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정부청사에서 한미FTA 개정협상 내용을 발표하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뉴시스>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한미FTA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25일 미국에서 돌아온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 양국이 FTA 협상에서 “‘원칙적 합의’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스티브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매우 생산적인 이해’에 도달했다며 합의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26일에는 산업부가 합의 내역을 공식 발표했다. 한국이 ‘레드라인’으로 설정한 핵심 분야를 사수한 채 자동차 수입과 철강 수출에서 조금씩 양보한 모습이다. 아직 세부 사항들을 조율하는 실무협상이 남아있지만, 지난 1월부터 숨 가쁘게 달려온 한미FTA 재개정 협상이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에 다다랐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 대량실점 예상됐던 자동차산업, 그래도 ‘선방’

자동차 산업은 이번 협상에서 미국 측이 가장 많은 요구사항을 제시한 분야였다. 우선 미국이 한국과의 무역에서 내는 적자의 약 70%가 자동차 산업에서 발생한다는 경제적 이유가 있다. 2016년 기준 한국은 미국에 164억달러어치 완성차를 판매했으며, 이는 미국의 전체 자동차 수입액의 9.5%에 달한다. 반면 미국이 한국에 판매한 자동차는 15억9,000만달러어치로 전체 자동차 수출액의 3.0%에 불과하다. 자동차부품 분야에서도 한국의 대 미국 수출규모는 46억9,000만달러(미국 총 자동차부품 수입액의 7.2%), 미국의 대 한국 수출규모는 4,900만달러(미국 총 자동차부품 수출액의 1.1%)로 큰 차이가 난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지지층인 ‘러스트 벨트’가 곧 미국 자동차산업의 메카이기도 하다는 정치적 이유도 있다. 포드와 GM, 크라이슬러 등 미국의 유명 자동차 브랜드의 생산 공장은 대부분 미시간(디트로이트)과 오하이오·켄터키·인디애나에 밀집돼있다. 이들은 지난 2016년 대선에서 모두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으며, 그가 38%의 지지율을 기록하던 지난 1월에도 평균적으로 40~49%의 지지를 보냈다(갤럽 조사).

협상 결과는 한국이 미국 측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한 모양새다. 우선 현재 2021년으로 설정된 미국 화물자동차의 관세철폐 기간이 2041년까지로 20년 더 연장됐다. 제작사별로 연 2만5,000대에 한해 미국 안전기준 심사를 통과했을 경우 한국의 심사를 면제하는 현행 제도도 5만대로 확대된다. 연비·온실가스 관련 기준은 현행 규정을 유지하지만, 오는 2021년에 새 기준을 설정할 때는 미국 측의 의견이 부분적으로 반영될 예정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26일 이번 FTA협상 결과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전반적으로 ‘선방했다’며 “정부의 협상 노력에 대해 높게 평가한다”는 내용이다. 애당초 미국이 자동차 분야에서 강경한 자세를 취했던 만큼 약간의 양보는 불가피했다는 판단이 깔려있던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양허관세율과 미국산 부품의 의무사용 등 민감한 분야에서 후퇴하지 않은 것이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협상 결과 한국은 미국의 철강 관세를 면제받게 됐다. 다만 쿼터제 때문에 수출물량은 다소 줄어들 전망이다. <픽사베이>

◇ 철강은 관세 대신 쿼터… 강관류 타격 불가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22일(현지시각) 한국이 아르헨티나·오스트레일리아 등과 함께 철강관세 면제국가에 포함됐다고 발표했다. 대신 수입물량제한제도(쿼터)가 도입됐다. 이에 따라 향후 대 미국 철강 수출물량은 작년 수출물량 362만톤의 74%에 해당하는 268만톤 가량으로 제한될 예정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한 달여간에 걸친 전방위적 외부접촉과 치열한 협상을 통해 국가면제에 대한 합의를 도출했다”고 자평했다. 한국이 중국산 철강 수입 1위, 대 미국 철강 수출 3위 국가로서 관세의 주요 타깃 중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냈다는 뜻이다. 또한 “한국의 대미 철강수출은 전체 철강수출(약 3,170만톤)의 11% 수준이다”며 미국의 수입물량제한으로 인한 국내 수출업계의 피해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의견도 밝혔다.

한국철강협회도 26일 협상 결과에 대한 업계 입장을 발표했다. 우선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 조치에서 한국이 제외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며 “한국의 국가면제를 위해 정부가 기울여 온 전방위적 노력에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다만 더 많은 쿼터를 확보하지 못한 것에 대해선 아쉬움을 드러내며 “대미 수출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우려되는 강관 업종에 정책적 지원을 요청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작년 203만톤의 제품을 미국에 수출했던 강관류는 쿼터가 그 절반 수준인 104만톤으로 설정돼 수출에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 “레드라인 지켰다” vs “협상 폐지해야”… 농업시장 개방의 딜레마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 재개정 협상에서 농축수산물 시장을 추가 개방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성공적으로 방어해냈다고 밝혔다. 자동차 수입 분야에서 한국이 양보한 만큼 핵심 분야로 지목됐던 농축산물 시장은 한국의 입장을 관철해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농축업계의 입장은 다르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미국의 FTA재개정 요구에 산업부가 공청회를 열던 작년 11월 당시 “FTA로 인해 농축산업이 붕괴되고 있다”며 개정협상절차를 모두 중단하고 폐기 절차로 들어갈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지난 5일 국회에서 열린 ‘한미FTA 5년 평가보고서 토론회’에서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의 장경호 소장은 한미FTA가 농업 분야의 무역적자는 물론, 농업 구조조정과 도시·농촌의 소득 양극화를 가속화시키는 결과까지 야기했다고 강변했다.

즉 한미FTA 자체가 잘못된 협상이기 때문에 ‘추가개방요구 거절’이 아니라 ‘수입규제 설정’ 내지는 ‘협상 폐지’ 노선을 택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물론 어느 쪽도 현실화되기 어려운 시나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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