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그룹이 프로야구단 SSG 랜더스를 창단하면서 유통업계 라이벌 롯데그룹과의 경쟁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신세계그룹이 프로야구단 SSG 랜더스를 창단하면서 유통업계 라이벌 롯데그룹과의 경쟁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 및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모처럼 지각변동이 일어나며 흥미진진하게 진행돼오던 프로야구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전반기를 조기 마감했다. 바로 이 시기, 전반기를 정리하는데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스토리가 있다. 야구판에서 만나 묘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이야기다. 극명하게 희비가 엇갈린 두 사람, 그리고 두 팀과 두 그룹의 전반기를 되짚어본다.

◇ 야구판 뛰어든 정용진의 ‘도발’

“꿈이 현실이 되는 야구단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3월, SSG 랜더스 창단식에서 정용진 부회장이 밝힌 일성이다. 정용진 부회장은 올해 초 SK 와이번스 인수 소식으로 야구계는 물론 세간을 깜짝 놀라게 했다. 평소 야구단 운영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기는 했으나, 코로나19 국면에 SK 와이번스를 품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후 정용진 부회장과 SSG 랜더스는 연일 화제를 모으며 활기찬 출발을 보였다. 시즌을 앞둔 시기엔 메이저리그 스타 추신수라는 ‘초대형 영입’에 성공했고, 팀 공식명칭과 마스코트·유니폼 등이 큰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그 무엇보다 화제와 관심의 중심에 섰던 것이 있다. 바로 정용진 부회장의 거침없는 언행, 그리고 롯데그룹 및 신동빈 회장과 형성한 묘한 긴장감이다.

정용진 부회장은 창단식이 예정돼있던 날 새벽, SNS를 통한 실시간 소통에서 거침없는 ‘말’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주로 야구단 운영에 대한 포부였는데, 여기엔 신세계그룹과 ‘유통업계 라이벌’로 꼽히는 롯데그룹을 향한 ‘라이벌 의식’도 오롯이 드러났다. 

그는 “야구단을 가진 롯데를 보면서 많이 부러워했다”면서도 “롯데가 가지고 있는 본업 등 가치 있는 것들을 본업에 연결시키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하며 소위 ‘돌직구’를 날렸다. 또한 “게임에선 우리가 질 수 있겠지만, 마케팅에서 만큼은 반드시 롯데를 이길 자신이 있다” “걔네(롯데)는 울며 겨자먹기로 우리를 쫓아와야 할 것” “우리가 하면 롯데가 따라온다. 롯데 구단은 내가 살린 셈”이라는 등의 도발적인 표현을 하기도 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야구단 차단 후 거침없는 언행 및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뉴시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야구단 차단 후 거침없는 언행 및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뉴시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정용진 부회장은 며칠 뒤 재차 SNS에 등장해 롯데를 더욱 적극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롯데쇼핑이 프로야구 개막에 맞춰 신세계그룹을 겨냥한 광고문구와 함께 대규모 마케팅에 나선 것을 두고 “내가 의도한 대로 롯데가 반응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전국민이 신세계와 롯데가 싸우는 걸 봤으면 좋겠다”며 역시나 거침없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고, “롯데가 미운 게 아니다. 롯데는 우리의 30년 동반자다. 롯데 덕분에 우리도 크고 롯데도 우리 덕분에 같이 커왔다”거나 롯데 자이언츠의 전력을 높게 평가하는 등 상대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지난 4월 말 신동빈 회장이 모처럼 야구장을 찾은 직후에도 정용진 부회장은 ”내가 하니까 다 따라하는 것”이라며 “동빈이형도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온 것이다. 나는 롯데에 정말 좋은 영향을 미친 사람이 됐다”고 자평했다. 이어 “우리가 이 판에 안 들어오고 (라이벌 관계) 화두가 떠오르지 않았다면 올 이유가 없다. (신동빈 회장은) 야구에 관심이 없었는데 내가 이 판에 들어와서 도발을 하니까 본인도 제스처를 취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정용진 부회장의 이 같은 언행을 향한 평가는 엇갈렸다. 경직돼있던 프로야구계에 활기와 흥미로운 스토리를 불어넣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지만, 다소 거친 표현이 다른 팀 팬들의 반감을 사거나 논란을 일으키며 비판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특히 당사자인 롯데그룹 측은 언론 등을 통해 정용진 부회장의 도발과 언행이 지나치게 무례하다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롯데그룹 측은 신동빈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이 애초부터 나이와 세대, 그룹규모 등에 있어 라이벌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 전반기 승자는 정용진… 롯데 자이언츠는 ‘뒤숭숭’

그렇다면 야구판에서 마주친 첫 시즌 전반기 신동빈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 그리고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의 희비는 어떻게 엇갈렸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용진 부회장과 신세계그룹의 ‘압승’이다. 

SSG 랜더스는 사실 올 시즌 좋은 성적이 기대됐던 팀은 아니었다. 전신인 SK 와이번스는 2018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고 2019년에도 페넌트레이스에서 2위를 기록하는 등 준수한 행보를 이어갔으나 지난해 9위로 추락한 바 있다. 최주환을 FA로 영입하고 추신수까지 가세하긴 했으나, 투수진의 무게감이 다소 떨어졌고 김원형 감독은 올해가 감독 데뷔 시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SG 랜더스는 초반부터 줄곧 상위권을 지켰으며, 한때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전반기를 마친 시점에도 0.538의 승률로 선두에 4.5경기 뒤진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중상위권의 순위 다툼이 워낙 치열한 시즌이라 아직 장담할 순 없으나 가을야구 진출 가능성이 꽤 높은 편이다.

마케팅적인 측면에서도 성공적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SSG 랜더스 선수단의 ‘스타벅스 세리머니’다. 홈런을 치고 난 뒤 덕아웃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연출한 것인데, 이는 큰 화제를 모으며 마케팅적으로 큰 효과를 거뒀다. 특히 SSG 랜더스와 정용진 부회장의 일련의 행보가 신세계그룹에 젊고 활기찬 이미지를 불어넣어줬다는 평가에 힘이 실린다.

롯데 자이언츠는 올 시즌 초반 감독을 경질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전반기를 8위로 마쳤다. /뉴시스
롯데 자이언츠는 올 시즌 초반 감독을 경질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전반기를 8위로 마쳤다. /뉴시스

반면 롯데 자이언츠는 올해도 부진한 성적과 어수선한 분위기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우선, 승률 0.421를 기록하며 9위 기아 타이거즈와 경기차 없는 8위로 전반기를 마쳤다. 선두와의 격차는 무려 13.5경기, 중위권인 7위와의 차이도 5경기로 벌어진 상태다. 아직 절반의 일정이 남아있고 충분히 치고 올라갈 가능성도 있으나 현재로선 가을야구와 다소 거리가 있다.

부진한 성적보다 씁쓸한 것은 내부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이다. 롯데 자이언츠는 올 시즌 개막 후 딱 30경기를 치른 시점에 허문회 전 감독을 경질했다. 당시 롯데 자이언츠는 최하위로 쳐져있긴 했으나 아직 시즌 초반인데다 12승 18패로 아주 나쁜 성적이 아니었다. 3위와의 경기차가 고작 3경기에 불과했을 정도다.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감독 경질은 지난해부터 불거졌던 불화설의 결과라는 분석이다. 2019년 9월 선임된 메이저리그 출신 성민규 단장과 같은 해 10월 선임된 허문회 전 감독의 불협화음은 이미 공공연히 드러난 일이었다. 

각자의 역할을 다하며 하나로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파국으로 이어진 불협화음은 롯데 자이언츠 팬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을 뿐 아니라 롯데그룹의 이미지에도 또 다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공교롭게도 두 그룹은 최근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으로 맞붙는 등 본업에서도 각축전을 벌인 바 있다. 이 또한 승자는 신세계그룹이었다.

원하건 원치 않건, 좋건 싫건 간에 앞으로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 신동빈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은 야구판에서 마주치는 일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남아있는 절반의 시즌엔 두 팀과 두 그룹, 두 회장이 또 어떤 스토리를 써내려가며 울고 웃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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