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던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가 20여년 만에 잠정 휴식기를 가진다. / KBS제공
지상파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던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가 20여년 만에 잠정 휴식기를 가진다. / KBS제공

시사위크=이민지 기자  최근 방송가는 ‘예능프로그램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다양한 방식으로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프로그램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반면 ‘웃음’을 주제로 한 코미디프로그램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남아있는 코미디프로그램도 손에 꼽을 정도다. 웃음을 나누고 싶지만 나눌 수 없는 코미디언들의 씁쓸한 현실이다.

지상파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던 개그프로그램 KBS2TV ‘개그콘서트’가 방송 20여년 만에 잠정 휴식기를 갖는다.

1994년 9월 4일 첫 방송된 ‘개그콘서트’는 최장수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신인 개그맨의 등용문 역할을 해왔다. 이수근을 비롯해 △박준형 △강성범 △김병만 △유세윤 △김준현 △김숙 △안영미 등 수많은 개그맨 스타들이 ‘개그콘서트’ 출신이다. 그만큼 수많은 유행어와 시대를 통찰한 코너를 통해 국내 코미디 트렌드를 선도하며 대한민국 ‘공개코미디의 장’을 열었다.

하지만 ‘개그콘서트’는 달라진 방송환경과 코미디 트렌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2% 시청률을 기록, 결국 휴식기를 택했다. KBS 측은 “달라진 방송 환경과 코미디 트렌드의 변화 그리고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계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새로운 변신을 위해 잠시 휴식기를 갖는다”며 “제작진은 그동안 유행어로, 연기로 대한민국의 주말 웃음을 책임져온 재능 많은 개그맨들과 프로그램을 사랑해주신 시청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개그콘서트’다운 유쾌한 웃음을 선사할 것으로 약속드리며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만나 뵙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개그콘서트'가 잠정 휴식기를 가짐에 따라 국내 유일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남아 있는 tvN '코미디 빅리그' / tvN 제공
'개그콘서트'가 잠정 휴식기를 가짐에 따라 국내 유일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남아 있는 tvN '코미디 빅리그' / tvN 제공

KBS 측에 따르면 ‘개그콘서트’의 출연자들은 휴식기 동안 KBS 코미디 유튜브 채널인 <뻔타스틱>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코미디를 위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갈 예정이다. 

‘개그콘서트’가 잠정 휴식기에 접어들면서 코미디언들을 위한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은 tvN ‘코미디빅리그’만이 남았다. 또한 현재 KBS2TV ‘스탠드업’이 국내 최초 선보이는 스탠드업 코미디쇼로 무명 코미디언들의 장이 되어주고 있다. JTBC 새 코미디 프로그램 ‘장르만 코미디’가 편성 확정이 된다면 수많은 프로그램들 중 코미디 프로그램은 단 세 편에 불과하다. 

‘장르만 코미디’는 ‘개그콘서트’를 이끌었던 서수민 PD가 제작을 맡고, 김준호·유세윤·안영미 등 ‘개그콘서트’ 주요 멤버들이 출연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JTBC는 ‘장르만 코미디’ 편성을 검토 중인 상황이다.

방송국에서 설 곳을 잃어가는 탓에 코미디언들은 자연스럽게 유튜브로 자신들의 끼를 방출하고 있다. 

먼저 개그맨 정준하가 유튜브로 활동 재개에 나서고 있다. 지난 1월 <정준하 소머리국밥> 유튜브 계정을 개설한 정준하는 ‘이태원클라쓰’와 ‘방법’ 패러디, 에어팟 프로 광고 패러디 등 재치있는 영상들로 15일 기준 3만8,200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개그맨 윤형빈은 지난해 10월 유튜브 계정 <윤형빈의 원펀맨>을 개설해 개그, 격투기, 음악 콘텐츠로 네티즌들과의 소통에 나서고 있다. 또한 ‘수다맨’ 캐릭터로 큰 사랑을 받은 강성범은 <강성범tv> 채널을 운영, 정치적 이야기를 콩트 형태로 풀어낸 ‘럭셔리칼럼’ 시리즈 영상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밖에도 이국주, 홍인규, 강유미, 이세영, 조원석 등 수많은 코미디언들이 유튜브에서 각자의 개성을 담은 영상들로 방송에서 못다한 끼를 선보이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강성범 / '강성범 tv' 영상 캡처
유튜브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강성범 / '강성범 tv' 영상 캡처

개그맨 노우진은 앞서 ‘개그콘서트’ 폐지설이 불거지자 본인의 유튜브 채널 <노우진 TV>를 통해 이에 대한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노우진은 “제가 KBS 소속이고 ‘개그콘서트’ 내에 몸을 오래 담았기 때문에 폐지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며 “(‘개그콘서트’는) 일단 재미가 없다. 요즘 사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고 입을 열었다.

계속해서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자극적이고 소재 제약이 없이 리얼한 웃음을 보여줄 수 있는 유튜브 시장이 커져서 상대적으로 ‘개그콘서트’의 영상이 재미가 없어 보일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개그콘서트’는 공영방송이고 해서 어느 정도의 제약이 따르지 않나”라며 “(‘개그콘서트’의 폐지에는) 스타 개그맨의 부재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개그콘서트’의 중심을 잡아주셨고, 매년 새로운 스타들이 배출됐다. 신구(新舊)의 조화를 이루어 인기를 이어갔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흐름이 뚝 끊겼다”고 말했다.

'개그콘서트' 폐지설에 대한 입장을 전했던 개그맨 노우진 / '노우진TV' 계정 영상 캡처
'개그콘서트' 폐지설에 대한 입장을 전했던 개그맨 노우진 / '노우진TV' 계정 영상 캡처

그리고 이러한 코미디언 스타들이 탄생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노우진은 “‘개그콘서트’는 스케줄의 제약이 많았다. 쉽게 말해 ‘개그콘서트’는 학교 같은 존재였고, 나머지 방송 스케줄은 학원을 다니는 느낌이었다”며 “타방송, 광고, 공연 등 행사 스케줄에 대해서는 최대한 ‘개그콘서트’ 활동에 지장 없게 잡는다. ‘개그콘서트’는 학교다. 학교에 속해 있으면 다양한 스케줄을 소화할 수 없다. 이렇다보니 개그맨 지망생들도 이젠 열심히 노력해서 ‘개그콘서트’로 간다기보단 원하는대로 스케줄을 기획하고 수입을 이룰 수 있는 유튜브로 간다“고 밝혔다. 

이젠 코미디언들에게 유튜브는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매김하는 분위기다. 설 자리가 없는 방송국 대신 온라인을 택한 코미디언들. 이들이 유튜브로 향할 수 없는 속사정이자 TV에서 코미디언들의 모습이 점점 사라져가는 이유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