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이 재판에 넘겨졌다. 사자명예훼손 혐의다. 고 조비오 신부가 목격 증언한 5·18 헬기사격에 대해 부인한 것과 달리 사실로 밝혀졌다. 재판이 시작되면 광주행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소문으로 무성했던 계엄군들의 성폭행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5·18 당시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의 제보가 잇따르고 있는 것. 계엄군의 집단 성폭행으로 정신분열증에 걸려 승려가 된 여고생부터 60여일 고문 뒤 석방 전날 수사관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여대생까지 사연은 참담했다. 가해자를 찾아내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국방부는 진상조사를 예고했다. 계엄군의 최종 책임자로 지목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재판을 앞두고 있다.

◇ 5·18 당시 “헬기사격 없었다” 거짓말로 판명

23년 만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다시 법정에 서게 된 것은 1995년 12·12 군사반란, 5·18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법의 심판을 받은 이후 처음이다. 그간 고소·고발이 계속됐지만 기소까지 가지 못했다.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비하가 아니고,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왜곡을 주장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지난해 4월 출간한 회고록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5월 단체들로부터 출판 및 판매·배포금지 가처분 소송을 당한데 이어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실상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재판이다. 재판의 관건이라 할 수 있는 ‘헬기사격’은 실제 5·18 당시에 벌어졌던 것으로 공식 확인됐다. 전일빌딩의 총탄 흔적이 남아있었다. 현장 조사를 가졌던 국방부 특별조사위는 조사보고서에 “육군은 1980년 5월21일과 27일 이틀에 걸쳐 공격헬기를 이용해 광주시민을 향해 사격을 가했다”고 적었다. 광주일보가 보도한 주한미국대사관 비밀전문에서도 “군중은 해산하지 않으면 헬기공격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고, 실제로 발포됐을 때 엄청난 분노가 일었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었다.

이로써 전두환 전 대통령의 주장은 거짓으로 밝혀졌다. 앞서 그는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5·18 당시 헬기사격은 없었다. 목격 증언한 조비오 신부는 가면을 쓴 사탄이오,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다”고 설명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회고록 관련 민·형사 소송 법률 대리인 김정호 변호사는 피해자 특정이 가능했던 헬기사격 부분을 주목했고, 조비오 신부의 유족들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광주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에 따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검찰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소환을 통보받았으나 불응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지병’과 ‘고령’을 이유로 검찰 조사를 피했다. 광주까지 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헬기사격 부분은 민정기 전 비서관의 탓으로 돌렸다. 회고록 정리를 책임졌던 민정기 전 비서관이 작성한 만큼 자신은 진술할 사항이 없다는 얘기였다. 이후 지난 3월 검찰에 제출한 의견서에는 “회고록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역사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검찰은 추가 소환 대신 불구속 기소로 방향을 선회했다. “더 이상 소환 조사의 실익이 없고, 그동안 수집된 자료를 종합할 때 혐의가 인정된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회고록 출간을 위해 10년여 동안 공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부인 이순자 여사가 “지구상에서 가장 열심히 준비했다”고 자부할 정도다. 하지만 그의 회고록은 사자명예훼손 혐의의 단초를 제공했다. <뉴시스>

◇ 이송신청서 전망 어두워… 재판 변수 된 ‘치매설’

재판은 광주지법 형사8단독에서 맡았다. 재판이 시작되면 전두환 전 대통령도 광주행을 피하기 어렵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의 출석은 의무사항이다. 따라서 광주가 아닌 서울에서 재판을 받게 해달라는 이송신청서를 접수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결과는 알 수 없다. 앞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 대한 출판 및 판매·배포금지 가처분 소송을 당하자 “광주는 5·18에 대한 지역 정서가 매우 강하다. 재판 공정성을 위해 지역적 연고가 적은 법원에서 판단해야 한다”며 이송신청서를 낸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이를 거부했다.

검찰 조사 불응 사유였던 건강은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출을 거의 하지 않지만 서울 연희동 자택으로 찾아오는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 정도다. 다만 치매설이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자택을 방문한 측근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일상생활을 하는 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정신 상태가 온전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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