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민수가 영화 ‘마녀’(감독 박훈정)를 통해 4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엔터스테이션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달구고 또 달궜다. 더 버리고 더 들여다봤다. 연기 인생 32년. 요령을 피울 법도 한데 매 작품마다 ‘올인’해야 직성이 풀린다. 배우 조민수가 영화 ‘마녀’(감독 박훈정)를 통해 4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다수의 작품을 통해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소화해온 ‘베테랑’ 연기자지만 자신을 선택해준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진이 빠질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지난 27일 개봉한 ‘마녀’는 시설에서 수많은 이들이 죽은 의문의 사고, 그날 밤 홀로 탈출한 후 모든 기억을 잃고 살아온 고등학생 자윤(김다미 분) 앞에 의문의 인물이 나타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액션이다.

매 작품 캐릭터에 완벽히 녹아든 열연으로 깊은 인상을 심어준 조민수는 자윤의 잃어버린 과거를 모두 알고 있는 박사 닥터 백으로 분했다. 특히 닥터 백 캐릭터는 기획 당시 남자로 설정돼 있었지만 조민수를 향한 제작진의 강한 신뢰로 성별이 바뀌었다.

조민수가 ‘마녀’를 향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엔터스테이션 제공>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조민수도 자신을 선택해준 이들을 향한 고마운 마음으로 ‘마녀’에 임했다고 밝혔다.

“남성 캐릭터가 여성 캐릭터로 바뀌었다는 게 정말 특별했어요. 박훈정 감독님은 남자로 썼는데 여성 캐릭터로 바꾸자는 말에 처음에는 안 된다고 했대요. 그러더니 어느 날 ‘여자 누구?’라고 물었고 한 관계자가 저를 추천했더니 좋다고 한 거예요. 감동스러웠어요. 나를 추천한 사람과 나를 쓴 감독한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거였죠. 또 내게도 기회였고요. 열심히 해서 조금 더 확장성 있는 연기를 보여주자.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아주 특별했죠.”

조민수는 남성적 톤이 강했던 닥터 백의 대사를 일부러 바꾸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해냈다. 시나리오 속 닥터 백 느낌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1%의 특별함’을 주기 위해서였다.

“대본을 보면서 연기하기 편하게 바꾸는 연기자분들도 계시는데 저는 제가 부족하기 때문에 어미 하나 바꾸는 것도 안 하려고 해요. 처음에는 제 말투가 아니니까 갑갑한데 익숙해져서 나오면 분명히 1%라도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이번에도 남성 화법을 내가 그대로 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감독님도 동의했고 그대로 했어요. 여자가 쓰는 화법이랑 남자가 쓰는 화법이 분명히 다르거든요. 거기에서 오는 투박함을 갖고 가고 싶었고 ‘미세하게 다르겠지’하면서 했어요. 너무 좋았죠.”

닥터 백으로 완전히 분한 조민수의 ‘마녀’ 스틸컷.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조민수는 닥터 백을 완벽하게 표현하기 위해 치열한 고민을 거듭했다. 닥터 백의 기본적인 배경부터 보이지 않는 것까지 하나하나 만들어가며 그를 이해하고, 또 그가 되고자 노력했다. 영화 말미 약 10분간 펼쳐지는 독백 장면을 위해서는 촬영이 없을 때도 현장을 찾아 동선을 익히고 자신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본인에게 주어진 그 어떤 신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그는 “한 번 요령 피우면 끝”이라고 말했다.

“(저는) 열심히 하는 애예요. 그렇게 안 하면 요령만 피우게 되더라고요. 편하게 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들은 것도 많지만 한 번 요령 피우면 끝인 것 같아요. 갈수록 더 달굴 수밖에 없는 것들이 생겨요. 할수록 더 버리고 더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어릴 때보다 더 들여다보는 것 같아요. 연기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이잖아요. 어떤 사람은 잘했다는데 또 어떤 사람은 못했다고 하고, 다 달라요. 누구 말이 맞는지 알 수 없고 보는 사람들의 몫이죠. 그럴 때 나는 나한테 후회하지 않게 해요. 다양한 눈들을 다 맞춰서 할 수는 없다. 최선을 다하자. 나한테 후회하지 말자. 어떤 얘기를 들어도 핑계대지 말자. 그런 마음으로 해요.” 

모든 것을 쏟아부은 탓에 힘들거나 지치진 않았을까?

“힘들긴 한데 그래야 된다고 생각해요. 진 빠진 느낌이 좋더라고요. 그러고 나면 내가 뭔가 한 것 같아. ‘이번 작품도 내가 이만큼 진을 뺐구나’라는 생각에 저는 좋아요. 힘은 들지만요.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에너지 남을 때까지 해보자는 생각으로 해요. 나중에는 힘들어서 못할 수도 있으니까 있을 때 하자 그런 생각을 하죠.”

1986년 KBS 특채 탤런트로 데뷔한 조민수는 데뷔 32년 차 중견 배우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코미디, 드라마, 멜로 등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작품에서 흡입력 높은 연기와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해왔다. 2012년 영화 ‘피에타’(감독 김기덕)로 베니스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고 제29회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조민수를 달리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엔터스테이션 제공>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자랑하지만 조민수는 여전히 좋은 작품과 캐릭터를 만나면 설레고 가슴이 뛴다. 그리고 매 작품, 매 순간 ‘진이 빠질 때까지’ 최선을 다한다. 그가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건 소중한 사람들의 ‘칭찬’ 덕이다.

“주변에서 잘했다고 하면 좋고 실망시키기 싫어요. 남을 위해 사는 건 아니지만 사람을 타는 쪽이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칭찬해줄 때 ‘좋다’라는 느낌을 받아요. 친한 사람들한테 ‘나 잘했지?’라고 물어보기도 해요. 그럼 ‘그 나이에 뭘 물어보냐’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럼 저는 ‘칭찬해줘~’라고 하죠. 그게 저한테 힘이에요. 뭉클하기도 하고 ‘나 잘하고 있나 봐’라는 마음이 들어요.”

조민수는 ‘마녀’를 통해 ‘사람’을 얻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직접 만나본 조민수는 안 빠지고는 못 배길 정도로 사랑스럽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의 곁에 좋은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 아닐까?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법이니까.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전부라고 착각하고 ‘마녀’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이 하지만 ‘마녀’가 내 인생에서 안 좋아도 사람이 안 좋은 것은 너무 힘든 거거든요. ‘마녀’가 잘되면 좋겠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다른 데 있어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에요. 저는 사람 안에 있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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