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로 흥행불패에 도전하는 배우 김태리. <제이와이드 컴퍼니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자신을 꾸미거나 포장하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있는 배우다. 어느 곳에서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도 중심을 끝까지 지키는 영리함이 좋다. 항상 밝고 좋은 에너지를 준다.” -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

외유내강(外柔內剛). 겉으로 보기에는 부드러우나 속은 꿋꿋하고 강하다는 것을 이르는 한자성어다. 작은 체구에 청순한 외모, 겉으로 보기에는 한없이 여려 보이지만 그 안에는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이 있다.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다가도 연기에 대한 본인의 철학을 이야기할 때는 누구보다 깊고 진중하다. ‘외유내강’이라는 말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여배우가 또 있을까. 임순례 감독의 신작 ‘리틀 포레스트’로 흥행불패에 도전하는 배우 김태리의 이야기다.

2016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로 단숨에 ‘충무로 신데렐라’에 등극한 김태리는 지난해 개봉한 영화 ‘1987’(감독 장준환)에서 진정성 있는 연기력으로 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연타석 홈런이다. 단 두 작품 만에 ‘믿고 보는 배우’ 반열에 올라선 김태리. 그녀의 다음 행선지는 오는 28일 개봉하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감독 임순례)다.

‘리틀 포레스트’ 메인 포스터 (왼쪽부터) 진기주·김태리·류준열 <영화사 ‘하늘’ 제공>

‘리틀 포레스트’(감독 임순례)는 시험, 연애, 취직 등 매일 반복되는 일상생활에 지친 주인공 혜원(김태리 분)이 고향집에 돌아와 사계절을 보내면서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혜원은 그곳에서 오랜 친구인 재하(류준열 분), 은숙(진기주 분)과 정서적으로 교류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간다. 극중 김태리는 일상을 뒤로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혜원 역을 맡았다.

‘리틀 포레스트’는 따듯한 위로를 주는 그야말로 ‘힐링’ 영화다. 연출을 맡은 임순례 감독도 “관객에게 휴식 같은 영화를 선물하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시나리오를 처음 본 순간 고민할 것도 없이 출연을 결정했다는 김태리. 그녀에게도 ‘힐링’과 ‘위로’가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김태리는 “그런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당시에 (휴식과 위로가 필요하다는) 그런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너무 오랜만에 보는 스타일의 영화였어요. 한국 영화에서는 없었던 느낌? 담담하고 소탈하고 조용하고, 이런 종류의 시나리오와 이야기를 너무 오랜만에 봐서 많이 끌렸던 것 같아요.”

스크린을 통해 만난 ‘리틀 포레스트’는 김태리의 기대 그 이상이었다.

“시나리오 받았을 때도 좋았는데 영화로 보니 훨씬 좋게 나온 것 같아요. 소리와 음악이 더해져서 영화로 만들어지고 또 배우들의 시너지까지 더해지니 훨씬 잘 사는 것 같아요. 막연히 상상했던 마을의 풍경들을 실제로 마주하니 풍부해지고 깊어진 기분이에요.”

사계절의 풍광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영화사 ‘하늘’ 제공>

김태리의 말처럼 ‘리틀 포레스트’에는 한국 사계절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어떤 미술 작품보다 아름다운 사계절의 풍광은 감탄을 자아내고 고요한 새벽을 깨우는 빗소리와 청아하고 맑은 새소리, 뽀드득 눈 밟는 소리 등 자연이 만들어내는 멜로디는 마치 내가 그곳에 가있는 듯한 상쾌함을 선물한다.

‘리틀 포레스트’는 봄, 여름, 가을, 겨울에 걸친 4번의 크랭크인과 크랭크업을 통해 실제 풍경을 있는 그대로 촬영했다. 1년에 달하는 긴 시간 동안 촬영을 소화해내야 하는 것이 배우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왔을 터. 그러나 김태리는 “사계절 다 찍으면 되는 거죠?”라는 한 마디로 ‘리틀 포레스트’ 팀의 긴 여정에 큰 원동력이 됐었다고. 특히 김태리에게는 겨울 촬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리틀 포레스트’ 김태리 겨울 포스터 <영화사 ‘하늘’ 제공>

“스태프들은 겨울이 되게 힘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겨울이 주는 느낌이 정말 좋았어요. ‘우리 영화 작업이 정말 색다르구나’라고 느꼈을 때가 눈이 왔을 때 촬영을 내려가야 한다고 해서 계속 대기를 했어요. 눈이 올 때까지. 눈이 안 오면 못 찍으니까 언제 오지 하면서 초조하게 기다렸는데. 눈이 와서 딱 짐을 싸고 내려갔거든요. 눈을 신줏단지 모시듯이 아무도 밟지 못하게 했어요. 집 마당을 통해서 들어가지 못하고 밭을 거슬러서 뒤 담장을 넘어서 집으로 출입하고 그랬었어요. 재밌는 추억이에요.”

반면 여름의 찌는 듯한 무더위는 김태리의 ‘귀농 로망’을 꺾고 ‘열 일’ 의지를 불태우게 만들었다.

“시골에서 생활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데 계절마다 장단점이 있더라고요. 여름에는 정말 더웠어요. 에어컨도 없고 정말 너무 괴롭다 싶을 정도로 더워서 귀농의 꿈을 접었어요. 도시에 재밌는 것들이 너무 많잖아요. 도시의 쓸쓸함 그런 감성들도 좋아해요.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도시에 집을 갖고 시골에 별장을 두고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을 하면 행복하지 않을까요.”

‘리틀 포레스트’ 김태리 스틸컷 <영화사 ‘하늘’ 제공>

“나만 돌아왔다.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 - ‘리틀 포레스트’ 속 혜원의 대사

김태리가 연기한 혜원은 시험, 연애, 취업 무엇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도시에서의 일상에 지쳐 모든 것을 뒤로하고 고향으로 내려오는 인물. 혜원은 오랜 시간 준비했던 임용고시에서 떨어지고 홀로 합격한 남자친구를 축하해줄 마음의 여유가 없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취업 준비로 삼각 김밥과 도시락으로 간신히 끼니를 해결하며 고단한 삶을 살던 혜원은  “고향에 왜 돌아왔냐”는 친구 은숙의 질문에 “배가 고파서”라고 답한다. 농담처럼 내뱉은 말이지만 혜원의 심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다.

‘리틀 포레스트’로 흥행불패에 도전하는 배우 김태리. <제이와이드 컴퍼니 제공>

“처음에는 그냥 장난스럽게 혜원이도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가볍게 말한 거였는데 내뱉고 나니 진심이 된 것 같아요. 진짜로 그랬던 느낌. 혜원이가 처음 시골에 내려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밥 차려서 한 끼 해치우는 건데 그게 혜원에게 가장 고팠던 일이었던 것 같아요. 도시 생활에 지쳐있는 혜원에게 가장 큰 욕구이지 않았을까요.”

혜원은 독립적이면서도 자기중심이 뚜렷한 인물이다. 수능이 끝난 후 편지 한 장만을 남겨두고 떠나버린 엄마(문소리 분).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지만 혜원은 언젠가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낸다. 임순례 감독은 김태리에게서 이러한 혜원의 모습을 발견해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김태리도 혜원이 자신과 많이 닮아있다고 말한다.

“혜원을 만나서 변하거나 달라진 점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아서 생각을 해봤어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혜원을 만나서 변화했다? 이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왜냐하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혜원을 알아가는 부분과 연기하면서 끌어낸 부분들이 저와 너무 닮아있어요. 사계절 동안 촬영하면서 알게 모르게 제 본연의 모습이 많이 투영됐을 것 같아요. 그래서 가장 많이 닮아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김태리는 1,500대 1이라는 사상 초유의 경쟁률을 뚫고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에 캐스팅됐다. 결과도 성공적이었다. ‘아가씨’ 숙희 역을 맡아 신인답지 않은 안정적인 연기력과 동성애라는 파격적인 소재에 도전한 김태리는 단숨에 ‘충무로의 신데렐라’에 등극한다.

‘리틀 포레스트’로 흥행불패에 도전하는 배우 김태리. <제이와이드 컴퍼니 제공>

두 번째 작품도 시대극. ‘리틀 포레스트’ 보다 늦게 크랭크인 했지만 더 빨리 관객들을 만난 영화 ‘1987’에서 김태리는 평범한 87학번 신입생인 연희 역을 맡아 권력의 부당함에도 용기가 없어 나서지 못했던 평범한 시민을 대변했다. 하정우, 김윤석, 강동원, 유해진 등 쟁쟁한 선배 배우들 사이에서도 강단 있는 모습으로 다시 한 번 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찍는 작품마다 흥행은 물론이고 완벽한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주며 호평을 받고 있는 김태리다. 함께 작업한 감독과 동료 배우들은 모두 그녀를 향해 극찬을 쏟아낸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연기를 할 때마다 힘들고 도망가고만 싶다.

“스스로한테 칭찬을 잘 안 하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미숙한 점이 눈에 띄고 못하는 점들만 생각나요. 그런 마음으로 연기하는 게 개선할 지점을 더 많이 알게 해준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하면서는 솔직히 너무 힘들어요. 작품을 할 때마다 이렇게 괴로우면 앞으로는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이 들기도 하고요. 장단점이 있는 성격인 것 같아요.”

다행스럽게도 김태리는 도망가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때’를 기다리며 숨 고르기에 나선다.

‘리틀 포레스트’로 흥행불패에 도전하는 배우 김태리. <제이와이드 컴퍼니 제공>

“살면서 ‘때’라는 것이 있는데 알맞은 때를 우리가 잘 모르고 계속 몰아붙이기만 하잖아요. 한 번쯤은 쉬어줘야 할 때가 있고 돌아볼 때가 있는 거고 또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그런 때를 살짝 놓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꽤 잘 맞게 살고 있는 것 같아요. 힘에 부치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너무 거기에 빠지지 않고 조금은 나와서 거리두기를 하고 생각도 해보면서 살고 있어요. 바람을 쐬거나 산을 찾기도 해요.”

1990년생인 김태리는 올해 우리 나이로 29세다. 20대 마지막 해를 맞이한 김태리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김은숙 작가의 신작 tvN ‘미스터 션샤인’을 통해 데뷔 후 첫 브라운관에 진출하는 것. ‘리틀 포레스트’와 ‘미스터 션샤인’이 김태리의 가장 큰 관심사다.

“우선은 ‘리틀 포레스트’가 잘 흥행하고 성공했으면 좋겠어요. 성공이라는 말 ‘리틀 포레스트’랑 정말 안 어울리네요. 성공했으면 좋겠고, 돈 많이 벌었으면 좋겠어요. ‘리틀 포레스트’가 잘 됐으면 좋겠고 ‘미스터 션샤인’ 촬영 열심히 해서 드라마에서 좋은 모습 보여드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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