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고아성이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감독 조민호)로 돌아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고아성이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감독 조민호)로 돌아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외로웠냐는 말에 혼자 남아있던 (유)관순이 생각이 났다.

배우 고아성이 눈물을 참지 못했다. 3평이 채 되지 않은 좁은 공간, 온기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생애 마지막 순간을 홀로 외롭게 보냈을 열일곱 소녀를 떠올리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연기 인생 15년,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다수의 작품을 소화했지만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감독 조민호)는 유독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을 다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장르를 통해 깊고 폭넓은 연기로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고아성이 열일곱 소녀 유관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로 돌아왔다. 지난 27일 개봉한 ‘항거:유관순 이야기’는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에서 시작된 만세운동 이후, 고향 충청남도 병천에서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유관순(고아성 분)이 서대문 감옥에 갇힌 후 1년여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항거:유관순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 외에 서대문 감옥에서 옥살이를 시작한 유관순과 8호실 여성들의 연대 등 낯선 이야기를 담아내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수원에서 30여 명의 기생을 데리고 시위를 주도했던 기생 김향화, 다방 직원이었던 이옥이, 유관순의 이화학당 선배 권애라, 시장통에서 장사를 하다 아들을 잃고 만세운동을 시작한 만석모, 아이를 가진 수감인으로 갖은 고생 속에서도 아이를 키워낸 임명애 등 평범한 여성이었던 다양한 독립운동가의 삶을 그려내 눈길을 끈다.

극중 고아성은 유관순으로 분했다. 데뷔 후 처음으로 실존 인물을 연기하게 된 그는 진심을 다한 열연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흔든다. 특히 평범한 열일곱 소녀의 모습부터 슬프지만 당당함을 담고 있는 유관순의 뜨거운 눈빛까지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아내 감탄을 자아낸다.

고아성이 ‘항거:유관순 이야기’를 택한 이유를 밝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고아성이 ‘항거:유관순 이야기’를 택한 이유를 밝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개봉에 앞서 <시사위크>와 만난 고아성은 아직 유관순을 떠나보내지 못한 듯 보였다. 유관순 열사가 느꼈을 외로움을 떠올리며 눈물을 참지 못했고, 죄책감에 마음 아파했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고,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어떤 마음이 들었나.
“일단 고민을 너무 많이 했다. 친한 배우한테 고민을 공유한 적이 있다. 얘기를 다 들려줬더니 ‘이 영화는 유관순이라는 인물보다 8호실 여자들, 우리가 몰랐던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이야기 같다’면서 내가 그 이야기를 부각시킬 수 있으면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 말에 용기를 얻었던 것 같다. 결정하고 나서는 모두가 아는 인물인 만큼 배우로서의 욕심보다 진심을 다해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 그렸던 유관순 열사의 이미지가 있었을 텐데, 연기하면서 다르게 느낀 부분이 있다면.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유관순 열사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민호) 감독님이 촬영 전에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편지를 준 적이 있다. 거기에 리더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리더들의 공통점이 주변 사람들에게 ‘나 잘하고 있느냐’고 많이 물어봤다는 거라더라. 그때 리더로서 이 인물에 대한 방향성이 처음 생겼다. 내가 그동안 생각해왔던 관순이란 인물은 신념이 강하고 뚝심 있고 주변에 휘말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공존하는 사람이었다는 방향성이 생겼던 것 같다.”

-가장 크게 고민했던 부분이 있다면.
“명확하지 않은 상태로 있었다는 거다.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창조해도 될까라는 생각이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인물이고 힌트도 많았지만, 어떻게 보면 오롯이 만들어내야 하는 부분도 많았기 때문에 그런 점이 부담이 아니었나 싶다.”

-독립운동가로 당당함과 강인한 모습부터 소녀 유관순의 모습도 담아내야 했다. 균형감 잡는데도 신경을 썼을 것 같다.
“(조민호) 감독님이 촬영 전에 주신 책이 있는데 열사님의 생애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와 함께 8호실에 있던 다른 여성 독립운동가의 증언이 담겨있었다. (유관순이) 짓궂을 정도로 장난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데서 인간적으로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장난도 치고, 눈물도 보이고 약한 모습도 보인다. 고민을 공유하기도 한다. (자료를 통해) 그런 부분을 만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고아성이 ‘항거:유관순 이야기’를 위해 단식을 했다고 말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고아성이 ‘항거:유관순 이야기’를 위해 단식을 했다고 말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실제로 단식도 했다고.
“처음 회의할 때 극명한 차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기존 몸무게보다 조금 증량해서 시작했고, 점점 (살을) 빼면서 촬영을 했다. 서서히 음식을 줄였다. 완전히 단식한 것은 5일밖에 안 된다.”

-고문 당하는 촬영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실제로 고문을 당한 것은 아니다. 하하. (조민호) 감독님이 조심스러워했다. 배우의 고충을 다 이해해주는 분이다. 힘든 장면을 찍을 때마다 환기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쉬는 시간도 틈틈이 줬다. 괜찮냐고 물어보면서 촬영을 해서 후유증은 없었다.”

-‘항거:유관순 이야기’는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을 다룬 영화다. 독립운동가로서의 삶 외에도 그 시대를 살았던 ‘여성’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한 부분이 있나. 
“그 당시 자유와 요즘 생각하는 자유의 개념이 많이 다를 거라고 생각을 했다. 또 내가 맡은 인물뿐 아니라 8호실에 있는 모든 독립운동가들이 각기 다른 이유로 만세운동에 참여해서 모이게 된 것이지 않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다양한 사연을 다룬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언론배급시사회 때도 그렇고 인터뷰 때도 그렇고 계속해서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동안 이렇게까지 눈물을 보였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이 영화는 서사가 남달랐고, 좋은 기회이자 소중한 기회였기 때문에 모든 감정의 과정들을 다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더 자세하게 감정들을 짚었던 것도 있었다.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아직도 (촬영 당시)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동안 작품에서는 고난이 있어도 다 극복했는데, 이번 작품에는 그런 과정이 없었던 것 같다. 극중 풀지 못해서 눈물이 많아진 건가? 하하. 그런데 굳이 털어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살면서 종종 예전 작품들이 생각나서 감정이 올라올 때가 있다. 계속 그렇게 비슷한 과정이지 않을까.”

-이번 작품을 통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매 작품을 하면서 관점이 달라지긴 하는데 이토록 용기를 내본 작품이 없었던 것 같다. 공식 석상에서 운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더 단단해진 것 같고 용기도 생겼다. 하지만 아직 새로운 작품에 참여할 마음가짐은 안 돼 있어서 결정을 미루고 있는 상태다.”

고아성이 ‘항거:유관순 이야기’에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꼽았던 장면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고아성이 ‘항거:유관순 이야기’에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꼽았던 장면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독립운동가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을 하고, 유관순 역을 연기하면서 외로움을 느낀 순간이 있나.
“외롭다는 말을 들으니 혼자 남아있는 (유)관순이 생각났다. 너무 부담이 됐던 장면이 있다. 만세 1주년에 다시 만세를 외치는 거였는데, 촬영 날까지 카운트를 셀 정도로 부담이 됐다. 클로즈업으로 시작해서 긴 대사를 홀로 오롯이 해내야 하는 장면이었다. 대사가 워낙 길기도 했고, 다른 대사들처럼 생각나서 말을 하는 것이 아닌 머릿속으로 되뇌면서 외운 글자 하나하나를 낭독해야 했다.

그 장면의 무거움이 느껴지면서 외롭다고 느꼈다.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촬영에 들어가고 하늘을 보면서 대사를 하다가 마지막에는 배우들 하나하나 눈을 맞춰가며 대사를 마쳤는데, 그 배우들이 카메라를 등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진심으로 연기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내가 왜 그렇게 외롭게 짊어지려고 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 장면이 제일 뜨거웠고, 다 한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모두 공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항거:유관순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았으면 좋겠나.
“우리가 몰랐던 유관순이라는 인물에 모습뿐 아니라 8호실에 실존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다 기억할 수 있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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