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여비서'가 아니다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등 참석 의원들이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임명 철회를 촉구하는 피켓팅을 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3년 전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시절 정무위 피감기관 예산으로 ‘특혜성’ 해외출장을 다녀왔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당시 출장에 동행한 비서의 성별이 ‘여성’이라는 점까지 묶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여비서’를 운운하며 문제 삼는 것은 논란의 핵심이 아닐 뿐더러 공적 영역에서의 여성배제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 원장의 ‘특혜 출장’ 논란의 핵심은 출장 주관기관이 정무위 피감기관인 한국거래소·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우리은행 등이었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19대 국회 때 한국거래소 주관 우즈베키스탄 출장, KIEP 주관 미국·유럽 출장, 우리은행 주관 중국·인도 출장 등을 다녀온 바 있다. 야당은 이를 두고 각각 한국거래소가 추진하던 ‘자본시장법’ 개정을 위한 로비용, 우리은행 중국 화푸빌딩 헐값 매각 관련 의혹과 KIEP 예산 삭감을 막기 위한 입막음용 ‘외유’였다고 주장한다. 김 원장은 당시 정무위 간사였기 때문에 충분히 피감기관 로비의 대상이 됐을 것이라는 게 야당의 주장이다.

한국당은 “해외출장에 여비서를 동행했다”는 점까지 문제 삼고 있다. 한국당 원내대표실에는 ‘女인턴동반 황제외유 온국민이 분노한다’라고 적힌 피켓이 걸렸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6일 김 원장 의혹과 관련해 “피감기관 돈으로 출장을 가고 또 동료의원이 아무도 없는 가운데 열흘간 단독 출장에 이례적으로 여비서를 동행하고 이런 부도덕성과 ‘미투’와 함께 우리 사회는 대변혁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의 해외출장에 동행한 비서가 여성이라는 점과 성폭력 고발 운동인 ‘미투’(MeToo)를 함께 언급해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발언이었다.

김 원내대표는 8일 기자간담회에서 ‘출장에 동행한 보좌진의 성별을 강조한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여비서는 여비서니까 여비서라고 한 것이지 질문이 좀 이상하다”며 도리어 취재진에게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당시 (KIEP에서는) 새누리당 (정무위) 간사에게도 출장을 제안했다는데 당시 새누리당 간사는 갈 이유가 없다고 해서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분에게 확인한 결과 (새누리당 간사가) 안 간다니까 (김 원장이) 여비서를 데리고 갔다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같은 한국당의 ‘여비서 동행’ 비판은 문제의 초점을 흐릴 뿐만 아니라 여성배제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당·바른미래당뿐 아니라 민주평화당·정의당 등 범여권에서도 임명 철회 요구가 나오면서 김 원장의 ‘특혜성 외유’에 대한 정치권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논란의 핵심은 당시 김 원장의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여부다. 해당 비서가 1년 사이 9급에서 7급 비서로 ‘초고속 승진’을 했다는 의혹 역시 비서의 ‘성별’과는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관계자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행 사건이 불거졌을 때도 ‘왜 여자가 수행비서를 하느냐’는 엉뚱한 방향으로 논란이 번졌었는데 문제는 안 전 지사가 성폭행을 했다는 것이지 여자가 수행비서였다는 게 아니지 않느냐”며 “이번 (김 원장) 건 역시 출장에 동행한 비서가 여성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여성이건 남성이건 부당한 일이 있었다면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데 자칫 ‘수행비서는 남성의 몫’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생길까 우려된다”라고 했다.

김 원장은 해당 비서 관련 의혹에 대해 “해당 비서는 인턴 채용 당시 이미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박사 학위 과정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어서 연구기관을 소관하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를 담당하도록 했다. 해당 비서는 단순 행정업무 보조가 아닌 정책업무 보좌를 담당한 것”이라며 “‘초고속 승진’에 대해서도 김 원장은 “국회의원 임기 후반에 결원이 생길 때마다 주로 내부승진을 시켰고 해당 비서만 아니라 다른 인턴도 정식 비서로 승진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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