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 아베 신조 일본총리 등 관계 당사국 정상들의 치열한 수싸움이 예상된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 문제 당사국들의 외교적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 중국은 오는 9일 일본에서 3국 정상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며, 이에 앞서 3일 중국은 왕이 외교부장을 북한에 보내 판문점선언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표면적으로는 한반도 평화체제에 모두 지지를 보내고 있으나 속내는 다 다르다.

비핵화와 평화체제가 북미회담을 통해 결정될 경우, 한반도 역내 외교지형 변화는 불가피하다. 기존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의 균형은 무너지고, 누구도 경험해보지 않은 새로운 질서가 자리할 가능성이 크다.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각국의 지도자는 개인의 정치적 미래와 국가의 실익을 모두 걸고 치열한 외교전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트럼프, 북핵 문제 해결로 국내 정치위기 돌파

북미정상회담과 평화협정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가장 적극적이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CVID)에서 ‘영구적인’의 의미를 더한 PVID를 목표로 접근하고 있다. 북한은 풍계리 핵시험장 폐쇄를 약속했고, 지난 2일에는 전선철거 작업에 착수해 화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 소식통에 따르면, 각종 영화나 드라마 등의 소재로 사용될 정도로 미국 시민의 상당수가 핵공격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북한이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에 진척을 보이자 미국의 위기감이 컸던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불과 화염” “군사옵션” 등을 직접 거론하면서 긴장감은 극대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낼 경우 효과는 극대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스캔들’ ‘섹스 스캔들’ 등의 악재로 미국 내에서 정치적으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패할 경우 탄핵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올 정도다. 북한 비핵화를 통해 세계평화 유지와 미국의 안전보장이라는 성과가 위기의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돌파구인 셈이다.

‘노벨평화상’을 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에서 분명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지난달 28일 미시간 주 워싱턴에서 열린 집회에서 지지자들이 “노벨! 노벨!”을 외치자,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벨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야 한다”고 발언하자 “매우 관대하다. 고맙게 생각한다”는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해프닝에 끝날 것 같았던 노벨평화상은 공화당 의원 18명이 노벨위원회에 추천함으로써 공식화됐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이번 사안을 얼마나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미국에 주도권 내줄라’ 시진핑의 우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선언을 공동으로 발표하고 있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북미정상회담을 지켜보는 시진핑 주석의 심정은 다소 착잡하다. 북미수교가 이뤄질 경우, 북한에 절대적으로 행사하던 기존의 영향력 축소는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과정에 불거진 ‘차이나 패싱’ 논란은 무엇보다 뼈아프다. 물론 한미정상회담 직전 북중정상회담 성사로 체면을 살렸지만, 새로운 한반도 질서에서 미국에 주도권을 내줄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히 크다.

중국 입장에서 북한이 차지하는 지정학적 가치는 작지 않다. 세계 초강대국 부상을 내걸고 재집권에 성공한 시진핑 주석은 일대일로 구상을 통해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북한은 중국대륙과 해양을 잇는 징검다리이자, 한미일 등 해양세력의 대륙진출을 막는 방파제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북한에 대한 영향력 축소는 중국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일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중국은 어떤 식으로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정에 개입하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가장 유력한 지점은 ‘평화협정’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대통령은 판문점 선언을 통해 평화협정 당사자로 ‘남북미 혹은 남북미중’을 규정한 바 있다. 지금은 미국이 중심이지만, 중국의 참여 가능성을 열어둔 대목이다. 북한을 방문한 왕이 외교부장은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혈맹관계’임을 강조, 적극적인 개입을 예고하고 있다.

◇ 아베의 뒤늦은 태도변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한반도 정세 급변으로 가장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 우리 입장에서는 역설적으로 미국이 평화협정 체결에 진지하게 나서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난 평창올림픽까지 ‘제재와 압박’에 방점을 뒀던 아베 총리의 입장이 얼마 전 미일정상회담 후 전환됐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직접 확인한 뒤다. 이 때부터 아베 총리의 발언에 ‘제재와 압박’은 빠지고 대신 ‘북일수교’와 ‘납북자 문제’가 나왔다.

이는 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도 확인된다.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지난달 28일 통화에서 아베 총리는 “북한의 움직임은 전향적”이라고 표현하며 “판문점 선언이 구체적 행동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아울러 “일본도 북한과 대화할 기회를 마련할 것이며 필요가 있을 경우 문 대통령에게 협력을 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요청했다. 동아시아 질서 지각변동을 예상하고 뒤늦게 한 자락 걸치기 위해 뛰어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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