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가운데)이 두 번째 주요 재벌그룹과의 만남에서는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첫 번째 만남과 두 번째 만남은 달랐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더 단호하고 날카로웠다. 사실상 경고를 받은 5대 재벌기업들은 한층 분주해질 수밖에 없게 됐다.

김상조 위원장은 지난 6월, 4대 그룹 전문경영진과 첫 만남의 자리를 가진 바 있다. 이에 앞서 김상조 위원장은 4대 그룹의 역할 및 중요성을 강조했고 이들을 더 엄격하게, 그리고 우선적으로 다루겠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정권교체와 공정위 수장 교체, 그것도 ‘재벌 저승사자’라 불리던 김상조 위원장은 기업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첫 만남의 자리에서 김상조 위원장의 모습은 다소 예상 밖이었다. 4대 그룹을 다그치기 보단, 숨통을 트여주려는 모습을 보였다. 제재가 능사는 아니며,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테니 자발적으로 변해달라고 요구했다. 말 속에 뼈가 있긴 했지만, ‘저승사자’치고는 덜 무서웠다.

그로부터 4개월이 조금 더 흐른 지난 2일, 김상조 위원장은 다시 기업들과 마주앉았다. 지난번 만난 4대 그룹에 롯데까지 포함된 5대그룹과의 만남이었다.

김상조 위원장은 작심한 듯 모두발언부터 세게 나갔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성과를 내고, 상생협력에 노력을 기울인 점 등에 감사의 뜻을 전했지만 이내 물음표를 던졌다. 그는 “기업들의 노력에 불구하고 일반 국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나 지난 선거과정에서 약속한 공약에 비춰 볼 때 기업들의 자발적인 개혁의지에 여전히 의구심이 남아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며 “일각에서는 기업들의 소극적인 자세로 새 정부의 개혁 작업이 지지부진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분발을 촉구했다. 김상조 위원장은 “변화의 의지와 노력이 성과로 이어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과도기에는 이러한 의심과 비판이 나올 수 있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기업의 전략이 시장과 사회의 반응으로부터 지나치게 괴리되어선 안 되기 때문에 좀 더 분발해주시길 부탁드린다. 국민이 기업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도록 좀 더 세밀한 전략을 좀 더 속도감 있게 진행해주실 것을 간곡히 당부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김상조 위원장은 향후 주목할 계획인 부분을 언급하며 힌트를 던져줬다. 공익재단 운영실태 전수조사와 지주회사 수익구조 실태 조사 등을 실시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기업집단국의 업무계획 일부를 미리 말씀드리는 것은, 기업 측에서도 공익재단이나 지주회사 수익구조 그리고 각 그룹의 특수한 이슈들을 미리미리 점검해보고, 선제적으로 위험요소들을 관리하실 것을 당부 드리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말은 ‘당부’였지만, 사실상 숙제를 내준 셈이다.

김상조 위원장의 모두 발언은 마지막까지 기업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김상조 위원장은 “공정위 소관업무가 아닐 수도 있고, 법으로 강제할 성질의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사실 오늘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당부가 있다”며 입을 뗀 뒤 네 가지 내용을 언급했다. 첫 번째는 공정위 직원에 대한 불필요한 접촉 또는 로비를 막기 위한 조치를 준비 중이며, 이에 대해 협조 당부였다. 이어 기관투자자 등 외부주주와의 적극적인 소통, 하도급거래 공정화를 위한 구매부서 직원 성과평가 기준 수정, 합리적 노사관계를 위한 노력 등을 요구했다.

이처럼 김상조 위원장은 첫 번째 간담회보다 두 번째 간담회에서 더 강도 높은 질책과 요구사항을 쏟아냈다. 이에 기업들은 당혹스런 반응을 감추지 못했다. 본색을 드러낸 ‘저승사자’의 모습에 고민이 깊어지게 됐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 번 만남이 상견례 수준이었다면, 이번 만남에선 꼼꼼하고 구체적인 지적사항들이 나왔다”며 “무엇보다 재계를 긴장하게 만든 것은 어느 것 하나 쉽게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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