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1만3,092명으로 40분마다 1명씩, 하루 평균 36명에 달했습니다. 또한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5.6명으로 OECD 국가의 평균 자살률과 비교하면 2.4배나 높습니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그 가운데 노인 자살률이 53.3명으로 전체 자살률의 2배 이상이고, OECD 국가 노인의 자살률의 3배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노인의 자살 동기는 신체질병 문제로 자살한 것이 많은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필자의 견해로는 아마 경제적인 형편 때문에 병원 치료를 받기가 어렵거나 거의 외톨이로 우울증에 시달리던 분들이 대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초고령화 시대를 맞이해 혼자 외롭게 임종(臨終)을 맞이하지 않고 100세까지 건강한 노년을 보내기 위한 성찰 주제로 ‘순세順世’에 대해 다루고자 합니다.

◇ 순세(順世)

먼저 ‘순세(順世)’란 선어(禪語)는 선종(禪宗) 최후의 공안집이라고 할 수 있는 <무문관(無門關)> 제3칙 ‘구지수지(俱胝竪指)’란 공안에 나오는데, 그 참뜻은 ‘흐르는 세월 속에서 함께 나누며 걸림 없는 삶을 살아가다 떠나기’입니다. 참고로 이 화두의 핵심은 ‘구지 선사께서는 어째서 누가 무엇을 묻더라도 다만 손가락 하나만을 들어 올리셨을까?’입니다. 그리고 그는 제자들에게 “나는 일지두선(一指頭禪)을 한평생 나누며 살다가 다 못 쓰고 가노라!”라는 가르침을 남기고 입적하셨다고 합니다.

이어서 순세에 대한 멋진 일화를 하나 소개드리겠습니다. 두루 어려운 이웃들에게 베풀며 절 살림에도 크게 기여해오고 있던 마을의 한 유지가 성대한 칠순 잔치에 그 절의 선사(禪師)를 초대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가보로 삼겠다며 축하의 덕담(德談)을 붓으로 써주실 것을 정중히 요청하자, 선사께서 즉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할아버지가 죽고, 아들이 죽고, 손자가 죽으시오!” 이를 읽은 유지는 사색(死色)이 다 되어 “아니, 경사스러운 잔칫날 줄줄이 죽으라는 말씀만 하시다니요?” 하며 화난 목소리로 따졌습니다. 그러자 선사께서 껄껄 웃으시며, “이보시오, 어르신! 만일 당신보다 손자가 먼저 죽고, 그런 다음 아들이 죽으면 얼마나 상심이 크겠소. 그러니 이보다 더 좋은 덕담이 어디에 있겠소!” 눈높이에 맞춘 선사의 지혜로운 이 한마디에 마을 유지는 다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칠순 잔치를 흥겹게 마쳤다고 합니다.

◇ 나눔과 장수

나눔 실천적 삶이 장수(長壽)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과학적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미국 미시간대학 사회연구소의 스테파니 브라운 박사는 2002년 무작위로 선정된 423쌍의 노인 부부를 대상으로 5년간에 걸쳐 실시한 조사분석을 통해 얻은 결과를 학술지 <심리과학>에 발표합니다. 꾸준히 인용되고 있는 이 논문에 따르면, 장수비결 가운데 유의미한 중요한 요인의 하나가,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대가없이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자기만 아끼고 남을 돕지 않는 사람이 남에게 베푸는 사람보다 일찍 죽을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참고로 즐거울 때 생성되는 엔돌핀(Endorphin)이라는 호르몬이 암을 치료하고 통증을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최근 새롭게 연구된 결과에 따르면, 주로 깊은 통찰이나 진한 감동을 주는 나눔 체험 등을 했을 때 엔돌핀보다 약 4,000배 효과가 큰 ‘다이돌핀(Didorphin)’이라는 호르몬이 생성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따라서 필자의 견해로는 이런 연구결과가 수행[영성]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삶을 살아가는 분들의 경우 대체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장수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고 봅니다.

◇ 나눔 실천의 본보기

한편 거지였던 최귀동 할아버지는 40여 년 동안 무극천 다리 밑에서 거동이 거의 불가능한 18명의 동료 거지들을 위해 혼자 마을을 바삐 왕래하며 걸식해 베풀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무극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오웅진 신부가 이런 모습에 감동해 주머니에 있던 돈을 몽땅 털어 시멘트 포대를 사서 손수 벽돌을 찍어 1976년 11월 완공한 아담한 새 건물에 이 분들을 입주시키면서 음성꽃동네 영성복지공동체가 출범하게 됩니다. 참고로 거지의 달인이라 할 수 있는 최할아버지(베드로)께서는 사후까지도 앞을 못 보는 27살 청년에 안구 기증 선행을 하시다가,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주님의 은총입니다”라는 심금(心琴)을 울리는 가르침을 남기시고 1990년 1월 선종(善終)하셨습니다.

사실 최 할아버지 같은 극빈자도 그보다 더 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돕는 마당에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얼마나 나눌 수 있는 것이 많은, 복 받은 사람들입니까? 그러니 우리 모두 이런 성찰을 바탕으로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각자 있는 그 자리에서 힘닿는 데까지 함께 나누는 삶을 이어가기를 간절히 염원해 봅니다.

◇ 수행공동체의 원조

이제 건강한 100세를 살기 위한 본보기로서 선수행공동체의 원조(元祖)를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백장회해(百丈懷海) 선사(720-814)는 선농일치(禪農一致), 즉 ‘선수행과 농사짓는 일이 하나다!’라는 가풍을 널리 선양하며 95세까지 장수한 당대(唐代)의 선승(禪僧)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는 바야흐로 당이 가장 성(盛)한 때인 동시에 선(禪)이 가장 왕성했던 시대였습니다. 즉 사회에 대한 선의 역할이 확립됨에 따라 선원의 규율을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자 백장 선사께서 처음으로 선원규칙(禪院規則)을 제정하게 된 것인데, 이는 선원 역사상 획기적인 일입니다. 훗날 ‘백장청규(百丈淸規)’로 불리우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연유 때문입니다.

가장 극적인 일은 그가 70세가 될 무렵 일어납니다. 제자들이 늙은 스승께서 계속 밭일을 하는 것이 안쓰러워 하루는 몰래 그의 농기구들을 감추었습니다. 그러자 그날 이후부터 식당에 오시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제자들이 걱정이 되어 스승 거처를 찾아뵈며 “몇일 동안 식사도 거르시고 어디 편찮으십니까?” 하고 여쭙자, 단지 “하루 일을 하지 않으면 하루 굶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결국 제자들이 다시 농기구를 내드렸다고 합니다. 그후 그는 입적할 때까지 일상 속에서 일[生業]과 수행(修行)이 둘이 아닌 ‘생수불이(生修不二)’의 삶을 이어가며 자급자족이 가능한 수행공동체를 일구었습니다.

참고로 그의 이 선어(禪語)는 오늘날까지도 두루 인용되고 있는데, 저도 학기 초 강의 시간에 한 번은 꼭 대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언급하며 독려하곤 합니다. “대개 ‘작(作)’은 ‘일하다’를 뜻하지만 공부가 본업인 자네들의 경우에는 ‘공부하다’를 뜻하니 오늘 이후 ‘하루를 계획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하루 굶는다!’라는 각오로 학기를 시작하면 학기말에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네.”

◇ 요양원의 원조: 연수당

또한 수행공동체인 선원에는 초고령화 시대를 맞이하며 요즈음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하고 있는 ‘말년에 요양원이 아니라 집에서 보살핌받기’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연수당(延壽堂)이라는 부속시설이 있습니다. 이곳은 건강한 공동체구성원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병난 수행자들이 건강을 회복하거나 또는 평온하게 임종을 맞이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죽음을 앞 둔 이곳에서조차도 ‘향상일로(向上一路)’의 수행은 계속 치열하게 이어집니다. 대표적인 보기를 들면 마조(馬祖) 선사께서 병이 깊어 세상을 떠나려고 할 무렵 그 절의 원주(阮主) 스님이 문병(問病)하러 와서 “스님! 요즈음 병세가 어떠하십니까?”하고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일면불(日面佛, 수명이 1800년인 부처)! 월면불(月面佛, 수명이 하루인 부처)!”하고 대답하며 죽는 순간까지도 제자들을 일깨우고자 하셨는데, 그후 이 문답이 공안, 즉 통찰과 나눔이 둘이 아닌 삶을 이어가게 하는, 투과해야할 관문(關門)이 되어 오늘날까지도 선수행자들로 하여금 목숨 걸고 참구하게 다그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오늘날까지 잘 이어져오고 있는 영적 스승과 언젠가 스승의 뒤를 이을 고참 제자 및 좌충우돌하는 신참 제자로 이루어진 선수행[영성]공동체 정신은 일반인들의 세계에서도 두루 활용할 수 있으리라 사려 됩니다. 그 본보기로 필자는 지난 30여 년 동안 결혼식 주례를 서면서 늘 신랑 신부뿐만이 아니라 하객 모두, 특히 인간 사회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신랑신부가 속한 가족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뼈속 깊이 새기면서 건강한 100세를 이어가기를 간절히 염원하며, 3대로 이루어진 부족 공동체를 위한 아프리카 영적 스승의 다음과 같은 지혜로운 기도문으로 주례사를 마무리하곤 합니다.

“아이들을 보살펴주소서. 그들은 가야할 길이 멉니다./ 노인을 보살펴주소서. 그들은 먼 길을 걸어왔습니다./ 아이도 노인도 아닌 사람들을 보살펴주소서. 그들은 살림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전공분야: 입자이론물리학)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1989년 9월부터 서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 물리학과장, 교무처장, 자연과학부 학장을 역임했다.
한편 1975년 10월 임제종 양기파의 법맥을 이은 선도회 초대 지도법사이셨던 종달 선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스승이 제시한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0년 6월 종달 선사 입적 이후 지금까지 선도회(2009년 사단법인 선도성찰나눔실천회로 새롭게 발족)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한편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께 두 차례 입실 점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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