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0일 광주 서구 광주시청 3층 비지니스룸에서 이동걸 산업은행장과 금호타이어 조삼수 노동조합 대표지회장, 김종호 금호타이어 회장이 중국 더블스타 매각에 관한 내용에 합의 하고 손을 맞잡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벼랑 끝에 서있던 금호타이어가 결국은 중국 기업 더블스타의 품에 안기게 됐다. 법정관리 압박에 맞서며 해외매각 반대 투쟁을 이어오던 노조는 지난달 31일 노사특별합의에 이어 노조 찬반 투표를 끝으로 긴 싸움을 끝냈다. 당장은 공장폐쇄를 막았지만 향후가 문제다. 국내 여러 외투기업들이 기술만 뺏긴 채 빈손으로 쫓겨났던 것들을 목격해왔기 때문이다. 금호타이어도, 최근 한국지엠의 싸움도 이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금호타이어의 매각을 계기로 노사는 물론 정부와 사법부의 ‘기술 먹튀’를 대하는 태도까지 곳곳에서 변화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 금호타이어 노조, 정부에 ‘안전장치’ 마련 강조

지난 2일 공식 입장문을 발표한 금호타이어 노조는 “노사간 위원회를 빠른 시일 내 개최해 국내 공장의 지속적인 운영을 위한 안전장치와 설비투자 등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특히 국내 사업장의 비전과 노동자들의 생존권 사수를 잊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노조의 이 같은 발언은 해외매각과 함께 고용불안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정부는 금호타이어의 경영정상화와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돕겠다고 밝힌 바 있다. 더블스타와 산업은행도 금호타이어의 독립 경영과 국내 공장 투자 등을 노조에 약속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모든 내용이 아직까지는 그저 ‘약속’일 뿐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기술 먹튀 피해 사례인 쌍용차와 하이디스 채권단 역시 비슷한 약속들을 했었다. 다만 그때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라면 정부가 확고한 의지를 드러냈다는 정도다.

과거 외투기업의 기술 먹튀가 발생할 때마다 큰 사회적 비용을 치렀던 것은 정부의 방관이 한 몫을 했다. 정부는 쌍용차 사태에서도, 하이디스 사태에서도 기업간 문제라며 방치하기 일쑤였다. 하이디스는 두 번이나 해외 기업에 매각이 되고, 두 번이나 먹튀를 당했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쌍용차 사태는 오히려 정부가 대규모 경찰력을 투입해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기도 했다. 이 같은 기조 속에서 한국은 오랜 시간 ‘곶감단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다.

해외에서도 그럴까. 구체적으로 프랑스의 경우 구조조정 전 회계장부와 경영실적 등을 노동자에게 공개해야 하고, 이를 분석하는 작업을 사측이 지원해야 한다. 또한 종사자 1,000명 이상의 외투기업이 자국에서 사업을 철수할 때는 사용자에게 인수자를 찾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국가 경제에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을 때 아예 해외 매각이나 투자를 받지 않는다. 또한 불합리한 구조조정이나 사업 철수로 판단될 경우 기존에 부여했던 각종 지원을 회수한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대부분 주요 국가들은 M&A를 체결할 때 노사가 먼저 단체협약을 체결하도록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노동조합이 거의 없고, 있다고 해도 동의를 받기가 쉽다. 때문에 향후 고용불안 문제가 늘 따라붙는다는 지적이다. 근로기준법 또한 사용자에게 구조조정을 하기 전 최선을 노력을 요구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노력조항이기 때문에 노력을 했다는 서류만 만들면 된다. 금호타이어 노조가 노사특별합의 후에도 정부의 안전장치 마련을 재차 강조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대법원이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가 유효하다고 판단하고 파기 환송 결정을 내린 2014년 11월 13일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오른쪽)과 주봉희 당시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울음을 참으며 대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 정부 가만히 있으니 사법부도 눈치만...

기술 먹튀는 사법부에서도 인정을 받기가 어렵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기술 먹튀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보다는 회계조작으로 인한 부당해고 확인 소송을 제기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마저도 대법원은 쌍용차 해고자들의 정리해고가 무효라는 고등법원의 판결을 뒤집고 파기환송하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대법원은 인력규모와 관련한 것은 경영자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쌍용차 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기술 먹튀와 관련해 정부가 개입을 하지 않다보니 사법부 역시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기술 먹튀를 규제하거나 이미 발생한 경우 제재하는 제도도 없다보니 쉽사리 인정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호타이어 매각과 관련해 정부에서도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감독을 강화할 경우 사법부 또한 바뀔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아울러 금호타이어 노조는 해외 기업이 쉽게 매각을 결정하지 못하도록 브랜드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해외 자본이 투입된 기업의 경우 조금만 경쟁력이 떨어져도 쉽게 팔아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노조는 과거 금호타이어가 국내 점유율 1위, 글로벌 업계 9위까지 올랐던 경험을 토대로 경영정상화 가속화시키겠다고 밝혔다.

김종호 금호타이어 회장 역시 지난 2일 ‘경영정상화 노사 특별 합의 조인식’에서 “금호타이어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노사 합의를 이끌어준 임직원과 국민, 정부기관, 광주시, 채권단 등에게 감사드린다”면서 “앞으로 노사가 합의서를 성실히 이행해 안정적인 일터, 경쟁력 있는 회사를 만들어 나가자”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더블스타와 채권단이 금호타이어에 각각 6,460억원, 신규 자금 2,000억원을 투자한 만큼 단기간에 먹튀는 발생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다만 장기적으로 사업 철수 등의 먹튀를 막기 위한 장치 또한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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