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결의안을 표결하기 위해 열린 UN총회에서 니키 헤일리 UN주재 미국대사는 "결의안에 찬성한 국가들의 이름을 기억하겠다"며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고 선언한 지 17일이 지났다. 이슬람 국가들은 물론 대다수의 유럽 국가들도 반대하고 나섰지만 미국은 묵묵부답이다. UN 안보리가 18일(현지시각) 표결한 반대 결의안은 상임이사국인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통과가 무산됐다. 지난 15일(현지시각)에는 팔레스타인 시위대 네 명이 이스라엘 군의 총격에 목숨을 잃었다.

◇ 유럽·아시아는 대부분 반대… 북중미는 ‘눈치보기’

UN총회는 21일(현지시각) 이스라엘의 수도로 만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반대하는 ‘예루살렘 결의안’을 128개국의 동의로 통과시켰다. 비록 물리적인 억제력은 없지만, 국제사회가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다”는 문장에 반대한다는 것은 공식적으로 확인한 셈이다. 이들 128개국에는 이슬람 국가들 뿐 아니라 G2로 불리는 중국, 그리고 영국·프랑스·한국 등 미국의 우방국도 포함돼있다. 다만 35개의 기권 표와 21개의 불참국은 당초 예상보다 많았다.

UN결의안에 반대한 9개국 중 미국과 이스라엘을 제외한 나머지 7개국은 대부분 중남미·남태평양 국가들이었다. 과테말라와 온두라스를 비롯해 마셜 제도·미크로네시아 등의 약소국들이 포함된다. 미국과 지리적 거리·인적 교류 측면에서 매우 가까울 뿐 아니라 무역구조의 상당부분을 미국에게 의존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캐나다와 멕시코는 기권을 택한 35개 회원국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두 국가의 대 미국 교역규모는 지난 2016년 기준 각각 5,449억달러와 5,251억달러에 달하며, 지금은 북대서양자유무역협정(NAFTA)을 두고 미국과 팽팽한 신경전을 펼치는 중이기도 하다. ‘긁어 부스럼 만들기’를 꺼릴만한 이유다.

◇ ‘세계 속의 미국’과 ‘그들만의 미국’ 사이

BBC는 트럼프 대통령이 수요일(현지시각) 각료회의에서 UN총회의 투표를 두고 “그들이 반대하게 내버려 둬라. 우리는 (수십억 달러를)아낄 수 있을 것이다”고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니키 헤일리 UN주재 미국대사 역시 UN총회에서 “우리는 이 문제에서 미국에 반대한 모든 국가들을 기록해둘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UN은 트럼프 대통령과 헤일리 대사의 공갈에도 불구하고 결의안을 채택했으며, 128개 찬성국가 중 상당수는 미국의 우방국가다. 크게 부각된 사실은 아니지만 한국도 여기에 포함된다. 미국은 정말 이들을 상대로 실력행사에 나설까.

BBC는 미국이 결의안 찬성국가에 대한 경제지원수준을 낮추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할지는 “UN 결의안이 반 미국세력을 결집시키는 실질적 촉매제가 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봤다. 많은 중동국가들이 미국을 규탄하고 나선 반면, 아직까지 범 이슬람 연대가 형성될 기류는 관측되지 않고 있다. 이는 현재 분열상태인 중동 정세와 무관하지 않다. 시아파인 이란과 수니파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 지역의 패권을 두고 대립하고 있으며, 여기에 친미·반미 프레임과 카타르·레바논 등 주변국가의 정치적 불안정성도 겹쳐진 상태다. 때문에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이 단체 반미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만약 현실화된다면 미국으로서도 좌시할 수 없는 사태다.

한편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협박을 하든, 미국이 실제로 우방국에 대한 지원을 끊을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미국이 세계 우방국·빈곤국에 천문학적 액수의 경제지원을 계속해온 것은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는 뜻이다. 미국 중심의 외교·안보체계를 공고히 함과 동시에 자국경제를 선로에서 이탈시킬 수 있는 지역적 문제점들을 해소하는 역할. CNN의 국가안보분석가 존 커비는 “트럼프 대통령은, 최소한 대통령보단 더 섬세한 그의 측근들은 미국의 국제원조가 우리의 이익을 뒷받침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고 자신의 의견을 정리했다.

‘과격발언’이 애당초 UN이 아니라 자국민을 겨냥한 정치적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가디언이 인터뷰한 서구권의 고위외교관은 헤일리 대사의 강경책을 ‘얄팍한 전략’이라고 칭하면서도 “2020년의 헤일리, 또는 2024년의 헤일리에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2020년과 2024년은 모두 미국 대통령선거가 열리는 해다. 니키 헤일리 대사의 압박전술은 서방세계의 불가능한 동의를 얻어내기 위함이라기보다는 미국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높이려는 속셈이라는 뜻이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이 지난 대선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지는 불확실하다. 몬머스 대학이 13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예루살렘 수도이전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는 23%에 불과했다. 51%는 대통령의 이번 결정이 중동지역에 막대한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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