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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속 여성, 이렇게 변했다③-下] 이언희 감독 “기회 주는 사람들, 도전정신 가졌으면”
2018. 12. 31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올해 한국 사회의 주요한 화두 중 하나는 단연 ‘여성’이었다. 성차별과 성범죄를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한국 사회 전반을 흔들었고, 이를 시작으로 여성의 권리 및 기회의 평등을 주장하는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여성들은 거리로 나와 성범죄를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출판계에서도 페미니즘 관련 서적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흐름은 영화계로도 이어졌다. 페미니즘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주체적인 여성이 등장하는 여성주의 영화들이 다수 등장했고, 이러한 영화들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과 지지가 쏟아졌다. 누구에게나 다 있는 이름도 여성에게는 박하기만 했던 한국 영화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편집자 주>

이언희 감독은 과거에 비해 여성 영화인들이 활약할 만한 작품이 더 줄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최근 작은 변화들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사진=김경희 기자
이언희 감독은 과거에 비해 여성 영화인들이 활약할 만한 작품이 더 줄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최근 작은 변화들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사진=김경희 기자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上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이언희 감독은 과거에 비해 여성 영화인들이 활약할 만한 작품이 더 줄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최근 작은 변화들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 이 감독은 여성 영화인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오기 위해서는 제작자와 투자사들의 ‘도전적인 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 선배 여배우가 ‘어느 순간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영화들이 사라졌다’라고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저도 비슷하거든요. 두 번째 영화를 할 때까지는 ‘섹스 앤 더 시티’라든가 ‘싱글즈’처럼 여성이 중심이 되는 장르가 상업적으로 잘 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고민이 오히려 그때는 그렇게 크지 않았단 말이죠. 어느 순간 이렇게 됐어요. 내가 변한 게 아니라 상황이 변해지면서 조금 더 어려워지는 거요.

그런데 또 어떻게 보면 2014년부터 ‘미씽’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때쯤 그런 영화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이 그전보다 조금은 다시 시작되고 있었으니까 (작업에) 들어갈 수 있지 않았을 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여기서 살아남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 그것밖에 없어요.”

‘과거에 비해 여성 영화인으로서 더 힘든 점을 느끼냐’는 질문에 이언희 감독은 “어린 나이에 데뷔를 했기 때문에 당시 환경과 비교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고 답했다. ‘어린’ 여성과 ‘나이 든’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다르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어린 여자를 대하는 것과 나이 든 여자를 대하는 것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데뷔했을 때는 약간 귀여움 당하는 게 있었죠. ‘어린애가 참 대견하네?’라면서요. 여자이긴 하지만 나이가 어리니까 그게 플러스가 돼서 ‘어린애가 잘 하네, 그래 내가 도와줄게’라고요. 이제 더 이상 그런 시선으로 절 볼 수 없는 거죠. ‘나이 든 여자가 왜 저렇게 까칠해?’라는 시선으로 바뀐 거예요.”

이언희 감독이 여성 감독이라는 이유로 겪었던 고충을 털어놨다. /사진=김경희 기자
이언희 감독이 여성 감독이라는 이유로 겪었던 고충을 털어놨다. /사진=김경희 기자

실제로 이언희 감독은 현장에서 더한 말도 들었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이언희 감독은 현장을 지휘하는 ‘감독’ 이전에 ‘여자’였던 것이다.

“더 심한 말도 많이 들었죠. 그런 말을 일하면서 안 들어 본 사람들이 있을까요? 영화 ‘리벤지(Revenge, 2017)’ 코랄리 파르쟈 감독님 인터뷰를 봤어요. 저랑 동갑인 프랑스 여자 감독인데 미국 프로덕션에서 일하다가 영화로 데뷔한 분이에요. 인터뷰에서 ‘남자들은 여자한테 명령을 듣기 싫어한다’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감독은 (현장에서) 어떻게 보면 계급적으로 가장 상위인 거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명령을 싫어하기 때문에 감독을 하기 힘들다는 얘기를 그분조차 하는데, 유교가 기본 바탕인 우리나라에서야 너무 당연한 거죠.

‘미씽’을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게 ‘남자들은 정말 여자가 부탁을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구나’ 였어요. 애교를 부리면서. 심지어 그 얘기를 듣기도 했었고요. 제가 어떤 분과 ‘왜 내가 얘기를 하는데 들어주지 않는가’에 대해 상의를 했었는데 부탁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오빠들한테 부탁해’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2003년에 데뷔해서 마흔인 여자 감독에게 ‘오빠들한테 부탁하라’는 얘기를 현장에서 할 정도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거죠. 그분 입장에서는 솔루션을 제시하고 싶었던 거고, 농담이었을 수 있지만 저는 참… 왜 부탁해야만 하는가.

‘…ing’를 하면서도 제가 화를 내면 사람들이 ‘삐쳤다’고 표현하는 거예요. 왜 내가 화를 내면 권위 있게 느껴지지 않고 성깔을 부리거나 심지어 히스테리를 부리거나 삐친 걸로 보이는가. 다른 선배 여자 감독에 대해서도 ‘의외로 삐치시고 짜증 많고, 의외로 여성스러워요’라고 하더라고요. 어쩌면 여자들이 권위 있게 화를 내는 방법을 습득을 못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무언가를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 조금 더 좋은 방식으로 전달하는 화법에 훨씬 익숙해있다는 생각이요. 권력을 갖고 있어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거죠. 기본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음성이 다르잖아요. 남성은 굵직하고 여성은 어쩔 수 없이 하이톤일 수 있는데, 그거에 대해서 ‘저 여자 왜 저렇게 떽떽 거려’라고 표현하는 것, 남자한테는 그런 얘기 안 하잖아요.” 

이언희 감독은 ‘여성’에 프레임을 씌우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 중 하나가 ‘모성’이다. 이 감독은 ‘미씽: 사라진 여자’ 속 두 여자 지선(엄지원 분)과 한매(공효진 분)의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그게 제 고민이에요. 왜 모성으로 느껴질까. ‘미씽’에 대해서 한 번도 모성이라는 거에 대해서 고민을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어요. 저는 제 또래 사람들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애가 있는 여자가 있고, 없는 여자가 있지만 애가 있는 여자가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된 구석들이 있거든요. ‘테이큰’이란 영화를 보면서 부성애라고 하지 않잖아요. 아빠가 딸을 찾는 이야기, 사실 엄청난 부성에 대한 영화거든요. 하지만 액션에 주목하지 부성에 대해 그 영화를 애기하지 않는데 왜 ‘미씽’에 대해서는 모성에 대한 영화라고 표현을 하는가. 물론 많은 것들이 아이에 대한 이야기지만, 저는 지선에게 많은 요소들이 있지만 한매에게 아이는 어떻게 보면 폭력의 결과물이잖아요. 모성일 수도 있지만 휴머니즘인 거죠.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그냥 본인에 대한 이야기인 거예요. 여성 자체에 대한.”

이언희 감독은 ‘여성’에 프레임을 씌우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 중 하나가 ‘모성’이다. 이 감독은 ‘미씽: 사라진 여자’ 속 두 여자 지선(엄지원 분)과 한매(공효진 분)의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 해당 영화 포스터,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이언희 감독은 ‘여성’에 프레임을 씌우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 중 하나가 ‘모성’이다. 이 감독은 ‘미씽: 사라진 여자’ 속 두 여자 지선(엄지원 분)과 한매(공효진 분)의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 해당 영화 포스터,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이 감독은 “모성에 대한 영화라고 카테고리가 줄어드는 게 불만인 것”이라며 “모성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게 불편한 게 아니라 모성에 관한 영화가 되는 순간 그 의미가 축소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모성애를 강요받는 것 외에도 많은 영화에서 여성은 성(性)적, 살인 도구로만 소비되기도 한다. OO 씨의 처, OO 씨의 모, 임산부, 여자 시체1, 룸살롱 마담 등 지난해 개봉한 한국  영화 속 등장한 여성 배역만 훑어봐도 알 수 있다. 최근 한 방송에서 변영주 감독은 “한국 영화 자체가 여성 캐릭터 개발을 게을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언희 감독은 “게을리해도 됐기 때문”이라고 의견을 내놨다.

“한국 영화 자체가 여성 캐릭터 개발을 게을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굳이 여자 캐릭터를? 그런데 지금은 조금씩 노력을 하잖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 예민하게 생각하고요. 흥행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거죠. 예전에는 여자 캐릭터를 필요한 대로 쓰면 됐었고, 내 마음대로 쓰고 그냥 이용만 하면 됐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을 지적당할 경우에 다른 부분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까요. 저는 게을리해도 됐다고 생각해요.”

이 감독은 한국 영화가 여성 캐릭터 개발을 게을리할 수 있었던 이유로 ‘흥행에 영향을 미치느냐’를 꼽았다.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인 영화는 흥행이 안 된다’라는 말은 영화계의 오랜 속설 중 하나다. 제작비를 회수해야 다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구조의 상업영화 산업에서 작품의 흥행 여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남성 주연의 작품이 흥행에 실패하면 성별을 근거로 들지 않지만 여성 주연 작품은 부진의 이유로 ‘여성 주연작’이라는 점이 자주 언급된다. 이는 여성 중심 서사의 작품이 남성 주연 영화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탓에 성별이 더욱 도드라지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언희 감독은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인 영화는 흥행에서 불리하다’는 인식이 충무로에 자리 잡은 것에 대해 “남성 관객들이 여성 캐릭터에 이입을 하지 못하는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미씽’을 하면서 느낀 건데, 여자 관객들은 남자가 주연이든 여자가 주연이든 둘 다 볼 수 있는 학습이 됐다면, 남자들은 여성이 나오는 것에 대한 학습이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익숙하지 않은 거죠. 우리가 평소 잘 접하지 않는 낯선 나라의 영화를 봤을 때 배우가 나오는 순간 주인공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그런 경험인 거죠. 남성 관객들이 그런 것 같아요. 여배우들이 나오는 순간 내가 따라가야 할 대상으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거예요. 흐름을 잘 타지 못하는 거죠. 그게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어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 미국 HBO에서 제작 및 방영한 드라마로 뉴욕 시에 생활하는 4명의 여성이 주인공)도 많은 남자들이 좋아하긴 했지만, 과연 이입해서 보는 걸까? 여성들의 폭발적인 지지가 있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지점이 있지 않았을까요. ‘프리즌 브레이크’(Prison Break, 미국 FOX에서 방영한 서스펜스 장르의 미국 드라마 시리즈로 억울한 누명을 쓴 형을 구하기 위한 동생의 구출 과정을 그린 작품)를 보면서 여자들은 이입이 됐다고 생각하거든요. ‘프리즌 브레이크’ 주인공이 여자였다면, 남자들이 똑같이 이입을 했을까요?”

그렇다면 여성 영화인들의 활약이 더 활발히 이뤄지기 위해서 한국 영화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이언희 감독은 ‘기회’를 제공하는 위치에 선 이들이 ‘도전 정신’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결국에는 할 수 있는 것을 그냥 하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하고 싶지도 않고 시켜주지도 않는데 남자들이 떼로 나오는 뭔가 그런 영화를 갑자기 찍겠다고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내 머릿속에 뭔가 들어와야 하는 거니까요. 또 한편으로는 감독들이 시나리오를 쓰기도 하지만 받아서도 할 수 있는데, 나한테 그런 기회가 올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하고요. 그런 점에서 기회를 주는 분들이 정말 소중하다는 거. 기회를 주는 분들이 마인드의 변화랄까, 조금 더 도전 정신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