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던 50대 남성이 자택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그는 최근 주유소 임대차 문제로 극심한 고통을 호소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부산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던 50대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유족 측은 주유소 지주(땅 주인)와 새로 임차계약을 맺으려는 기업과의 사이에서 갈등을 겪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기업 측은 사고의 원인이 빚 문제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등 개인적인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지역 중견기업과 임대차 갈등… 극단적 선택 불렀나

지난 2일 저녁 부산시 남구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던 A씨(58)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의 형 B씨(70)는 오일·가스사업을 하는 BKE그룹이 해당 주유소 지주와 임차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BKE그룹은 향토기업인 최찰 광신석유 회장의 아들 최우진 회장이 운영하는 에너지기업으로, 부산과 경남·제주지역에서 주유소와 LPG충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A씨의 사연을 정리하면 이렇다.

A씨가 해당 주유소를 직접 운영하게 된 것은 약 7년전부터다. 이전에는 S-Oil 직영 주유소였다. 당시에도 A씨는 직영 주유소 사장이었고, 주유소가 S-Oil 직영을 탈퇴한 7년 전부터는 현재 지주와 계약을 맺고 운영을 해왔다.

그러다 올해 초 A씨는 오는 6월 4일 계약만료에 따라 주유소를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당시 A씨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토지임대료를 두 차례 내지 못했고, A씨는 당시 보증금 2억원에 월 770만원의 임대료를 지급하고 있었지만 지주 측은 BKE그룹과 월 1,000만원의 임대계약을 할 거라고 A씨에게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A씨는 계약 만료 후 3개월만 시간을 달라고 호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형인 B씨도 주유소 단칸방에서 살고 있는 등 마땅한 거주지가 없었다. 그러나 지주 측은 모든 업무를 BKE 측에 일임하고, A씨의 퇴거 절차에 돌입했다.

BKE 측은 토양검사를 동의한다는 지주의 위임장을 받고 지난 3월 검사를 실시했다. 현행법상 주유소는 2년에 한 번씩 시행하는 정기검사 외에 계약만료 및 폐업 등의 경우도 토양오염검사(수시검사)를 받아야 한다.

BKE에 따르면 해당 주유소에 대한 1차 수시검사에서 토양오염이 발견됐다. 이에 BKE 측은 정밀검사를 포함해 총 5차례 검사를 시행했다. 이 과정에서 BKE 측은 주유소 바닥에 25개의 구멍을 뚫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지주 측은 A씨에게 토양정화비용과 공사비 등 1억5,000만원을 지불하라고 요구했다. 토양검사 후 오염이 발견될 경우 이에 따른 비용은 임차인이 부담하게 된다.

유족 측은 이 과정에서 A씨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직전 정기검사에서 문제가 없다는 통보를 받은 상황에 ‘토양오염’이라는 결과가 나온데다, 정밀검사 과정에서 25개에 달하는 구멍을 뚫는 등 BKE 측이 무리한 조사를 강행한 탓이 크다는 것이다.

BKE그룹은 수익의 일정액을 기부하는 등 기업의 사회환원을 강조하는 기업이다. < BKE그룹 홈페이지 캡처>

◇ BKE “무리한 검사 아니다… 자살은 A씨의 경제적 문제 때문”

<시사위크>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해당 주유소에 대한 정기검사는 2017년 5월 이뤄졌다. 당시 ‘전혀 문제없음’이란 결과를 받았다. 물론 1년 새 토양이 오염되기도 한다는 게 정기검사를 담당한 업체 측 설명이다. ‘탱크 누수’ 등의 문제가 있는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이번에 이뤄진 BKE 정밀검사 결과, 탱크와 배관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A씨의 형 B씨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10년 이상 된 주유소는 오염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면서 “마치 괴롭히듯이 집요하고 치밀하게 검사를 진행했다. 동생은 대학 졸업 후 정유회사에 취업해 지금까지 주유소 관련 일은 해왔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고 주장했다.

4년 전까지 주유소에서 일했던 직원 C씨는 “아직도 충격이 심하신 형님(B씨) 걱정에 매일 주유소에 오고 있다”면서 “생전에 사장님이 BKE 측이 검사를 올 때마다 스트레스가 심했다. 영업방해라고 항의하면 오히려 ‘고소하라’고 으름장을 놨다. 그쪽은 기업인데 개인이 뭐가 무섭겠나”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에 대해 BKE 측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BKE 측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B씨는 주유소 관리에 대해 잘 모르는 분이다. 검사를 무리하게 하고 싶어도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못 한다”면서 “1차 검사에서 토양이 오염된 정황이 나와 관할청으로부터 정밀검사 지시를 받았다. 그 이후 과정을 그렇게 느꼈을 순 있지만 일부러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원래 2년에 한 번씩 하는 정기검사는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고, 운영자 교체로 실시하는 검사는 다들 이렇게 한다”면서 “자칫하면 우리가 토양오염을 책임질 수 있는데 당연한 거 아니냐”고 되물었다.

다만 국내 토양누출검사 전문기관 대표 D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대지면적 1,000㎡ 이하면 75㎡ 당 1개의 구멍을 뚫는다”며 “주유기가 3대뿐인 곳이라면 정밀검사를 해도 보통 15공 정도를 뚫는다”고 설명했다. 이럴 경우 검사비용은 800만~1,000만원 정도, 공사비도 보통 2,000만~3,000만원 정도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토지정화비용은 정화량에 따라 다르고, 공사비 역시 이것저것 한다고 하면 더 나오기도 한다는 게 D씨의 설명이다. BKE 측은 정밀검사 비용이 1,000만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토지정화비용과 공사비가 각각 얼마씩 나왔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A씨가 생전 형과 함께 운영하던 주유소 모습. <다음 로드뷰>

BKE 관계자는 “A씨가 보증금 2억원 중 1억원 밖에 못 받는 상황이라는 얘기를 듣고 사정을 봐주기도 했다”면서 “(토양정화비용과 공사비 등) 1억5,000만원 중 지주와 BKE, A씨가 각각 5,000만원씩 내자고 한 상황이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유족 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보증금과 관련해서 지주와 문제가 없다는 것. 형 B씨는 보증금 2억원 중 1억5,000만원을 제외한 5,000만원만 받을 처지에 놓였었다고 주장한다.

지주와 BKE 측은 A씨가 사망하자 보증금을 1,000만원 더 주겠다는 입장을 전달한 상태다.

B씨는 동생의 죽음을 알리는 현수막을 주유소에 내걸었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BKE 측의 경고에 현수막을 치웠다. 현재 주유소 주변에는 공사를 대비하기 위해 펜스를 쳐둔 상태다. B씨는 “그쪽이 주유소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던데 우리 같은 일이 또 발생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면서 “동생의 호소대로 3개월만 연장해줬다면, 지금쯤 동생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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