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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뉴스
[메르스 사태 후폭풍①] 위기대응 매뉴얼 멈췄다
2015. 06. 05 by 정계성 기자 minjks@gmail.com

▲ 지난해 5월 박근혜 대통령은 눈물을 머금으며 세월호 참사 의인들의 실명을 일일이 언급, "남은 우리들의 의무는 대한민국 개혁과 대변혁을 만드는 것"이라고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1년이 조금 지난 이 시점에 메르스 사태는 대한민국 사회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대한민국의 개혁과 대변혁을 만들어 가는 것이 남은 우리들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가 개혁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영원히 개혁을 이뤄내지 못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중략)…지금 우리 공직사회는 폐쇄적인 조직문화와 무사안일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공무원이 되는 임용부터 퇴직에 이르기까지 개방성과 전문성을 갖춘 공직사회로 혁신하려고 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난 지난해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이 발표한 대국민 담화문의 일부 내용이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민낯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눈물을 머금으며 ▲국민안전처 신설 ▲세월호 특별법 제정 ▲관피아 척결을 통해 “국가대개조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예수의 탄생으로 기원전과 기원후가 나뉘는 것처럼, 대한국민의 ‘안전’ 패러다임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1년이 조금 지난 현재는 어떨까. 이에 대해 손석희 JTBC 사장은 뉴스룸 브리핑에서 “한국 사회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뉠 거라 했지만 많은 이들은 그때와 지금이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국가개조를 외치고도 여전히 무능함을 드러낸 정부와 세월호 문제를 이데올로기 문제로 비화해 편을 가른 사람들, 이에 편승해 막말을 일삼은 정치인들 등이 골든타임마저 날려버린 게 아닌가 싶다”고 꼬집었다.

◇ 메르스 사태는 세월호 후속대책의 사실상의 시험대

실제 메르스 사태로 비춰지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세월호 참사 당시와 달라진 것이 없다. 최초 감염자가 병원을 찾았을 때, 메르스를 의심한 의료진에게 보건당국은 ‘다른 검사부터 해보라. 메르스가 아니면 책임질 거냐’며 무사안일한 태도로 골든타임을 놓쳤다. 해당병원에 임시폐원 조치도 하지 않으면서 5일 기준 환자는 41명에 사망자 4명, 군인까지 전염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초등조치 실패가 참사로 이어졌던 세월호와 판박이다.

뿐만 아니라 자가격리 중이던 메르스 의심환자가 중국으로 출국하면서 외교문제로 비화되기도 했고, 메르스로 인해 사망했던 50대 여성에 대해서는 ‘연락이 안 된다’는 이유로 방치, 방역관리에 구멍이 뚫리기도 했다.

▲ 뉴욕타임즈는 3일자(현지시간) 보도에서 메르스로 인한 사망자는 정부의 신속대응 실패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침몰'을 언급하고 있다. <뉴욕타임즈 캡쳐>
“안전관련 조직을 통합하고 지휘체계를 일원화해서 모든 유형의 재난에 현장중심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겠다”며 출범한 국민안전처는 재난에 무력했다. 정부의 위기대응 매뉴얼이 실전에서 전혀 작동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현재까지도 대책반의 책임자는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고, 총리급으로 격상시켜 범정부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에도 귀를 닫고 있다. 정부의 안일한 대응에 당장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에서 조차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라”고 주장하고 있다. 

◇ 뉴욕타임즈 “메르스로 인한 사망은 한국정부의 대응실패가 원인”

메르스 바이러스가 국민들 사이에 퍼지는 동안, 청와대와 정치권은 국회법 개정안 공방으로 홍역을 앓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국회법 개정안 논란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과 맞닿아 있다. 세월호 특별법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대통령의 약속이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상황이다.

국가 개조에 실패한 것은 또 있었다. 청와대의 늑장 대응과 정쟁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은 발생 7시간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 구설에 오른 바 있다. 이번에도 첫 확진 이후 12일이 지나서야 수석비서관 회의를 통해 처음으로 언급했다. 한참 메르스 바이러스가 다른 환자로 옮겨가던 5월 26일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여름이 시작되니 보건과 방역과 관련해 꼼꼼하게 정비하라”고 주문했다. 전쟁이 한창인 때 최고 통수권자가 나타나 한가롭게 ‘훈련 열심히 하라’고 말을 한 것과 다름없다.

직접 대책본부장으로 서울시 안전을 책임지겠다는 박원순 시장에 대해서는 “불필요한 오해와 불안감을 확산시킬 수 있다”며 하루 만에 입장을 발표, 화살을 돌렸다. 새누리당 지도부 역시 “사실관계와 다른 혼란이 있어서는 안 된다”, “박 시장이 잘못된 정보를 퍼트려서 양심적 의사를 개념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시민불안을 부추겼다”며 비난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물론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국민의 불안감이 이미 높아진 상황에서 전수조사와 강제격리를 하겠다는 것이 비난받을 일인지는 의문이다.

우왕좌왕하는 정부에 국민들은 불안하다. 이 같은 국내 상황을 보면서 한 외신은 ‘트라우마’라고 표현했다. 지난 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즈>는 ‘한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메르스 공포’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세월호 침몰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한국의 시민들 사이 (메르스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이 같은 재난으로 인한 사망은 정부가 신속한 대응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