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무역대표부가 한국이 농산물 시장을 더 개방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사과와 배, 블루베리, 체리 등이 주요 대상이다. 사진은 수입과일을 판매하는 가판대. <픽사베이>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한미FTA 재개정 협상이 일단락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당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협상 결과를 발표하며 “우리가 설정한 레드라인을 지켰다”고 설명했다. 이 ‘레드라인’의 가장 대표적인 항목이 농산물 시장의 추가개방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30일(현지시각) ‘나라별 무역장벽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는 한국도 미국의 일곱 번째 교역국가이자 지난해 229억달러의 무역흑자를 챙긴 나라로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열세페이지에 달하는 ‘나라별 무역장벽 보고서’의 한국 항목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다름 아닌 농업 분야였다. 첫 FTA 협상에서 한국이 가장 많은 영역을 개방한 분야이자 두 번째 개정협상에선 불가침영역으로 지정한 분야다.

◇ 과일시장 개방·검역절차 완화 필요성 제기

한국의 농산물 시장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추가개방 필요’로 정리된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오리건 주의 특산물인 블루베리와 체리 수출 프로그램, 그리고 한국이 현재 수입을 제한하고 있는 사과와 배가 그 대상으로 제시됐다. 무역대표부는 “미국은 한국과 작년에 두어 차례 해당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며 “한국이 이 상품들의 수입을 허용할 수 있도록 압박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제품수입뿐 아니라 농업 위생 및 화학약품 규제와 관련된 각종 검증절차를 완화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미국 측이 제시한 대표사례는 유전자변형 농산물과 농약이다. 한국은 ‘유전자변형생물체의 국가 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을 통해 인위적으로 유전자를 재조합한 작물의 수입을 제한하고 있다. 반면 미국 무역대표부는 “농업생명공학 분야에 대한 한국의 규제 시스템은 미국의 농산물 수출업계에겐 큰 도전과제다”며 검역절차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필요한 평가절차와 자료요구 때문에 무역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무역대표부는 한국의 유전자변형작물 수입제도가 지나치게 많은 기관의 승인을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한국과 함께 관련 절차들을 개선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수입산 농산물이 사용하는 농약을 규제한 농약잔류허용기준도 문제가 됐다. 한국은 현재 사용 가능한 농약의 목록을 규정하는 ‘허용물질목록 관리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목록은 2021년에 개정될 예정이며, 무역대표부는 향후 이 목록이 ‘원만히 갱신될 수 있도록’ 한국 당국과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 농업시장 개방 이슈, 단발성 화제 아냐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 무역대표부의 이번 발표에 대해 “예년 수준으로 무역장벽 문제를 제기했으며, 그간의 진전 상황 및 애로사항 등을 객관적으로 평가‧기술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한미FTA 개정협상 합의가 긍정적으로 평가됐다는 점을 언급하며 “보고서에서 제기된 사안들에 대해선 국내 이해관계자‧관계부처 간 협의를 통해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는 계획도 전했다. 전반적으로 밋밋한 반응이다.

산업부가 밝힌 것처럼 미국이 한국의 농산물 시장 개방을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결코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합의 당시 “자동차를 내주고 철강과 농업을 지켰다”는 평가가 나왔을 만큼 한국 대표단이 확고한 입장을 표명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FTA 재개정 협상에 양국 대표가 합의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양국 합의와 정반대되는 취지의 보고서가 발표됐다는 사실은 국내 농업계의 불안을 가중시키기에 충분하다.

더구나 최근에는 FTA 재협상 합의에 대한 신뢰도도 상당히 낮아진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각) 오하이오 주에서 대중연설을 하며 “한미FTA 합의를 북한과 협상이 타결된 이후로 미룰 수 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해당 발언이 사전에 참모진들과 합의되지 않은 부분이었다고 보도했다.

국내 농업계는 이미 한미FTA로 인해 한국 농산물시장이 되돌릴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FTA 협상을 정치와 관련된 의제로 활용하고 있으며, 동시에 미국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한국 농산물시장 개방을 요구하리란 것도 확실해 보인다. 이를 요령 있게 거절하는 것은 한국 무역대표단의 장기 과제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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