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뒤는 현대백화점그룹 정교선 부회장(왼쪽)과 정지선 회장. 앞은 왼쪽부터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은 우리나라 경제계, 더 나아가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맨땅에서 맨손으로 ‘현대’라는 대기업을 일궈낸 그의 일생은 곧 대한민국의 산업화 및 경제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단순히 과거에만 그치지 않는다. 고 정주영 회장이 남긴 유산은 여전히 우리 경제계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과거처럼 온전히 한 울타리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각각의 분야에서 단단한 입지를 놓치지 않은 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여기엔 고 정주영 회장의 아들들, 즉 2세 경영인의 역할이 컸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여든이 가까운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현대차를 세계적인 회사로 키워냈다. 비록 지금은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지만, 정몽준 전 의원의 현대중공업그룹 역시 국내를 넘어 세계 조선업계를 휘어잡은 바 있다.

그리고 이제 서서히 손자들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고 정주영 회장의 직계손자 중엔 이미 경영일선에 나선 이들도 있고, 후계자 과정을 분주히 밟고 있는 이들도 있다. 현재의 상황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들 모두 본인의 시대를 코앞에 두고 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3세 경영인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이들의 활약에 따라 회사의 명운이 갈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간의 역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선 이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2016년, 현대가(家) 3세 경영인들의 현주소와 미래를 진단해본다.

▲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 정의선 부회장, 제네시스와 함께 화려하게 안착할까

현대가(家)는 2세 경영체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형제들이 계열사를 나눠 맡았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경영권 갈등 및 인수합병이 있었고, 지금에 이르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현재 ‘대들보’라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현대차그룹이다.

현대차그룹의 3세 경영인은 정의선 부회장이다. 1970년생인 정의선 부회장은 1999년 현대차에 입사해 오랜 시간 후계자 수업을 받아왔다. 2005년엔 기아차 사장에 취임했고, 2009년부터는 현대차 부회장을 맡고 있는 그다.

부회장만 7년차에 이른 그는 언제 회장직에 올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꾸준히, 그리고 착실히 후계자의 길을 걸어왔다. 대표적인 ‘성공작’으로는 “실수로 잘 만든 차”라는 찬사까지 받은 모하비가 있다.

2016년은 정의선 부회장에게 상당히 중요한 해가 될 전망이다. 성장을 거듭해온 현대차는 현재 위기에 봉착해있다. 장기적인 성장과 생존을 위해서는 새로운 도약이 필수다. 그리고 그 미래는 정의선 부회장의 어깨에 달려있다.

정의선 부회장은 최근 ‘현대차의 미래’라 할 수 있는 고급화 브랜드 제네시스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제네시스 런칭 행사를 직접 주관했고, 최근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도 직접 소개에 나섰다. 따라서 제네시스 브랜드의 성공 여부는 정의선 부회장의 회장 등극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주목된다.

즉, 제네시스의 성공적인 안착이 곧 정의선 부회장의 ‘후계 명분’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제네시스가 실패한다 해도 정의선 부회장의 후계 입지에는 변화가 없겠지만, 그를 바라보는 대내외적 시선과 신뢰엔 큰 차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새로운 브랜드의 출시는 무엇보다 ‘초반’이 중요하다. 초반 분위기를 어떻게 형성하느냐에 따라 성공여부와 기간이 갈리기 때문이다. 제네시스, 그리고 정의선 부회장의 2016년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 정지선-정교선 형제의 ‘미래 찾기’

고 정주영 회장의 삼남인 정몽근 명예회장의 두 자녀는 일찌감치 3세 경영의 닻을 올렸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과 동생 정교선 부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사촌 형 정의선 부회장이 ‘대기만성’ 스타일이라면, 2살 어린 정지선 회장은 전혀 다르다. 정지선 회장은 지난 2007년, 35살의 나이에 일찌감치 회장 자리에 올랐다. 정몽근 명예회장의 건강문제가 컸다.

우려 섞인 시선 속에 취임한 정지선 회장은 이후 크고 작은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덧 안정적인 회장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로 벌써 회장 9년차, 내년이면 10년차를 맞는 그다.

이렇듯 정지선 회장의 가장 큰 장점은 경험이다. 먼저 유통업계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한 가운데, 다양한 분야에서 신성장동력을 찾겠다는 ‘비전 2020’을 지난 2010년 발표했다. 이러한 기조에서 그가 적극적으로 인수한 현대리바트와 한섬은 빠른 성장을 보이며 ‘성공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동생 정교선 부회장도 마찬가지다. 정교선 부회장은 지난 2011년 그룹 부회장 자리에 올랐으며, 현대홈쇼핑을 기반으로 형을 보좌하고 있다.

이처럼 ‘형제 경영’이 자리잡은 현대백화점그룹 역시 2016년은 중요한 기점이다. 유통업계의 환경이 날이 갈수록 빡빡해지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일이 더욱 시급하고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지선 회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어느 정도 리스크를 안고서라도 중장기 성장전략을 사업환경과 트렌드의 변화에 따라 보완·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 사업만으로는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인식을 나타낸 것이다.

▲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와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
◇ 여러모로 눈길 끄는 정지이-정기선 전무

아직 경영일선에 전면적으로 나서진 않았지만, 분주하게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와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가 그 주인공이다.

고(故)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장녀인 정지이 전무는 2007년 전무로 승진해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77년생으로 올해 마흔이 된 그녀는 내부적으로 소통에 탁월하다는 평을 받으며 미래의 리더로 주목받고 있다.

정지이 전무는 오랜 기간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현대그룹이 위기를 털어낸 이후 경영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그녀의 행보가 더욱 주목되는 이유는 고 정주영 회장의 ‘정신적 적통’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지이 전무의 아버지인 고 정몽헌 전 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이 가장 신뢰한 인물이었다. 자연스레 고 정주영 회장의 숙원사업이었던 대북사업도 그가 물려받았다. 하지만 불미스런 사건으로 고 정몽헌 회장은 세상을 떠났고, 그 뒤는 아내 현정은 회장이 이었다. 정지이 전무 역시 어머니를 따라 대북사업을 적극 보좌하고 있는 만큼, 향후 경영을 넘어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로 기대를 모은다.

정몽준 전 의원의 장남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는 최근 가장 분주한 움직임을 보인 3세 경영인 중 하나다. 불과 2년여 만에 부장에서 상무로, 상무에서 전무로 초고속 승진했다. 더불어 현대중공업 지분도 조금씩 늘려가고 있는 그다.

눈길을 끄는 점은 현대중공업이 최악의 위기를 통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임원들에게 칼바람이 부는 사이 정기선 전무는 후계자로서 뚜렷한 행보를 보였다. 이대로라면 수년 내에 경영일선에 나설 가능성이 매우 높다.

중요한 것은 정기선 전무가 현대중공업의 위기극복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다. 일정 부분 공을 세운다면, 주위의 부담스런 시선을 어느 정도 무마할 수 있다. 이는 현대중공업의 핵심사업인 ‘사우디 사업’을 정기선 전무가 주도하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이렇듯 ‘한국 경제의 전설’ 고 정주영 회장의 피를 물려받은 현대가(家) 3세들은 저마다 중요한 2016년을 맞고 있다. 그들이 단순히 선대의 그늘에 머물지 않고, 자신만의 날갯짓을 펼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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