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뉴시스>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비정규직 45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

‘타이밍’은 기가 막혔다. 두산그룹(회장 박정원)은 문재인 대통령과 재계의 첫 회동을 앞둔 상황에서 현 정부 정책기조에 맞춘 상생방안을 발표했다. 내용도, 시기도 높은 점수를 받기 충분했다.

24일 두산그룹이 발표한 내용의 핵심은 이렇다. 두산그룹 지주사인 ㈜두산과 두산인프라코어가 계약직과 파견직 근로자 등 비정규직 45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는 것. 또 2·3차 협력업체와 영세 사내하도급 직원들에게 연간 120만원의 임금을 추가 지급하고 복리후생을 지원키로 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두산그룹의 ‘상생방안’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간담회 직전에 발표됐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재계 총수들은 27일부터 이틀동안 문재인 대통령과 간담회를 진행한다. 일자리 창출과 상생협력 등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가운데 두산이 가장 먼저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주파수를 맞췄으니 ‘눈도장’만큼은 확실히 찍은 셈이다.

문제는 ‘진정성’이다. 두산은 이번 발표를 하면서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발맞춰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비정규직의 제로화를 선언한 것은 지난 5월 초다. 상당수 공기업과 금융권 기업들이 앞다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대책을 발표했지만 두산을 포함한 대기업들은 눈치를 보며 미적거렸다. ‘비정규직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게 이유였다.

물론 ‘상생방안’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뚝딱 나올 수 있는 쉬운 작업은 아니다. 일정부분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도 이해된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대통령을 만나기 직전 ‘깜짝선물’을 내놨다는 점에선 의도를 의심받기 충분하다.

두산은 무엇보다 ‘면세점 특혜의혹’으로 불안한 처지에 몰려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면세점 선정 심사에서 점수조작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두산이 수혜를 입었다는 것이 골자다. ‘미르·K스포츠재단’ 등에 자금을 출연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벌써부터 면세점 사업권 취소 가능성을 비롯해, 이에 따른 대규모 실직 사태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면세점 사업을 주도했던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책임론에 휩싸인 상태다. 문재인 정부를 향한 박정원 두산 회장의 코드맞추기에 마냥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는 이유다.

특히 이번에 ㈜두산과 함께 정규직 전환에 동참한 ‘두산인프라코어’는 불과 2년 전, 입사한지 1년된 신입사원에까지 퇴사를 종용한 것이 알려지면서 엄청난 비판을 받았던 곳이다. 23세 계약직 여직원과 갓 입사한 신입사원도 희망퇴직 신청서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박용만 당시 두산그룹 회장이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한 희망퇴직을 중단하라’고 지시하면서 일단락 됐지만, 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던진 충격은 상당했다.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발맞춰 내린 결정”이라고 밝힌 두산의 이번 발표에 공감하기 힘든 배경이기도 하다.

두산은 그룹의 다른 계열사도 정규직 전환 대책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만큼 두산은 문재인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고 강하게 시그널을 보낸 상태다. 과연 박정원 두산 회장은 화답을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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