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교수가 전경련 주최로 열린 '기업과 혁신 생태계' 특별대담에서 기조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정부의 기업 지배구조 개편 방향에 대해 성토했다. 정부가 대기업의 지배구조를 흔들기 때문에 기업의 투자가 위축되고 배당을 노린 외국인 단기투자자들만 이익을 보고 있다는 게 요지다. 장하준 교수 발언은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을 다루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사촌동생이라는 점에서 더 주목받았다.

1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기업과 혁신생태계’ 특별대담에 나선 장하준 교수는 복잡한 소유구조를 가진 한국 대기업들과 단기 주주들의 요구에 대해 설명했다.

IMF 이후 대기업의 설비투자가 크게 줄어든 데는 자본시장 개방에 따른 외국자본의 입김이 거세졌기 때문이라는 게 장 교수의 설명이다. 지배구조가 취약한 대기업들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고, 고배당을 요구하는 외국인 주주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정부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지주회사가 매달리는 것인지 의문이다. 예전에는 지주회사가 불법이어서 기업이 순환출자를 했는데 지금은 또 지주회사로 전환하라고 해 존폐를 어렵게 하고 있다”며 “재벌을 때린다고 해서 환호하는 사람이 있는데 냉정하게 생각해서 본인에게 이익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대기업의 설비투자를 늘리고 국가의 성장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정부가 기업의 소유구조에 대해 “유연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장 교수는 제안했다. 그는 “삼성, 현대 가(家)를 지켜줘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온 국민이 키워준 기업을 총수 때문에 와해시키고 가족경영을 없애기 위해 엘리엇 같은 외국 단기 투기자본에게 넘겨주는 것은 큰일 날 일”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장기주주에 대한 가중의결권을 주는 방안도 제시했다. 그는 “기업구조 개선 정책이 영미식 주주자본주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니 복잡한 소유구조를 가진 한국 대기업들은 단기 주주들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다”며 “외국 투기자본 등 단기주주의 입김을 막기 위해 장기주주에게 가중의결권을 주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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