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국회 특활비를 폐지하는 대신 영수증 증빙 등으로 양성화 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특수활동비(특활비)를 폐지해야 한다는 거센 여론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특활비 양성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내년도 특활비는 운영위원회 산하 제도개선소위에서 개선안을 논의해 적용하되, 올해 분 특활비는 영수증이나 증빙서류를 첨부해 사용하겠다고 합의한 것이다. 가장 많은 의석수를 보유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특활비 폐지에 소극적이어서 관련 법안도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8일 회동을 갖고 이 같은 특활비 양성화 방침에 합의했다. 회동에 참석한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특활비 폐지 법안을 당론으로 발의한 만큼 해당 합의사항에 동참하지 않고 특활비를 일절 수령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바른미래당은 교섭단체·상임위원장·국회부의장 몫 특활비를 모두 반납하기로 했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특활비 양성화 방침이 사실상 폐지와 다름없다는 입장이다. 업무추진비·일반수용비·기타 운영비 등 특활비의 대부분을 영수증 처리로 증빙을 해야 하기 때문에 특활비 제도의 가장 큰 문제였던 ‘깜깜이’ 속성이 해소됐다는 이유에서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나중에 쓴 내역을 다 공개할 거다. 올해까진 현 제도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했고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도 “영수증 있는 특활비는 인정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당을 제외한 야권에선 민주당과 한국당의 ‘담합’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김철근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9일 “영수증 처리하면 괜찮다는 해명도 궤변에 불과하다. 쌈짓돈으로 사용되어온 특활비 자체가 문제인데 영수증이 언제부터 면죄부가 되었는가”라며 “국회가 먼저 특수활동비를 모범적으로 폐지해야 국정원을 비롯한 정부부처의 특수활동비에 대해서도 내년도 예산심의를 통해 제대로 개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민주평화당과 정의당도 쓴소리를 냈다. 이용주 평화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국회가 잘못된 관행과 예산낭비를 솔선수범하여 혁파하지 않고서는 정부의 부적절한 특활비 사용을 감시·감독할 수 없다”고 지적했고 이정미 대표는 이날 당 공식회의 석상에서 “국민들은 쌈짓돈 자체를 없애라고 했지, 쌈지만 바꿔서 다시 사용하라고 하지 않았다. 교섭단체들은 갑질 특권 예산을 내려놓기가 그렇게 아쉬운 것이냐”고 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표창원 민주당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특활비를 사용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다양한 어려움이 있겠지만, 과감하게 특활비 포기하고 그다음에 꼭 불요불급한 예산 상황이 있다면 이것은 정식 예산으로 항목을 추가하면 된다”며 “이제는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정치는 원래 그런 것인 것처럼, 국회는 그렇게 돌아가는 것인 것처럼 가지고 있었던 고정관념을 이제는 깰 때가 됐다”고 짚었다.

국회 특활비 공개 소송 끝에 2011~2013년 특활비 지출결의서를 확보해 공개했던 참여연대는 양당 합의 내용에 대해 “조삼모사(朝三暮四)”라며 “국회가 정보·기밀수사에 사용해야 할 특수활동비를 쌈짓돈처럼 받아 사용해놓고 이제 와서 용도만 전환해 그대로 쓰겠다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논평에서 “국회의원과 교섭단체의 입법활동을 위한 예산, 입법자료 수집과 연구활동을 위한 특정업무경비, 상임위원회 회의 개최와 세미나 지원 등을 위한 특정업무경비 등은 이미 2018년 국회 예산에 책정돼 있다”며 “국회가 그동안 아무런 통제 없이 나눠먹기식으로 유지해왔던 특수활동비를 업무추진비 명목으로 계속 수령하겠다는 여야 합의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국회는 20대 전반기 국회 특활비 내역도 공개하라는 법원의 1심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 절차를 준비 중이다. 20대 국회 전반기 특활비를 사용한 이들이 지금 현역 국회의원들이라는 점에서 불필요한 논란이 커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 이 같은 방침을 정했다. 항소에서 다시 패소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지만, 국회 운영위 제도개선소위를 통해 대책을 마련한 뒤 공개 방침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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