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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겸의 ‘문예노트’] 사주 관상 보다 무서운 ‘진상’ 그리고 ‘심상’
하도겸 칼럼니스트

인문학 가운데 사주관상을 공부하다면 예외되는 사람을 가끔 본다. 아무리 품위가 있어 보이고 관상이 좋아도 옆에 진상이 붙어 있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아니 그냥 꽝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나마 꼴값하고 살려면 주변 정리를 잘하라는 게 좋은 친구와 이웃들 찾아 삼만리도 마다하지 않았을 ‘맹모삼천지교’의 참 뜻이 아닐까 싶다.

꼴값 못하는 분들을 가끔 만나 보면 대개 ‘때리는 남편’이나 ‘도박하는 부인’ 그리고 ‘마약에 찌든 분’까지, 범죄까지 이어지게 하는 진상이 있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지속해서 지내고 있는 것을 보면 결국 상처로 인한 정이나 욕심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는 것 같다.

사주보다 관상이 더 중요하다고 하는데 이 부분에서는 관상도 사주를 어쩌지 못하는건가? 거꾸로 그건 사주와 관련된 어쩌면 오행이나 천간지지 고유의 영역의 일인듯도 싶다. 잘 모르고 하는 말이지만, 어쩌면 전생의 업보라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여하튼. 이런 측면에서 부처님의 인연법은 참으로 대단하고도 무섭다.

지금이라도 당장 정리하면, 한마디로 헤어지만 바로 다시 좋아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게 결코 쉽지 않은 듯하다. 삶이 원래 그렇게 고통스러운 게 불교의 세계관 그대로이다. 그러고 보면 헤어지겠다는 스스로의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의지의 표현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마음이며 이런 마음가짐이 바로 사주 관상을 넘는 가장 중요한 심상이 아닌가 싶다. 물론 시절인연이라 통과의례처럼 잠시라도 주사를 맞듯 잠시라도 꼭 겪고 지나야 할 것도 있긴 할 것이다.

모든 선택과 결정은 복잡다단하게 연결되어 있는 가운데 벌어진다. 단순히 단선적으로 또는 평면적으로 돌고 도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의도하지 않게 예측할 수 없게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다. 사진은 국립한글박물관 특별전 모습. <하도겸 칼럼니스트>

모든 선택과 결정은 복잡다단하게 연결되어 있는 가운데 벌어진다. 단순히 단선적으로 또는 평면적으로 돌고 도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의도하지 않게 예측할 수 없게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다. 결국 스스로가 그런 변화를 제때제때 잘 받아들이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우선이 아닐까 싶다.

주변에서 심지어 자연에서조차 시그널을 보내고 주변 사람들이 끝없이 잔소리를 해도 본인이 새겨듣지 않으면 아니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매맞는 아내가 친정으로 도망갔다가 다시 귀가해서 남편에게 또 맞는 일과 비슷한 면이 있다.

무엇보다도 현재 스스로가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쳐야 한다. 깨침 거기서 머물지 말고 나아가 능동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아울러 항상 깨어서 그런 변화하라는 목소리에 따라 나아가야 한다. 그런 변화에 적응하고 아니 선도하는 모습을 마치 흐르는 물같이 하면 될 뜻이다. 상선약수가 그런 뜻인가 보다.

물처럼 흐르지만 항상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스스로의 발 밑을 온전히 바라볼 따름이다. 다만 그 관점이 ‘조망’의 수준으로 안목을 넓혀야 하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의 문제인 듯하다.

시사위크  sisaweek@sisa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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