질러 고사총으로 공개처형 됐다”고 공개했다.

이후 일부 국내 언론과 네티즌들은 김정은을 향해 ‘미치광이’ 또는 ‘사이코패스(Psychopath-폭력성을 동반하는 이상 심리 소유자)’라며 비난하고 나섰다. 과연 김정은은 정말 ‘사이코패스’일까? 이의 진실 여부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 체제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 김일성 시대부터 시작된 숙청의 역사

북한 체제의 특성은 모든 권력이 수령 1인에게 집중돼있고 이를 견제할 개인이나 세력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만일 누군가 수령에게 도전한다면 그는 ‘3족’이 멸종당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북한 내에 드러내놓고 수령에 도전할 사람은 없다. 북한체제는 거의 ‘사이비종교’ 수준으로, 맹종만 존재한다.

물론 북한이 정권 초기부터 이러한 형태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해방 이후 귀국한 김일성은 많은 정치적 도전을 받았다. 그는 나이가 어렸고 해외에서 해방투쟁을 했기 때문에 국내에 권력기반이 거의 없었다.

이에 김일성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자를 처절하게 제거하는 방법으로 권력을 장악했다. 국내파 현준혁 및 민족주의자 조만식 제거, 6·25 전쟁 중 허가이·무정·이승엽 등 숙청, 전쟁 후 박헌영 처형, 1956년 8월 소위 ‘8월 종파사건’을 통한 최창익·박창옥·윤공흠 등 연안파와 소련파 숙청, 1967년 김일성의 핵심 실세들인 박금철·이효순 등 ‘갑산파’ 숙청 등이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이후 북한 내에서는 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파벌이 완전히 소멸됐다.

이어 1967년 이후 북한은 어떤 세력도 정권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수령을 절대화하고 ‘신격화’했다. 수령에게 도전하는 것은 인간이 신에게 도전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수령권’에 도전하면 ‘천벌’을 받는다는 논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김정일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김일성=김정일’이란 논리가 만들어졌고, 김정일에게 도전하는 것은 곧 김일성에게 도전하는 것이므로 ‘천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수령후계자론’을 앞세운 김정일은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하자 1997년 ‘심화조 사건’을 조작해 서관히·문성술·서윤석·채문덕 등 고위관료들을 숙청했다. 이는 김정일이 권력 강화를 위해 철저히 ‘기획한’ 사건이었다.

‘심화조 사건’을 기획된 것으로 보는 이유는 1956년 ‘8월 종파사건’ 이후 북한 관료는 물론 일반 주민들까지도 최고 권력에 도전할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1956년 ‘8월 종파사건’ 이후 발생한 정치적 숙청 사건들은 정권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이처럼 북한의 수령과 그의 ‘아바타(Avatar)들’은 정권 도전이 아니라 ‘불쾌한 표정’까지도 ‘불경죄’로 몰아 처절하게 숙청했다. 도전자가 하나도 없는 ‘무균의 국가’, ‘천년수령왕국’을 만들기 위해서다. 2011년 12월 김정일 정권이 종식되기 전까지 수많은 총리와 당·정·군 고위 관료들이 아무 것도 아닌 이유로 ‘기획 숙청’당했다.

◇ ‘3대 수령’ 김정은의 숙청 행보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한 뒤 공식 등장한 ‘3대 수령’ 김정은도 ‘천년수령왕국’ 건설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숙청 작업을 지속했다. 김정은 등장 이후 북한에서는 리영호 군총참모장 숙청(2012. 7), 장성택 당 행정부장 처형(2013. 12), 장령(장군)들에 대한 계급 강등·복위의 반복(2012. 2~2014. 12), 인민무력부장 현영철 처형(2015. 4) 등이 이어졌다.

이러한 사건들은 김일성 정권 이후 권력 절대화를 위한 ‘조작사건’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했다. 그리고 이 사건들은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 미리 예고가 있은 후 일어났다.

김정일 사후인 2012년 4월 6일, 김정은은 군최고사령관 및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자격으로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당중앙위원회 비서 및 부장급 간부)들과 만나 담화를 나눴다. 이날 김정은은 민심을 떠난 일심단결이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하고, 민심을 소홀히 하거나 외면하는 현상들과 강한 투쟁을 벌릴 것을 선언했다.

이것은 ‘인민을 위하지 않는 일꾼(간부)’에 대한 강력한 경고였다. 이어 4월 15일, 김일성광장에서 한 첫 공개연설에서도 김정은은 “간부들이 신발창이 닳도록 뛰고 또 뛰는 것을 체질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부들이 탁상공론만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김정은의 발언은 구두경고로 끝나지 않았다. 5월 9일 김정은은 평양의 놀이공원인 만경대유희장을 현지지도하면서 작심한 듯 관리일꾼들의 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5월 9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 등 북한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날 김정은은 직접 보도블록 사이에 난 잡초를 뽑은 후 “만경대유희장은 인민들이 이용하는 곳인데 이렇게 방심해 두고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가슴 아파하지 않는 일꾼, 인민들을 귀하게 여길 줄 모르는 일꾼들이 1,000만명이 있은들 무슨 필요가 있는가”라고 질타한 후 “이 기회에 (일꾼들의) 인민들에 대한 복무정신을 똑바로 간직하도록 경종을 울려야겠다”고 일갈했다.

북한 언론매체들은 이날 화난 표정으로 발언하는 김정은의 사진과 함께 그의 발언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는데, 이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의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김정일의 질책내용을 공개한 적이 거의 없었다. 김정은의 이 같은 발언과 행보는 고질화된 간부의 부정부패, 관료화·귀족화된 간부들의 행태를 그대로 방치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또한 모든 간부들이 “일군(일꾼)을 위하여 인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위하여 일군(일꾼)이 있다”는 사상관점을 가지고 “낡은 사상관점과 뒤떨어진 사업기풍, 일본새(작업태도)와 단호히 결별”할 것을 주문했다. 더 나아가 6월 2일 ‘로동신문’은 정론을 통해 “지금은 밖에서 밀려오는 적이 무서운 게 아니라 사회주의 요람 속에서 성장한 일꾼(간부)의 관료화·귀족화가 문제”라고 비판했다. ‘형식주의자’, ‘책상주의자’, ‘기술실무주의자’ 등도 주요 비판 대상으로 거론됐다.

김정은의 숙청 대상 1호는 군총참모장 리영호였다. 리영호는 김정은의 군사부문 교사였으며, 김정은이 자랑하는 포병술은 리영호에게서 배운 것이기도 하다.

리영호의 숙청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김정은의 측근인 최룡해는 2012년 4월 당 관료로서 군을 감시·통제하는 군총정치국장에 올랐고, 군부가 독점하고 있던 이권사업들을 노동당 산하로 귀속시켰다. 이에 리영호는 최룡해에 대해 불만의 소리를 냈고 이것이 김정은에게 보고돼 숙청당했다. 무슨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니었지만 김정은은 ‘수령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리영호를 숙청했다. 최측근에 대한 ‘일벌백계’, ‘흡참마속’식 통제를 통해 관료조직을 장악하고, 혹시 있을 지 모르는 김정은에 대한 도전을 사전에 철저히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리영호 사건’을 계기로 북한은 ‘유일사상체계 확립 10대원칙’을 개정했다. 김정은은 2013년 6월 19일 노동당과 군, 내각 등의 고위간부를 모아놓고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을 계승하고 심화 발전시켜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을 내놓기로 했다며 새로 개정한 10대 원칙의 전문을 소개했다.  

‘유일영도체계 확립 10대 원칙’의 제6조 5항은 “당의 통일단결을 파괴하고 좀 먹는 종파주의, 지방주의, 가족주의를 비롯한 온갖 반당적 요소와 동상이몽, 양봉음위(앞에서는 순종하고 뒤로는 딴 마음을 품는 것) 하는 현상을 반대하여 견결히 투쟁해야 한다”고 새로 명시했다. 이 대목은 장성택을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고 당으로부터 출당·제명키로 결정한 2013년 12월 8일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성택 비판에 적극 활용됐다.

김정은 정권 창건 1등 공신이자 고모부인 장성택을 숙청한 이유는 ‘반당·종파’였다. 북한 법에 의한다면 ‘반당·종파’는 당연히 사형이고, ‘3족’이 멸종당하는 죄목이다. 만일 장성택이 정말 ‘반당·종파’를 했다면 본인은 물론 처족까지 몰살당해야 당연하다. 그러나 장성택의 처인 김경희는 아직 살아(국정원 확인)있다. 이것은 장성택이 김정은 권력에 도전하는 ‘반당·종파’를 한 것이 아니라 권력남용이나 월권, 정책실패 등에 대한 책임을 지고 숙청당한 것임을 증명해주는 대목이다.
 
지난 4월 30일 숙청당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도 ‘반당·종파’가 아닌 단순한 불만이나 정책실패, ‘교시 불이행’ 등의 죄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인민무력부장은 군총참모장과는 달리 큰 권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인민군에 대한 후방 보급 사업을 담당하는 부서다. 현영철 무력부장은 김정은의 “인민군에 대한 보급을 강화하라”는 지시를 어긴 것으로 보인다.

인민무력부는 북한의 각 부서 중 돈이 가장 많은 부서지만, 많은 이권 사업이 노동당으로 이관된 상황에서 김정은의 과도한 지시를 이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어려움을 토로했을 수 있고, 그것이 국가안전보위부에 의해 과장 보고됐을 수 있다. 또한 현영철 무력부장은 지난해 11월과 지난 4월 두 차례에 걸쳐 러시아 특사로 방문, 김정은의 북-러 정상회담을 성사시켜야 할 임무를 부여받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것 또한 ‘교시불이행’으로 여겨졌을 것이고, 김정은의 ‘읍참마속식’ 처벌의 단초가 됐을 것이다.        

◇ 철저히 준비된 ‘정치적 숙청’

결론적으로 북한 고위관료 처형과 관련해 김정은은 공식 취임 이전부터 관료들의 무사안일, 탁상공론, 양봉음위, 복지부동 등을 척결하지 않고는 권력 강화 및 안정이 어렵고, 인민경제 향상을 통한 권력 강화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계획적으로’ 간부 숙청을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김정은의 정치적 행보를 아무 개념 없이 미쳐서 무조건 사람을 죽이는 ‘정신병’이나 ‘사이코패스’로 진단하는 것은 ‘오진’이다. 그리고 이러한 ‘오진’을 통해 북한 군부 쿠데타나 민중봉기를 운위하는 것은 향후 대북 정책에서 큰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김정은이 ‘폭군’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조선시대를 포함해 역사상 수많은 폭군들은 왕권 강화를 위해 최측근들은 물론 친부모, 형제, 아내, 조카, 삼촌 등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 폭군 중에는 매우 오랫동안 집권한 사례도 있다. 통제된 사회에서의 인간은 이성적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북한의 폐쇄를 푸는 것은 상당 부문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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