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용산리에 위치한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과 두 자녀의 땅. <시사위크>

[시사위크|평창=권정두 기자]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오랜 준비를 마치고 마침내 개회식을 앞두고 있다. 하계올림픽,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와 더불어 4대 스포츠축제로 불리는 동계올림픽인 만큼, 기대 못지않게 우려와 논란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재벌 및 공인들의 땅투기 논란이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강호동은 이 논란으로 연예계 활동을 중단해야 했고, MB정부에선 장관 내정자가 낙마하는 일도 있었다.

그렇다면 재벌들의 평창 땅은 어떻게 됐을까. 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둔 시점에 <시사위크>는 평창 땅투기 논란에 휩싸였던 재벌, 그중에서도 10대 재벌 오너일가에 속하는 이들의 땅을 다시 짚어봤다. 그 첫 번째로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다.

신영자 이사장과 자녀들이 보유한 땅에서 보이는 스키점프대. <시사위크>

◇ 감옥에서 맞는 동계올림픽, 방치된 알짜배기 땅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이사장은 70대 중반의 많은 나이에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입점비리 사건으로 구속 및 실형을 선고받은 가운데, 롯데 오너일가 경영비리 사건에서도 실형을 면치 못했다. 건강 등을 이유로 꾸준히 신청했던 보석도 뜻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신영자 이사장은 2012년 평창 땅투기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이름을 올려 빈축을 산 바 있다. 신영자 이사장과 장남 장재영 씨, 차녀 장선윤 호텔롯데 전무 등은 2005년부터 2006년까지 평창군 대관령면 용산리 일대에 임야와 전답 6필지, 총 1만4,808㎡를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장선윤 전무가 길에 접한 전답을 가장 먼저 사들였다. 이듬해 9월엔 장선윤 전무와 오빠 장재영 씨가 공동으로 전답 뒤편의 임야를 사들였고, 한 달 뒤 신영자 이사장이 이 임야와 접한 임야를 추가로 매입했다.

2006년은 평창이 동계올림픽 개최에 두 번째로 도전하고 있을 때였다. 알펜시아리조트가 착공에 들어가는 등 개발도 본격 시작된 시기다. 다만, 당시 목표로 삼았던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는 실패했고 2011년 삼수 끝에 2018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결과적으로 동계올림픽 유치가 성공된 덕분에 신영자 이사장과 자녀들이 보유한 평창 땅은 값이 크게 올랐다. 신영자 이사장 명의의 땅은 2006년 공시지가가 3,590원에서 지난해 3만7,100원으로 10배 이상 뛰었다. 자녀들이 보유한 땅도 2006년 3,070원이었던 공시지가가 지난해 23배인 7만2,200원이 됐다.

무엇보다 위치가 좋다. 영동고속도로 대관령IC에서 알펜시아리조트와 용평리조트로 향하는 주요 도로 인근이다. 바로 앞엔 알펜시아리조트 골프장이 있고, 고개를 들면 스키점프대가 보인다. 동계올림픽을 위해 마련된 국제방송센터(IBC)도 근처에 있다.

신영자 이사장과 자녀들이 보유한 평창 땅의 위치. 검정색 점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신영자 이사장 소유, 초록색 점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장재영 씨와 장선윤 전무 공동소유, 빨간색 점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장선윤 전무 소유다. <시사위크>

◇ 이러지도 저러지도… ‘처치 곤란’

하지만 이 땅이 실제 빛을 보긴 어려울 전망이다.

우선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개발에 나서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다. 신영자 이사장과 자녀들이 보유한 땅 바로 옆과 앞엔 마을회관과 교회가 들어섰다. 또 뒤쪽으로는 400세대가 넘는 규모의 아파트도 지어졌다. 신영자 이사장과 자녀들의 땅이 내려다보일 수 있는 위치다.

매각도 쉽지 않다. 2011년 토지거래제한구역으로 묶였던 것이 2014년 해제됐지만, 대관령 지역 부동산 시장은 이 지역 날씨만큼이나 꽁꽁 얼어있다. 평창군 대관령면 지역의 부동산업자들은 “최근 거래가 전혀 없다”고 입을 모았다. 땅값이 오른 것은 공시지가 상일뿐,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한 부동산관계자는 “지금 가지고 있는 땅은 모두 처치곤란한 상태일 것”이라며 “규제가 많아 개발이 어렵고, 개발을 해도 이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누가 사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행여 매입자가 나타나더라도 문제다. 매각이 이뤄지면 차익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투기 논란이 또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각종 비리 혐의가 드러나 징역을 살고 있는 신영자 이사장은 물론, ‘뉴 롯데’를 천명한 신동빈 회장과 롯데그룹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신영자 이사장 소유의 임야. 주변의 큰 나무와 달리 작은 묘목들이 심어져있다. 개발을 시도했던 흔적이다. <시사위크>
농지법 위반을 피하기 위해 심은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나무 묘목들. <시사위크>

지난 5일 방문한 신영자 이사장과 자녀들의 땅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방치된 상태였다. 큰 나무가 우거진 주변 임야와 달리 어린 나무들이 심어져 있어 한 눈에 확 띄었다. 개발을 시도했다가 중단한 뒤 나무를 심은 흔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신영자 이사장과 자녀들의 땅만 마치 계곡처럼 깎여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나무를 심은 이유는 농지법 위반을 회피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임야 중턱에 올라서자 스키점프대와 골프장, 리조트 등이 한 눈에 들어왔지만, 이 곳에 심어진 나무들은 관리가 되고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 곳곳에 죽거나 쓰러진 나무들도 보였다. 지목이 밭인 필지에서도 겨울이긴 하지만 농사의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신영자 이사장이 자녀들과 함께 평창 땅을 매입했을 당시, 그녀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성경영인 중 하나였다. 특히 신격호 총괄회장의 총애를 받아 롯데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상당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감옥에서 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주변이 온통 동계올림픽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는 가운데 방치돼있는 땅은 신영자 이사장의 씁쓸한 현실을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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