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업계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신약개발 사업에 본격 착수했다. <flickr>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신약개발은 최소 5,000개~1만개의 후보물질 중 ‘신약 후보물질’을 탐색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중 250여개 물질이 세포ㆍ동물을 이용한 비임상시험 단계에 진입하고, 또다시 10개 미만의 물질을 선별해 사람을 대상으로 3단계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 여기서 최종 1개의 신약 후보물질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게 된다.

이 과정은 통상 10~15년이 걸린다. 개발 비용 또한 3조원에 이르는데, 전체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이 가장 많이 소요되는 단계가 ‘초기 연구단계’다. 이를 줄이기 위한 해결책으로 인공지능(AI)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AI의 빅데이터 기능이 초기 연구단계의 비용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또 부작용 우려가 있는 후보물질을 걸러내 궁극적으로 신약개발의 성공률을 높일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제약업계는 지난해부터 AI 도입을 위한 수요 조사 등에 착수했다. 한국은 이와 관련해 후발주자에 속하지만, 글로벌 기업을 따라잡기 충분하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실제 글로벌 제약기업들도 소수의 경우만 AI를 도입한 상태다. 더욱이 제약사 및 관련 협회 등 민관뿐만 아니라 정부에서도 제약산업의 인공지능 도입을 장려하고 있어 향후 관련 분야의 급속한 성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제약사들과 ‘AI 신약개발 센터’ 추진

한국제약바이오협회(이하 협회)가 AI를 활용한 신약개발지원센터를 연내 설립한다. 협회는 지난 5일 인공지능신약개발지원센터추진단(이하 추진단) 개소식을 열고 공식 출범을 알렸다. 협회는 전국 각지에 흩어진 신약개발센터를 대표하는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인공지능 신약개발 지원센터 추진단 조직도.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추진단은 협회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AI 개발업체, 국내 제약사들, 전문(자문)위원이 함께 협력할 계획이다. 우선 올해는 센터설립을 위한 전략을 수립하고, 축적된 AI플랫폼 등을 축적하는데 집중할 계획이다. 이로써 그간 자체적으로 빅데이터를 구축해온 관련 기관들의 연구결과를 모아 좀 더 빨리, 좀 더 큰 시너지를 내겠다는 게 협회의 구상이다.

추진단에 참여하는 제약사는 ▲보령제약 ▲JW중외제약 ▲㈜녹십자 ▲대웅제약 ▲일동제약㈜ ▲안국약품㈜ ▲삼진제약 ▲크리스탈지노믹스 ▲종근당 ▲CJ헬스케어 ▲한미약품 ▲신풍제약㈜ ▲LG화학 ▲유한양행 ▲일양약품 ▲한독 ▲동아ST 등 총 17개사다. 협회에 따르면 이들 제약사는 지난해 시행한 ‘AI 활용 신약개발 의사 수요조사’에서 참여 의사가 있다고 밝힌 곳이다.

추진단의 향후 로드맵과 관련해 이동호(서울아산병원 교수) 추진단장은 “국내 제약사의 인공지능 신약개발 경험을 축적하고, 국내 신약개발 플랫폼 개발회사들과 협력해 최종적으로 한국 실정에 맞는 플랫폼을 개발할 것”이라며 “최종적으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나라 인공지능 신약개발 플랫폼을 선보이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추진단장은 한국 실정에 맞는 최상의 AI 신약개발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서는 각 부처간 각 기관간의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추진단은 올해 연말까지 전략 수립을 세운 뒤 내년도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아 범부처 형식의 센터를 설립할 계획이다.

최근 정부에서도 AI를 활용한 신약개발 사업을 주도하면서 향후 관련 분야의 성장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 AI 신약개발, 우려 없진 않지만... 정부도 적극 지원

그간 국내 제약사들이 AI 신약개발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직 AI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눈치만 보고 있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또한 AI 도입에 따른 연구 인력의 감축도 고민스러운 지점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협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되자 최근 정부에서도 AI를 활용한 신약개발 사업을 주도하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한국형 인공지능 신약개발 사업을 내년까지 추진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지난달 28일까지 제약기업 및 대학, 병원 등을 대상으로 수요조사도 실시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이에 대해 “전문가 수요를 반영해 기술개발 및 신규사업의 중점 과제와 지원 방안을 수립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진흥원은 지난 2월 23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업무협약을 맺고, AI 신약개발을 위한 민관 협업을 예고한 바 있다. 민간 협회와 정부가 인공지능 사업에 박차를 가하면서 향후 제약·바이오업계에 ‘AI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AI를 통한 신약개발이 활성화 될 경우 신약 후보물질 개발에만 5년이 걸리는 시간을 5개월로 단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개발 시간과 비용이 대폭 감소하는 것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